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업평가가 전년보다 배당 규모를 세 배 이상 늘리자 직원들의 원성이 커지고 있다. 회사의 한 해 이익보다 많은 금액을 배당하면서 외국계 대주주인 피치의 배만 불린다는 지적도 나온다.

'폭탄 배당' 한기평…"대주주 피치만 배불리나" 논란
한국기업평가는 지난해 회계연도 결산배당 금액을 주당 8518원으로 결정했다. 전체 배당금은 380억원이다. 전년(중간배당 포함 105억원)보다 세 배 이상 증가했다. 이 회사가 지난해 1~3분기 거둔 순이익(231억원)은 물론 2018년 한 해 순이익(202억원)보다 많다.

이번 배당으로 지난해 9월 말 678억원(개별재무제표 기준)인 이 회사의 현금성자산 중 절반 이상이 빠져나가게 된다. 배당 후 한국기업평가의 현금성자산은 10년 전인 2008년(287억원) 수준으로 쪼그라들 전망이다. 한국기업평가의 최대 주주(지분율 73.55%)인 글로벌 신용평가사 피치는 단숨에 280억원을 손에 쥐게 된다.

배당 확대를 반기는 주주들과 달리 직원들은 허탈함을 느끼고 있다. 장기간 벌어들인 현금 중 상당액이 회사의 장기 발전을 위한 투자가 아니라 피치를 위한 배당금으로 유출돼서다.

특히 구조조정이 끝난 지 얼마 안된 상황에서 ‘폭탄 배당’을 결정한 것이 직원들의 감정을 자극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기업평가는 2018년 본부장급 직원들을 해임하는 등 강도 높은 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한국기업평가 관계자는 “회사가 장기간 벌어들인 이익을 외국계 대주주를 위한 고배당 잔치에 활용한다면 과도한 국부 유출이란 논란을 낳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용평가업계 일각에선 대주주 의존도가 높은 한국기업평가의 지배구조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신용평가사 대주주가 배당 확대를 통해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만 몰두하면 국내 자본시장의 파수꾼 역할을 해주길 바라는 시장 참여자들의 기대와 거꾸로 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기업들이 더 높은 신용등급을 주는 신용평가사를 찾는 ‘등급 쇼핑’ 등 병폐를 방조할 수 있어서다.

이런 이유로 금융당국은 2017년 “대주주가 고배당 등 이익 확대만을 추구하면 기업들의 채무상환능력을 평가하는 신용평가사의 공익성을 침해할 수 있다”며 신용평가사 대주주 적격성 요건에 ‘신용평가사의 공익성과 경영건전성, 건전한 시장질서를 해칠 우려가 없을 것’이란 항목을 추가했다.

한국기업평가 직원들의 불만은 연임을 확정지은 김기범 사장이 향후 회사를 이끌어가는 데도 부담이 될 전망이다. 피치와 한국기업평가는 다음달 임기가 종료되는 김 사장에게 3년 더 경영을 맡기기로 결정해 둔 상태다. 한국기업평가는 다음달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그의 연임 안건을 최종 승인할 계획이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