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에 돈이 도는 속도가 16개 주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한국이 가장 빠른 속도로 하락한 것으로 조사됐다. 시중 자금이 투자와 소비로 연결되지 않고 금융회사 단기 상품에 묶인 탓이다. 기업을 뛰게 해 주는 정책으로 투자와 소비를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저성장·저물가 韓, 돈맥경화 OECD 최악"
한국경제연구원은 9일 세계은행 통계를 바탕으로 2018년 OECD 국가의 통화 유통속도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한국의 통화 유통속도는 2004년(0.98) 이후 계속 떨어져 2018년 0.72로 추락했다. 통화 유통속도는 일정 기간에 통화가 상품이나 서비스 거래에 사용되는 횟수를 의미한다. 국내총생산(GDP)을 총통화(통화량+저축성예금)로 나눈 값이다.

한국의 통화 유통속도 하락은 조사 대상 국가 중 가장 가팔랐던 것으로 조사됐다. 투자와 소비가 줄어들고 돈의 회전속도가 떨어지는 ‘돈맥경화’ 현상이 두드러졌다는 얘기다. 폴란드, 영국, 헝가리, 일본이 뒤를 이었다. 호주, 칠레, 노르웨이 등은 반대로 통화 유통속도가 가장 빠르게 상승한 나라로 기록됐다.

한경연은 한국의 통화 유통속도가 느려진 원인으로 낮은 경제성장률과 더딘 물가상승률을 꼽았다. 2001년 1월부터 2019년 11월까지 통화 유통속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분석한 결과 GDP가 전년 대비 1% 오르면 유통속도는 1.3% 빨라진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지난해보다 1%포인트 상승하면 유통속도는 0.8%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의 통화 유통속도가 느려지는 원인이 낮은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에서 비롯됐다는 얘기다. 국내 경제성장률은 2010년 6.8%에서 지난해 2.0%로 계속 쪼그라들고 있다.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2013년 이후 연 1%대에 머물고 있다. 작년에는 0.4%까지 떨어졌다.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인상도 유통속도가 낮아진 원인으로 꼽혔다. 한경연 분석에 따르면 CD 금리가 1년 전보다 1%포인트 상승하면 유통속도는 2.2% 느려졌다. 예금 이자율이 높아지면 현금과 각종 예금, 2년 이하 적금 등이 포함되는 총통화량이 늘어나기 때문에 유통속도가 느려진다는 얘기다.

추광호 한경연 일자리 전략실장은 “만성 고혈압이 동맥경화를 일으켜 건강을 위협하듯이 경제 활력 저하에 따른 저성장·저물가가 지속되면 경제의 기초체력이 소진될 수 있다”며 “법인세 부담 완화 등 경제 환경을 기업 친화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