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사진=연합뉴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사진=연합뉴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사진)이 외부세력(KCGI·반도건설)과 '3자 동맹'을 맺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애착을 가진 그룹 내 호텔·레저 사업의 전면 구조 개편을 단행하기로 했다. 땅과 자산을 처분해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동시에 조 전 부사장의 복귀를 차단하는 조치란 분석이다. 대신 핵심 역량인 항공·물류 사업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한진그룹 지주사인 한진칼은 7일 이사회를 열고 경영 투명성을 높이고 재무구조 개선과 핵심 사업 경쟁력 강화에 나서겠다는 경영쇄신안을 의결했다.

한진그룹은 그룹 내 호텔·레저 사업의 전면 구조 개편에 돌입한다. 전날 대한항공이 소유한 송현동 부지, 왕산레저개발 지분의 연내 매각을 결정한 데 이어 칼호텔네트워크 소유의 제주 파라다이스 호텔 부지도 매각하기로 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소재 윌셔그랜드센터와 인천 소재 그랜드 하얏트 인천도 사업성을 검토한 뒤 개발·육성 또는 구조 개편 여부를 정하기로 했다.

과거 조 전 부사장이 주로 맡았던 분야인 호텔·레저 사업을 구조조정하면서 복귀 가능성을 차단한 것으로 재계에서는 해석하고 있다.
왼쪽부터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 조현민 한진칼 전무,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사진=연합뉴스]
왼쪽부터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 조현민 한진칼 전무,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사진=연합뉴스]
한진그룹은 "그룹 내 저수익 자산과 비주력 사업을 매각해 재무 구조를 개선하는 동시에 핵심 사업에 대한 집중도를 높인다"며 "한진 소유 부동산, 그룹사 소유 사택 등 국내외 부동산 뿐 아니라 국내 기업에 단순 출자한 지분 등 보유자산 중 필수적이지 않거나 시너지가 없는 자산을 매각키로 했다"고 설명했다.

비핵심·저수익 사업을 과감하게 정리하고 핵심 역량인 수송 사업에 집중해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항공운송 사업은 신형기를 도입하고 항공기 가동률을 높여 생산성을 확대한다. 다른 항공사와의 조인트 벤처 확대, 금융·정보통신기술(ICT) 기업 제휴 등 국내외 사업파트와 협력의 폭도 넓혀갈 예정이다.

물류사업의 경우 선택과 집중에 나선다. ㈜한진의 택배 및 국제특송, 물류센터, 컨테이너 하역 사업을 집중 육성하고, 육상운송·포워딩·해운·유류판매는 수익성을 높이는 데 힘쓴다.

이와 함께 항공우주사업, 항공정비(MRO), 기내식 등 그룹의 전문 사업 영역은 경쟁력을 높이기로 했다. 대한항공 정보통신(IT) 부문과 함께 한진정보통신, 토파스여행정보 등 그룹사의 ICT 사업은 효율성과 시너지를 확대하기로 했다.

아울러 한진칼은 이날 이사회 규정을 개정해 대표이사가 맡던 이사회 의장을 이사회에서 선출하도록 했다.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직을 분리할 수 있도록 해 경영을 감시하는 이사회의 역할을 더욱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한진그룹 측은 이에 대해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고 주주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전했다.

다음달 열리는 한진칼 주총에서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안이 통과되면 조 회장이 한진칼 대표이사직은 유지하되 이사회 의장은 다른 사외이사가 맡을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한진칼은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높이기 위해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를 전원 사외이사로 구성하기로 했다.

한진칼은 지난해 11월 이사회에서 회사 주요 경영사항에 대한 주주권익 보호 체계를 강화하기 위해 거버넌스(지배구조)위원회와 전원 사외이사로 구성된 보상위원회를 설치한 바 있다.

한진그룹은 "ESG(환경·사회적책임·지배구조)가 기업 평가의 중요한 척도가 됨에 따라 ESG에 대한 끊임없는 투자와 개선 노력을 바탕으로 그룹의 ESG 경쟁력을 높여 나갈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한진칼은 추후 별도로 이사회를 열고 주총 날짜와 안건 등에 대해 논의하기로 했다.

업계에서는 조 회장이 다음달 한진칼 주주총회를 앞두고 일반주주와 국민연금, 기관투자가의 표심을 잡기 위해 경영쇄신안을 내놓은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호텔·레저 사업의 구조 개편을 통해 과도한 부채비율을 낮추고 그룹 지배구조를 개선하면서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가 꾸준히 요구한 사항들을 반영해 명분을 쌓는 효과도 있다는 게 재계의 평가다.

다음달 열리는 한진칼 주총에서는 임기가 만료되는 조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이 달려 있다. 맞붙는 양측은 현재 지분 차이가 크지 않은 상황으로 전해졌다. 모친인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과 동생 조현민 한진칼 전무가 조 회장을 지지하면서 조 회장측의 한진칼 지분율은 33.45% 수준으로 올라갔다. 지분 3.81%를 보유한 대한항공 우리사주조합과 자가보험, 사우회 등이 주총에서 조 회장 편에 힘을 실을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3자 동맹의 지분(32.06%·의결권 기준 31.98%)을 앞선 수준이다.
자료=한국경제 DB
자료=한국경제 DB
이 가운데 30%를 웃도는 일반주주의 중요성이 한층 커졌다. 3월 주주총회에서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연금과 소액주주의 표심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다. 국민연금이 보유한 한진칼 주식은 3.45%로 알려졌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국민연금이 경영 참여형 주주권 행사에 나서기보다는 최고의결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 산하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에서 의결권 행사 방향을 결정할 것으로 점치고 있다.

이 같은 조 회장의 경영쇄신안에 대해 전날 KCGI는 "현 경영진이 내는 방안에 진정성이나 신뢰성을 부여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KCGI는 '공동보유 합의에 대한 KCGI의 입장' 보도자료를 통해 "(3자 동맹의) 공동보유 합의 이후 한진그룹 경영진이 뒤늦게 새 경영 개선 방안을 내고 주주들과 논의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주주를 회사의 진정한 주인이 아닌 거추장스러운 '외부 세력'으로 보는 시각을 유지하는 경영진이 내는 방안에 진정성이나 신뢰성을 부여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3자 동맹은 오는 14일 전까지 주주제안을 내놓을 예정으로 전해졌다.

오정민 한경닷컴 기자 bloom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