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여자대학교 게시판에 트랜스젠더 합격자의 입학을 환영하는 대자보와 반대하는 내용을 담은 대자보가 나란히 붙여 있다. /사진=연합뉴스
숙명여자대학교 게시판에 트랜스젠더 합격자의 입학을 환영하는 대자보와 반대하는 내용을 담은 대자보가 나란히 붙여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내 최초로 성전환 수술 후 여대에 합격한 트랜스젠더 A씨가 입학을 포기한 뒤 오히려 파장이 커지고 있다. 사상 초유의 사례에 대학가는 물론 사회적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사안인 만큼 온오프라인 논쟁에 불이 붙고 있다.

트랜스젠더 최초로 여대에 지원해 합격한 A씨는 지난 7일 '입학 포기'를 선언했다.

지난해 8월 태국에서 성전환 수술을 받은 뒤 그해 10월 법원에서 성별 정정 허가를 받은 A씨는 지난해 치른 두 번째 입시에서 숙명여대 법학과에 최종 합격했지만 이후 A씨의 입학을 두고 숙명여대 내부와 대학가에서는 치열한 찬반 논쟁이 이어졌다.

A씨의 입학 포기 소식이 전해지자 숙명여대·이화여대·성신여대·동덕여대 등 래디컬 페미니스트 모임으로 구성된 '숙명여대 트랜스젠더 입학반대 TF팀'은 공동 성명을 내고 입학 포기를 환영했다.

TF팀은 "많은 여자들의 적극적인 의사표시 덕분에 여자들의 공간과 권리를 지킬 수 있었다"면서 "앞으로도 법원의 자의적인 성별변경 반대를 위한 연서명에 많은 참여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숙명여대는 A씨가 입학 포기에 대한 소회를 밝히는 글을 올린 온라인 커뮤니티 운영을 종료했다. 지난 7일 A씨의 글이 올라온 뒤 약 1시간 만이다.

당시 A씨의 작성 글에는 100여개가 넘는 학생들의 댓글이 달렸고, 입학을 포기했음에도 혐오와 조롱 발언이 계속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성 정체성 등을 이유로 법적 여성을 배제하려 한 움직임은 차별이라며 A씨를 지지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은 혐오 표현을 방광한 학교와 언론을 비판하고, "자신을 당당하게 드러낸 A씨의 용기와 결정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또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는 이번 사태와 관련 자신의 페이스북에 "말할 수 없이 슬프고 내 자신이 너무 무력하다는 생각이 들어 괴롭다"는 글을 올렸다.

A씨의 입학 포기 소식에 정치권도 반응했다. 정의당은 교육 당국을 향해 "부끄러움을 느껴야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정의당 강민진 대변인은 8일 브리핑을 통해 "여자대학교가 만들어진 역사적 배경은 교육에서 소외되 온 여성들에게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함이었다"면서 "A씨가 입학했다면 이는 숙명여대의 설립 목적에 하등의 어긋남이 없는 일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성소수자 차별이 심각한 우리나라에 사회적 울림을 주는 사건이 됐을 것"이라면서 "입학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A씨의 상황에 안타까움과 슬픔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강 대변인은 "성소수자 학생들은 어린 시절부터 혐오표현과 차별을 경험하고 있다"면서 "여전히 대한민국의 학교는 성소수자 학생을 환대하지 못하는 공간에 머물로 있다는 사실이 이번 사건으로 드러났다. A씨의 입학 포기 결정을 두고 교육 당국은 부끄러움을 느껴야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A씨는 내년도 일반 대학 입시를 다시 준비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저는 비록 여기에서 멈추지만 다른 분들은 더 멀리 나아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면서 "이 사회가 모든 사람의 일상을 보호해주고 다양한 가치를 포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한 바 있다.

이보배 한경닷컴 객원기자 newsinf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