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은 듯 다른' 이낙연·황교안…모두 종로와 각별한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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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 거치며 '잠룡'으로…'삼청동 공관·종로 교회'도 공통점
李, 4선의원·도지사 정치이력…黃, 공안검사·법무장관 공직출신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출마하는 서울 종로 지역구에 7일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도 출사표를 내면서 '빅매치'를 벌이게 된 이들의 이력에도 관심이 쏠린다.
황교안, 결국 종로 출마 선언…이낙연과 '총선 빅매치' 성사 / 연합뉴스 (Yonhapnews)
모두 국무총리를 지내며 대선주자급 잠룡으로 발돋움한 데다 종로 지역에서 종교 생활을 하는 등 공통점도 있지만 앞서 걸어온 길은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문재인 정부의 초대 국무총리를 지낸 이낙연 전 총리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후 기자 21년, 4선 국회의원, 전남지사, 국무총리에 이르기까지 공백없이 풍부한 정치 경험을 쌓았다.
그는 전남 영광의 가난한 농부의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나 광주제일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1979년 동아일보에 입사해 정치부 기자, 도쿄특파원, 논설위원, 국제부장 등을 거치며 언론에서 21년간 재직했다.
정치부 기자 때 '동교동계'로 불리는 옛 민주당을 출입하면서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이어 2000년 새천년민주당 소속으로 고향인 함평·영광에서 출마해 여의도 진출에 성공했다.
2002년 대선 직후 열린우리당 분당 때 이른바 '꼬마 민주당'에 남았으며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에 따른 역풍에도 불구하고 당선되는 등 19대 국회까지 내리 4선을 했다.
초선 시절 새천년민주당 대변인부터 2007년 대선 과정에서 대통합민주신당 대변인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당의 입'으로 발탁, '5선 대변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도쿄 특파원 때 쌓은 인맥을 발판으로 국회 한·일 의원연맹 수석부회장 등을 맡은 바 있다.
또 18대 국회에서 개헌 모임인 미래한국헌법연구회 공동 대표를 지내는 등 개헌론자이기도 하다.
총리로 2년 7개월 재임하며 비교적 안정감 있는 국정 운영, 절제된 발언과 태도 등이 대중의 호평을 받았고 현재까지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도입 이후 '최장수 총리'라는 타이틀도 있다. 제1야당을 이끌고 있는 황교안 대표는 30년간 검찰에서 봉직하며 '공안통'으로 명성을 쌓았고, 이후 장관과 총리직까지 오른 공직자 출신이다.
경기고와 성균관대 법대를 나온 황 대표는 1981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법조인의 길에 들어섰다.
대검찰청 공안3과장·공안1과장, 서울중앙지검 2차장 등을 역임하며 공안 분야에서 특기를 쌓았다.
국가보안법 해설서를 펴낼 정도로 공안 업무에 정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중앙지검 2차장으로 있던 2005년에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국가정보원·안전기획부 도청 사건 수사를 진두지휘했다.
그의 이런 경력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오히려 약점이 돼 여러 차례 승진에서 누락되는 아픔을 맛보며 '공안 홀대'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2011년 부산고검장을 끝으로 검찰조직을 떠난 그는 2년 만인 2013년 박근혜 정부 초대 법무장관으로 화려하게 다시 공직에 복귀했으며, 장관 시절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끌어냈다.
3년간 박근혜 정부의 '최장수 장관'을 지낸 황 대표는 2015년 6월 국무총리로 취임했다.
2015년 11월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발표하며 역사교과서 국정화 행보에 앞장서는 등 공안검사 출신답게 자신의 색깔을 분명히 드러내는 모습도 보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에는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아 문재인 대통령 당선까지 국정 공백을 막으며 보수진영 유력 주자로 부상했다.
한국당에 입당한 지 43일만인 지난해 2월 한국당 대표로 선출됐으며, 이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정국 등을 거치며 대야 투쟁을 이끌어 왔다. 44대 국무총리였던 황 대표, 45대 국무총리를 지낸 이 전 총리는 모두 종로구에 있는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각각 1년 11개월, 2년 7개월여 지낸 경험이 공통점으로 꼽힌다.
기독교 신자인 두 사람은 재임 기간 삼청동 공관에 거주하며 근처 삼청감리교회를 다녔다.
총리가 되기 이전에는 두 사람 모두 신반포중앙교회에도 적을 둔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 전 총리의 경우 서울대 법대가 종로구 연건캠퍼스에 있을 당시 대학을 다녔고, 신문기자 초년때도 종로구 효자동에서 하숙했다.
이 전 총리는 지난달 15일 기자들과 만나 "청년시절 제일 많이 산 곳이 종로여서 추억이 많다.
시골뜨기로서 종로에 산다는 것은 꿈같은 것이었다"며 "효자동, 부암동, 평창동, 창신동, 신문로와 삼청동의 독서실 등등에 제 청춘의 흔적이 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이 전 총리는 자신의 '총리 후임'이자 '지역구 전임'인 정세균 국무총리로부터 지역 사무실과 조직을 물려받아 선거전을 준비 중이다.
황 대표도 경기고와 성균관대까지 학창시절을 내리 종로에서 보낸 인연이 있다.
황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종로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청년의 꿈을 키워온 희망의 땅"이라며 "가로수 하나하나와 골목 곳곳에 제 어린 시절, 제 젊은 시절 추억이 배어 있다"고 돌이켰다. 한편 자유한국당 전신인 새누리당의 대표를 지낸 무소속 이정현 의원도 앞서 종로 출마를 선언한 데 따라 이 전 총리와 황 대표와 나란히 총선 레이스를 벌일 전망이다.
이 의원은 2004년 박 전 대통령이 당 부대변인으로 발탁한 이후 정계에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고, 이후 박 전 대통령의 '입' 역할을 도맡아온 인연이 있다.
전남 곡성 출신인 이 의원은 1995년부터 보수정당의 불모지인 호남에서만 출마해왔다.
18대 국회에서 비례대표 의원을 지낸 그는 2014년 재보궐 선거에서 전남 순천·곡성에서 처음 당선되며 '지역구도 타파의 선구자'로 기록됐고, 2016년 순천에서 3선 고지에 올랐다.
지난해 12월 12일 호남을 떠나 수도권 출마를 선언했다.
/연합뉴스
李, 4선의원·도지사 정치이력…黃, 공안검사·법무장관 공직출신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출마하는 서울 종로 지역구에 7일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도 출사표를 내면서 '빅매치'를 벌이게 된 이들의 이력에도 관심이 쏠린다.
황교안, 결국 종로 출마 선언…이낙연과 '총선 빅매치' 성사 / 연합뉴스 (Yonhapnews)
모두 국무총리를 지내며 대선주자급 잠룡으로 발돋움한 데다 종로 지역에서 종교 생활을 하는 등 공통점도 있지만 앞서 걸어온 길은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문재인 정부의 초대 국무총리를 지낸 이낙연 전 총리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후 기자 21년, 4선 국회의원, 전남지사, 국무총리에 이르기까지 공백없이 풍부한 정치 경험을 쌓았다.
그는 전남 영광의 가난한 농부의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나 광주제일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1979년 동아일보에 입사해 정치부 기자, 도쿄특파원, 논설위원, 국제부장 등을 거치며 언론에서 21년간 재직했다.
정치부 기자 때 '동교동계'로 불리는 옛 민주당을 출입하면서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이어 2000년 새천년민주당 소속으로 고향인 함평·영광에서 출마해 여의도 진출에 성공했다.
2002년 대선 직후 열린우리당 분당 때 이른바 '꼬마 민주당'에 남았으며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에 따른 역풍에도 불구하고 당선되는 등 19대 국회까지 내리 4선을 했다.
초선 시절 새천년민주당 대변인부터 2007년 대선 과정에서 대통합민주신당 대변인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당의 입'으로 발탁, '5선 대변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도쿄 특파원 때 쌓은 인맥을 발판으로 국회 한·일 의원연맹 수석부회장 등을 맡은 바 있다.
또 18대 국회에서 개헌 모임인 미래한국헌법연구회 공동 대표를 지내는 등 개헌론자이기도 하다.
총리로 2년 7개월 재임하며 비교적 안정감 있는 국정 운영, 절제된 발언과 태도 등이 대중의 호평을 받았고 현재까지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도입 이후 '최장수 총리'라는 타이틀도 있다. 제1야당을 이끌고 있는 황교안 대표는 30년간 검찰에서 봉직하며 '공안통'으로 명성을 쌓았고, 이후 장관과 총리직까지 오른 공직자 출신이다.
경기고와 성균관대 법대를 나온 황 대표는 1981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법조인의 길에 들어섰다.
대검찰청 공안3과장·공안1과장, 서울중앙지검 2차장 등을 역임하며 공안 분야에서 특기를 쌓았다.
국가보안법 해설서를 펴낼 정도로 공안 업무에 정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중앙지검 2차장으로 있던 2005년에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국가정보원·안전기획부 도청 사건 수사를 진두지휘했다.
그의 이런 경력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오히려 약점이 돼 여러 차례 승진에서 누락되는 아픔을 맛보며 '공안 홀대'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2011년 부산고검장을 끝으로 검찰조직을 떠난 그는 2년 만인 2013년 박근혜 정부 초대 법무장관으로 화려하게 다시 공직에 복귀했으며, 장관 시절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끌어냈다.
3년간 박근혜 정부의 '최장수 장관'을 지낸 황 대표는 2015년 6월 국무총리로 취임했다.
2015년 11월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발표하며 역사교과서 국정화 행보에 앞장서는 등 공안검사 출신답게 자신의 색깔을 분명히 드러내는 모습도 보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에는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아 문재인 대통령 당선까지 국정 공백을 막으며 보수진영 유력 주자로 부상했다.
한국당에 입당한 지 43일만인 지난해 2월 한국당 대표로 선출됐으며, 이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정국 등을 거치며 대야 투쟁을 이끌어 왔다. 44대 국무총리였던 황 대표, 45대 국무총리를 지낸 이 전 총리는 모두 종로구에 있는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각각 1년 11개월, 2년 7개월여 지낸 경험이 공통점으로 꼽힌다.
기독교 신자인 두 사람은 재임 기간 삼청동 공관에 거주하며 근처 삼청감리교회를 다녔다.
총리가 되기 이전에는 두 사람 모두 신반포중앙교회에도 적을 둔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 전 총리의 경우 서울대 법대가 종로구 연건캠퍼스에 있을 당시 대학을 다녔고, 신문기자 초년때도 종로구 효자동에서 하숙했다.
이 전 총리는 지난달 15일 기자들과 만나 "청년시절 제일 많이 산 곳이 종로여서 추억이 많다.
시골뜨기로서 종로에 산다는 것은 꿈같은 것이었다"며 "효자동, 부암동, 평창동, 창신동, 신문로와 삼청동의 독서실 등등에 제 청춘의 흔적이 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이 전 총리는 자신의 '총리 후임'이자 '지역구 전임'인 정세균 국무총리로부터 지역 사무실과 조직을 물려받아 선거전을 준비 중이다.
황 대표도 경기고와 성균관대까지 학창시절을 내리 종로에서 보낸 인연이 있다.
황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종로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청년의 꿈을 키워온 희망의 땅"이라며 "가로수 하나하나와 골목 곳곳에 제 어린 시절, 제 젊은 시절 추억이 배어 있다"고 돌이켰다. 한편 자유한국당 전신인 새누리당의 대표를 지낸 무소속 이정현 의원도 앞서 종로 출마를 선언한 데 따라 이 전 총리와 황 대표와 나란히 총선 레이스를 벌일 전망이다.
이 의원은 2004년 박 전 대통령이 당 부대변인으로 발탁한 이후 정계에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고, 이후 박 전 대통령의 '입' 역할을 도맡아온 인연이 있다.
전남 곡성 출신인 이 의원은 1995년부터 보수정당의 불모지인 호남에서만 출마해왔다.
18대 국회에서 비례대표 의원을 지낸 그는 2014년 재보궐 선거에서 전남 순천·곡성에서 처음 당선되며 '지역구도 타파의 선구자'로 기록됐고, 2016년 순천에서 3선 고지에 올랐다.
지난해 12월 12일 호남을 떠나 수도권 출마를 선언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