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완의 21세기 양자혁명] 量子, 나노를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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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소로스의 회사 이름이 퀀텀펀드이고, 혁신적인 발전을 ‘퀀텀 리프’ 또는 ‘양자 도약’이라고 해 비즈니스에 ‘퀀텀’ 또는 ‘양자’라는 용어가 쓰인 지는 꽤 됐다. 얼마 전에는 “검찰개혁은 양자역학이라도 동원해야 이해가 되느냐”는 말까지 나왔다. 이해하기 어려운 것의 대명사로 양자역학 또는 양자물리학이 등장한 셈이다. 필자는 1990년대에 근무하던 연구소에서 양자컴퓨터와 양자암호통신 연구를 시작하자고 제안했지만, “양자가 무엇이냐”고 질문하는 사장님을 설득할 수 없었다.
우리나라는 물론 한자 종주국인 중국조차 일본 학자들이 만든 한자 번역어를 많이 쓰는데, 동음이의어로 인한 혼란이 자주 뒤따른다. 한글로 ‘양자’라고 쓰면 언뜻 양자회담의 양자(兩者)나 입양한 양자(養子)가 우선 떠오른다. 일본 서적을 많이 읽는 사람들이 우리 한자음 ‘양자’로 기억하는 일본 물리학 용어에도 양자(陽子)가 있다. 이는 수소원자의 핵인 프로톤(proton)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양성자(陽性子), 중국에서는 질자(質子)라고 한다. 양자역학의 양자는 퀀텀(quantum)의 번역어인 ‘量子’다. 한·중·일 모두 같은 한자 표기를 쓴다.
자연의 원리 설명하는 궁극의 이론
양자역학은 1900년 독일의 막스 플랑크에 의해 시작됐다. 플랑크가 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하자 그의 지도교수는 이제 물리학은 거의 완성된 학문이라 앞으로 별로 할 것이 없다고 했다. 그렇지만 온도가 올라갈수록 금속이 처음에는 붉게 빛나다가, 노랗게 그리고 하얗게 변하는 흑체복사 현상을 이전의 고전물리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플랑크는 빛이 가진 에너지의 양(量·quant)이 연속적이지 않고, 한 단위(子·um)씩 덩어리져 있다고 가정해 1900년 이 현상을 설명했고, 1918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이렇게 일반적으로 어떤 물리량이 연속적이지 않고 띄엄띄엄 떨어져 있는 것을 양자라고 부르게 됐다.
아인슈타인은 1905년 특수상대성이론, 브라운운동, 광전효과 등 현대물리학에 획기적인 여러 논문을 발표했다. 시간과 공간을 시공간으로 통합한 특수상대성이론이 훨씬 많이 알려져 있지만 아인슈타인은 빛의 에너지 양자, 즉 광양자 개념으로 광전효과를 설명한 공로로 1921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이렇게 시작된 양자역학은 빛과 물질, 나아가 자연의 원리를 설명하는 궁극의 이론으로 자리잡았다. 멘델레예프의 원소 주기율표는 오랜 세월 ‘알케미’라는 연금술 등을 통한 경험으로 만들어졌다. 양자역학으로 원자의 구성 원리를 이해하게 되자 이 알케미는 진정한 케미스트리(화학)로 거듭났다. 눈으로 보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는 것뿐 아니라 DNA 등 생명 현상까지도 양자역학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식물이 빛 에너지를 식량으로 바꿔 놓는 광합성 현상도 역시 양자역학적인 현상이다.
자연의 원리를 이해하게 되자 양자역학을 이용해 물질과 빛을 조작하는 등 새로운 기술들이 등장했다. 스마트폰과 컴퓨터에 쓰이는 반도체 소자와 통신에 쓰이는 레이저는 양자역학 연구의 산물이다.
최근 중국은 양자암호통신 분야에서 ‘대국굴기’에 나서고 있으며, 미국은 구글과 IBM의 양자컴퓨터 개발 경쟁과 함께 양자기술 주도권 잡기에 고삐를 조였다. 마치 1960년대 소련의 스푸트니크와 가가린의 지구궤도 여행, 미국의 아폴로호와 암스트롱의 달착륙으로 상징되는 우주기술 전쟁을 다시 보는 듯하다.
양자컴퓨터라는 말은 1990년대 이후 널리 알려졌지만, 현재 많이 사용되는 디지털 컴퓨터에도 양자역학 이론이 이미 쓰이고 있다. 다만 디지털 컴퓨터는 양자역학을 반도체 소자 등 하드웨어(HW)에만 사용하고 있고, 소프트웨어(SW)와 운영체제(OS)는 양자역학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디지털로는 불가능한 기술도 기대
디지털 컴퓨터는 정보의 최소 단위인 0과 1의 비트(bit)를 전류와 전압으로 표현해 저장하거나 제어한다. 1세대 디지털 컴퓨터의 전류를 제어하던 진공관이 1948년 발명된 반도체 트랜지스터로 대체됐다. 트랜지스터 크기는 100분의 1미터인 센티미터(㎝)에서 점점 작아지더니 이제 10억 분의 1미터인 나노미터(㎚)까지 작아졌다. 반도체의 데이터 집적도가 10억을 뜻하는 기가(G)와 1조를 뜻하는 테라(T)를 넘고 있다.
이런 나노테크놀로지는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인가? 실리콘 원자의 반지름은 0.11㎚ 정도이고, 나노미터 이하 공간에서는 양자역학적인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디지털 정보는 0과 1이 분명해야 하기 때문에 하이젠베르크의 양자 불확정성 원리에 따라 0과 1의 구분이 불분명해지면 디지털 정보 처리에는 치명적이다. 불확정성 등 양자역학의 원리는 나노테크놀로지의 한계로 작용하지만,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와 운영체제에까지 양자역학의 원리를 사용하는 양자컴퓨터와 양자암호통신은 현재의 디지털 정보기술로는 불가능한 양자 정보기술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고등과학원 계산과학부 교수
우리나라는 물론 한자 종주국인 중국조차 일본 학자들이 만든 한자 번역어를 많이 쓰는데, 동음이의어로 인한 혼란이 자주 뒤따른다. 한글로 ‘양자’라고 쓰면 언뜻 양자회담의 양자(兩者)나 입양한 양자(養子)가 우선 떠오른다. 일본 서적을 많이 읽는 사람들이 우리 한자음 ‘양자’로 기억하는 일본 물리학 용어에도 양자(陽子)가 있다. 이는 수소원자의 핵인 프로톤(proton)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양성자(陽性子), 중국에서는 질자(質子)라고 한다. 양자역학의 양자는 퀀텀(quantum)의 번역어인 ‘量子’다. 한·중·일 모두 같은 한자 표기를 쓴다.
자연의 원리 설명하는 궁극의 이론
양자역학은 1900년 독일의 막스 플랑크에 의해 시작됐다. 플랑크가 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하자 그의 지도교수는 이제 물리학은 거의 완성된 학문이라 앞으로 별로 할 것이 없다고 했다. 그렇지만 온도가 올라갈수록 금속이 처음에는 붉게 빛나다가, 노랗게 그리고 하얗게 변하는 흑체복사 현상을 이전의 고전물리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플랑크는 빛이 가진 에너지의 양(量·quant)이 연속적이지 않고, 한 단위(子·um)씩 덩어리져 있다고 가정해 1900년 이 현상을 설명했고, 1918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이렇게 일반적으로 어떤 물리량이 연속적이지 않고 띄엄띄엄 떨어져 있는 것을 양자라고 부르게 됐다.
아인슈타인은 1905년 특수상대성이론, 브라운운동, 광전효과 등 현대물리학에 획기적인 여러 논문을 발표했다. 시간과 공간을 시공간으로 통합한 특수상대성이론이 훨씬 많이 알려져 있지만 아인슈타인은 빛의 에너지 양자, 즉 광양자 개념으로 광전효과를 설명한 공로로 1921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이렇게 시작된 양자역학은 빛과 물질, 나아가 자연의 원리를 설명하는 궁극의 이론으로 자리잡았다. 멘델레예프의 원소 주기율표는 오랜 세월 ‘알케미’라는 연금술 등을 통한 경험으로 만들어졌다. 양자역학으로 원자의 구성 원리를 이해하게 되자 이 알케미는 진정한 케미스트리(화학)로 거듭났다. 눈으로 보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는 것뿐 아니라 DNA 등 생명 현상까지도 양자역학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식물이 빛 에너지를 식량으로 바꿔 놓는 광합성 현상도 역시 양자역학적인 현상이다.
자연의 원리를 이해하게 되자 양자역학을 이용해 물질과 빛을 조작하는 등 새로운 기술들이 등장했다. 스마트폰과 컴퓨터에 쓰이는 반도체 소자와 통신에 쓰이는 레이저는 양자역학 연구의 산물이다.
최근 중국은 양자암호통신 분야에서 ‘대국굴기’에 나서고 있으며, 미국은 구글과 IBM의 양자컴퓨터 개발 경쟁과 함께 양자기술 주도권 잡기에 고삐를 조였다. 마치 1960년대 소련의 스푸트니크와 가가린의 지구궤도 여행, 미국의 아폴로호와 암스트롱의 달착륙으로 상징되는 우주기술 전쟁을 다시 보는 듯하다.
양자컴퓨터라는 말은 1990년대 이후 널리 알려졌지만, 현재 많이 사용되는 디지털 컴퓨터에도 양자역학 이론이 이미 쓰이고 있다. 다만 디지털 컴퓨터는 양자역학을 반도체 소자 등 하드웨어(HW)에만 사용하고 있고, 소프트웨어(SW)와 운영체제(OS)는 양자역학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디지털로는 불가능한 기술도 기대
디지털 컴퓨터는 정보의 최소 단위인 0과 1의 비트(bit)를 전류와 전압으로 표현해 저장하거나 제어한다. 1세대 디지털 컴퓨터의 전류를 제어하던 진공관이 1948년 발명된 반도체 트랜지스터로 대체됐다. 트랜지스터 크기는 100분의 1미터인 센티미터(㎝)에서 점점 작아지더니 이제 10억 분의 1미터인 나노미터(㎚)까지 작아졌다. 반도체의 데이터 집적도가 10억을 뜻하는 기가(G)와 1조를 뜻하는 테라(T)를 넘고 있다.
이런 나노테크놀로지는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인가? 실리콘 원자의 반지름은 0.11㎚ 정도이고, 나노미터 이하 공간에서는 양자역학적인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디지털 정보는 0과 1이 분명해야 하기 때문에 하이젠베르크의 양자 불확정성 원리에 따라 0과 1의 구분이 불분명해지면 디지털 정보 처리에는 치명적이다. 불확정성 등 양자역학의 원리는 나노테크놀로지의 한계로 작용하지만,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와 운영체제에까지 양자역학의 원리를 사용하는 양자컴퓨터와 양자암호통신은 현재의 디지털 정보기술로는 불가능한 양자 정보기술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고등과학원 계산과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