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이 마음을 잠식'…이웃 불신하게 만드는 '코로나 포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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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다녀온 일로 학부모끼리 마찰…'다른 사람이 내겐 위협' 불안 만연
전문가 "공동체성 옅어져 불신 더욱 증폭…사회적 긴장 관리 노력해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시민들에게 불안은 일상이 됐다.
불안은 그저 불안으로 그치지 않은 채 다른 사람에 대한 불신과 경계로 번지고 끝내 갈등으로 표출돼, 대인 관계 피로감은 물론 사회 전체 긴장도를 높이고 있다.
최근 괌으로 가족여행을 다녀온 A씨는 휴가를 끝내고 직장에 출근한 첫날, 아내에게서 받은 전화로 종일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내가 전한 말은 이랬다.
아이를 등원시키려 어린이집을 방문했는데, 해외여행을 다녀온 사실을 알게 된 다른 원생 보호자가 "등원을 말려야 하는 것 아니냐"고 어린이집에 항의했다는 것이다.
보육교사가 이해를 구하려 했지만, 해당 보호자는 아이를 데리고 집에 돌아갔다고 한다.
A씨 아내는 적잖이 당황했지만, 맞벌이하는 처지에서 다른 방법이 없었다.
아이를 맡기고 나오면서 A씨에게 상황을 알렸고, 부부는 온종일 복잡한 생각으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A씨는 "정말 잘못된 일을 했는지, 혼자 남은 아이가 바이러스 보균자 취급을 당하며 눈총을 받는 것은 아닌지 등 온갖 생각이 들었다"면서 "비록 서로 알지는 못해도 가까이 사는 이웃일 텐데, 그 보호자가 지나치게 과민 반응을 보인 것 같다는 생각에 섭섭한 마음이 컸다"고 밝혔다.
A씨 사례를 접하는 사람들도 마음이 복잡하기는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팍팍해진 것은 아닐까'하는 서글픈 기분이 들다가도, '과연 나는 그런 상황에서 의연해질 수 있을까'하는 물음에 확답할 수 없어 다시 한번 서글퍼진다.
코로나19 장기 여파로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나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는 불안이 이웃에 대한 관용이나 인정을 잠식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직장인 B씨도 최근 묘한 느낌이 드는 경험을 했다.
직장 동료가 "코로나19는 별로 괘념치 않는다"면서 계획했던 해외여행을 주저 없이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겉으로는 "용감하다"고 추켜세웠지만, 속으로는 '돌아오면 내가 피해를 보는 것은 아닐까'하는 걱정이 앞섰다.
B씨는 "이런 시국에 여행을 떠나는 동료가 이기적인지, 내 걱정부터 하는 내가 이기적인지 답을 내리기 어려웠다"면서 "이런 현실이 싫고 서글프다는 느낌은 분명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익명성이 높아지고 공동체성이 점차 옅어지는 우리 사회에서 코로나19와 같은 사태가 구성원 간 불신과 적대감을 증폭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렇지 않아도 절박하고 팍팍한 내 일상이 다른 사람 때문에 지장을 받는 여지가 조금만 있어도, 예민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갖춰진 것이다.
한 사회학자는 사견임을 전제로 "근래 난민 수용을 놓고 우리나라에서 불거진 논란과도 맥락이 비슷하다"면서 "현재 벌어진 사회적 불안이나 갈등을 경제적 손실로 환산하는 연구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구체적인 숫자가 없더라도 이미 사회적으로 심각한 마이너스라는 점은 누구나 체감할 것"이라고 14일 말했다.
그는 "가령 누군가를 경계하거나 배척하는 상황이 일반화하면, 경계·배척된 사람들을 관리해야 하는 사회적 부담과 비용이 필요해진다"면서 "해법이 쉽지 않겠지만, 대인관계나 사회생활에서 발생하는 긴장이나 스트레스를 관리하려는 노력이 중단돼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전문가 "공동체성 옅어져 불신 더욱 증폭…사회적 긴장 관리 노력해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시민들에게 불안은 일상이 됐다.
불안은 그저 불안으로 그치지 않은 채 다른 사람에 대한 불신과 경계로 번지고 끝내 갈등으로 표출돼, 대인 관계 피로감은 물론 사회 전체 긴장도를 높이고 있다.
최근 괌으로 가족여행을 다녀온 A씨는 휴가를 끝내고 직장에 출근한 첫날, 아내에게서 받은 전화로 종일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내가 전한 말은 이랬다.
아이를 등원시키려 어린이집을 방문했는데, 해외여행을 다녀온 사실을 알게 된 다른 원생 보호자가 "등원을 말려야 하는 것 아니냐"고 어린이집에 항의했다는 것이다.
보육교사가 이해를 구하려 했지만, 해당 보호자는 아이를 데리고 집에 돌아갔다고 한다.
A씨 아내는 적잖이 당황했지만, 맞벌이하는 처지에서 다른 방법이 없었다.
아이를 맡기고 나오면서 A씨에게 상황을 알렸고, 부부는 온종일 복잡한 생각으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A씨는 "정말 잘못된 일을 했는지, 혼자 남은 아이가 바이러스 보균자 취급을 당하며 눈총을 받는 것은 아닌지 등 온갖 생각이 들었다"면서 "비록 서로 알지는 못해도 가까이 사는 이웃일 텐데, 그 보호자가 지나치게 과민 반응을 보인 것 같다는 생각에 섭섭한 마음이 컸다"고 밝혔다.
A씨 사례를 접하는 사람들도 마음이 복잡하기는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팍팍해진 것은 아닐까'하는 서글픈 기분이 들다가도, '과연 나는 그런 상황에서 의연해질 수 있을까'하는 물음에 확답할 수 없어 다시 한번 서글퍼진다.
코로나19 장기 여파로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나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는 불안이 이웃에 대한 관용이나 인정을 잠식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직장인 B씨도 최근 묘한 느낌이 드는 경험을 했다.
직장 동료가 "코로나19는 별로 괘념치 않는다"면서 계획했던 해외여행을 주저 없이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겉으로는 "용감하다"고 추켜세웠지만, 속으로는 '돌아오면 내가 피해를 보는 것은 아닐까'하는 걱정이 앞섰다.
B씨는 "이런 시국에 여행을 떠나는 동료가 이기적인지, 내 걱정부터 하는 내가 이기적인지 답을 내리기 어려웠다"면서 "이런 현실이 싫고 서글프다는 느낌은 분명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익명성이 높아지고 공동체성이 점차 옅어지는 우리 사회에서 코로나19와 같은 사태가 구성원 간 불신과 적대감을 증폭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렇지 않아도 절박하고 팍팍한 내 일상이 다른 사람 때문에 지장을 받는 여지가 조금만 있어도, 예민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갖춰진 것이다.
한 사회학자는 사견임을 전제로 "근래 난민 수용을 놓고 우리나라에서 불거진 논란과도 맥락이 비슷하다"면서 "현재 벌어진 사회적 불안이나 갈등을 경제적 손실로 환산하는 연구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구체적인 숫자가 없더라도 이미 사회적으로 심각한 마이너스라는 점은 누구나 체감할 것"이라고 14일 말했다.
그는 "가령 누군가를 경계하거나 배척하는 상황이 일반화하면, 경계·배척된 사람들을 관리해야 하는 사회적 부담과 비용이 필요해진다"면서 "해법이 쉽지 않겠지만, 대인관계나 사회생활에서 발생하는 긴장이나 스트레스를 관리하려는 노력이 중단돼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