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언어 장벽 깨고 황색 돌풍…92년 만에 '글로벌 오스카'로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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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영화사적 의미
비주류 배척 편협한 시상식서
화합·균형·다양성 등에 무게
'글로컬 영화상' 전환 터닝포인트
비주류 배척 편협한 시상식서
화합·균형·다양성 등에 무게
'글로컬 영화상' 전환 터닝포인트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의 92년 역사에서 최대 이변이 일어났다. 최고상인 작품상 후보로는 당초 샘 멘데스 감독의 할리우드 영화 ‘1917’이 가장 유력한 것으로 관측됐지만 아카데미 회원들은 전례 없이 비영어권(외국어) 영화, 그것도 유럽이 아니라 한국 영화에 작품상을 비롯한 주요 부문의 상을 안겨줬다. “아카데미상은 미국의 로컬 영화상”이라고 꼬집었던 봉준호 감독의 지적이 통했던 것일까. 아카데미는 ‘글로벌 영화상’으로 거듭나기 위해 놀라운 변화를 선택했다.
한국 너머 아시아의 대기록
10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기생충’은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옛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해 4관왕에 올랐다. 한국 영화는 1962년 신상옥 감독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를 시작으로 꾸준히 아카데미상에 도전했지만 후보에 지명된 것도, 수상에 성공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기생충’의 제작자인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는 “상상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일단 너무 기쁘다”며 “지금 이 순간, 뭔가 굉장히 의미 있고 상징적인, 시의적절한 역사가 쓰였다”고 벅찬 마음을 전했다.
아시아계 감독이 아카데미에서 감독상을 받은 것은 대만 출신 리안 감독 이후 두 번째다. 리안 감독은 할리우드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2006), ‘라이프 오브 파이’(2013)로 두 차례 수상했지만 모두 할리우드 자본으로 제작된 작품이었다. ‘기생충’은 우리말로 제작한 순수 한국 영화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크다. 아시아계 작가가 각본상을 받은 것도 ‘기생충’이 처음이다.
아카데미가 ‘기생충’에 작품상을 안긴 것은 백인 일색의 편협한 시상식이라는 오명을 벗고 ‘글로벌 영화상’으로 변화하려는 최근 흐름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2017년 흑인 동성애자 소년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문라이트’가 작품상을 받았다. 2018년에는 멕시코 출신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이, 2019년에는 흑인 천재 피아니스트와 백인 운전사의 우정을 다룬 ‘그린 북’이 각각 작품상의 영예를 안았다. 지난해 멕시코 출신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는 감독상·촬영상·외국어영화상을 받았다. 카일 뷰캐넌 뉴욕타임스(NYT) 영화평론가는 “‘기생충’의 작품상 수상으로 아카데미가 ‘백인 일색의 편협한 시상식’이라는 오명을 벗게 됐다”고 했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올해는 아카데미가 국제와 현지를 아우르는 글로컬 영화상으로 가는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짚었다.
주요 외신들은 일제히 “영화계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며 ‘기생충’의 4관왕 소식을 전했다. NYT는 “한국의 ‘기생충’이 92년간의 아카데미 시상식 역사를 산산조각냈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기생충’의 이번 수상은 외국 영화를 자신들의 틀에 맞춰 보려는 경향을 가진 미국 영화계에 새로운 분수령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양성 강조한 시상식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은 무엇보다 다양성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각국 언어로 축하 무대가 펼쳐졌고 시상자들이 무대에 올라 소신 있게 다양성에 대한 발언을 이어갔다. 주제가상 후보에 오른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 2’의 ‘인 투 디 언노운’ 축하 무대는 원곡 가수 이디나 멘젤뿐 아니라 덴마크, 독일, 일본, 노르웨이, 폴란드, 러시아, 스페인, 태국 등에서 이 노래를 현지어로 더빙한 10명이 함께 꾸몄다. 이들은 노래를 영어가 아니라 각자의 언어로 함께 불렀다.
시상자들은 연기상 부문 후보에 지명된 유색 인종 배우가 거의 없다는 점과 감독상 후보에 여성 감독이 없다는 점을 비판했다. 이번 시상식에서 남녀 주연상·조연상 후보에 오른 배우 중 유색 인종은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신시아 에리보(‘해리엇’)가 유일했다. 남우조연상 시상자인 스티브 마틴은 “지난 92년 동안 얼마나 아카데미가 바뀌었는지 생각해보라”며 “그동안 흑인 배우들이 후보에 오르지 못했는데, 2020년에는 딱 한 명이 있다. 정말 많이 변했다”고 꼬집었다. 마틴과 함께 무대에 오른 크리스 록도 “정말 훌륭한 감독들이 후보에 많이 올랐지만, 여성 감독이 빠졌다”고 지적했다.
올해는 아카데미 역사 92년 만에 처음으로 여성 지휘자가 오케스트라를 이끌었다. 음악상 시상자인 시고니 위버는 ‘캡틴 마블’을 연기한 브리 라슨과 ‘원더 우먼’ 갤 가돗과 함께 무대에 올라 “모든 여성은 슈퍼 히어로”라며 “아카데미 역사 92년 만에 여성 지휘자가 오케스트라를 이끌게 됐다”고 말했다.
유재혁 대중문화전문기자 yoojh@hankyung.com
한국 너머 아시아의 대기록
10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기생충’은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옛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해 4관왕에 올랐다. 한국 영화는 1962년 신상옥 감독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를 시작으로 꾸준히 아카데미상에 도전했지만 후보에 지명된 것도, 수상에 성공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기생충’의 제작자인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는 “상상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일단 너무 기쁘다”며 “지금 이 순간, 뭔가 굉장히 의미 있고 상징적인, 시의적절한 역사가 쓰였다”고 벅찬 마음을 전했다.
아시아계 감독이 아카데미에서 감독상을 받은 것은 대만 출신 리안 감독 이후 두 번째다. 리안 감독은 할리우드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2006), ‘라이프 오브 파이’(2013)로 두 차례 수상했지만 모두 할리우드 자본으로 제작된 작품이었다. ‘기생충’은 우리말로 제작한 순수 한국 영화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크다. 아시아계 작가가 각본상을 받은 것도 ‘기생충’이 처음이다.
아카데미가 ‘기생충’에 작품상을 안긴 것은 백인 일색의 편협한 시상식이라는 오명을 벗고 ‘글로벌 영화상’으로 변화하려는 최근 흐름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2017년 흑인 동성애자 소년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문라이트’가 작품상을 받았다. 2018년에는 멕시코 출신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이, 2019년에는 흑인 천재 피아니스트와 백인 운전사의 우정을 다룬 ‘그린 북’이 각각 작품상의 영예를 안았다. 지난해 멕시코 출신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는 감독상·촬영상·외국어영화상을 받았다. 카일 뷰캐넌 뉴욕타임스(NYT) 영화평론가는 “‘기생충’의 작품상 수상으로 아카데미가 ‘백인 일색의 편협한 시상식’이라는 오명을 벗게 됐다”고 했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올해는 아카데미가 국제와 현지를 아우르는 글로컬 영화상으로 가는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짚었다.
주요 외신들은 일제히 “영화계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며 ‘기생충’의 4관왕 소식을 전했다. NYT는 “한국의 ‘기생충’이 92년간의 아카데미 시상식 역사를 산산조각냈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기생충’의 이번 수상은 외국 영화를 자신들의 틀에 맞춰 보려는 경향을 가진 미국 영화계에 새로운 분수령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양성 강조한 시상식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은 무엇보다 다양성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각국 언어로 축하 무대가 펼쳐졌고 시상자들이 무대에 올라 소신 있게 다양성에 대한 발언을 이어갔다. 주제가상 후보에 오른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 2’의 ‘인 투 디 언노운’ 축하 무대는 원곡 가수 이디나 멘젤뿐 아니라 덴마크, 독일, 일본, 노르웨이, 폴란드, 러시아, 스페인, 태국 등에서 이 노래를 현지어로 더빙한 10명이 함께 꾸몄다. 이들은 노래를 영어가 아니라 각자의 언어로 함께 불렀다.
시상자들은 연기상 부문 후보에 지명된 유색 인종 배우가 거의 없다는 점과 감독상 후보에 여성 감독이 없다는 점을 비판했다. 이번 시상식에서 남녀 주연상·조연상 후보에 오른 배우 중 유색 인종은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신시아 에리보(‘해리엇’)가 유일했다. 남우조연상 시상자인 스티브 마틴은 “지난 92년 동안 얼마나 아카데미가 바뀌었는지 생각해보라”며 “그동안 흑인 배우들이 후보에 오르지 못했는데, 2020년에는 딱 한 명이 있다. 정말 많이 변했다”고 꼬집었다. 마틴과 함께 무대에 오른 크리스 록도 “정말 훌륭한 감독들이 후보에 많이 올랐지만, 여성 감독이 빠졌다”고 지적했다.
올해는 아카데미 역사 92년 만에 처음으로 여성 지휘자가 오케스트라를 이끌었다. 음악상 시상자인 시고니 위버는 ‘캡틴 마블’을 연기한 브리 라슨과 ‘원더 우먼’ 갤 가돗과 함께 무대에 올라 “모든 여성은 슈퍼 히어로”라며 “아카데미 역사 92년 만에 여성 지휘자가 오케스트라를 이끌게 됐다”고 말했다.
유재혁 대중문화전문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