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윤 시인의 새로 쓰는 '섬 택리지'
맑고 청정한 남도 섬 4選…장도·상태도·중태도·하태도
신비한 해무가 감싸고 있는 장도
흑산면 장도는 길다. 섬은 남서로 길다. 그래서 장도다. 우리말로는 진섬이었을 터다. 장도는 그 자체로 하나의 산이다. 최고봉인 큰산이 273m에 불과하지만 경사는 가파르다. 섬은 대장도와 소장도로 구분되지만 물이 빠지면 서로 연결되니 하나의 섬이나 다름없다. 그 옆으로 내망덕도, 외망덕도, 쥐머리 섬들이 마치 산맥처럼 연달아 서 있다. 그래서 멀리서 보면 그대로 하나의 산줄기가 물 위에 솟아올라 쭉 뻗은 형국이다. 왜 아닐까. 장도와 흑산도 같은 섬들은 본래 육지였다가 빙하가 녹으면서 평지는 물에 잠기고 높은 산봉우리만 남은 것이니 섬은 그 자체로 산이다. 평지라 할 만한 땅이 없으니 마을도 산비탈에 위태롭게 들어서 있다. 계단식 논밭이 아니라 계단식 집들이다. 이웃집들끼리 층층이 어깨 걸고 있는 장도 마을은 그대로 하나의 고층 건물 같다.
흑산도의 작은 부속 섬이자 여객선도 들르지 않는 오지 낙도인 장도가 잠시나마 세상에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습지 때문이다. 장도 습지는 2004년 환경부가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했고, 2005년 람사르 습지로 인증됐다. 장도 습지는 섬 지역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산지습지다. 생물 다양성 유지를 위한 습지의 역할은 지대하다. 멸종위기종인 야생 동식물의 24%가 습지 보호구역에 살고 있다. 장도 사람들은 이 습지 덕분에 물 걱정 없이 살아왔다. 산 정상에서는 용천수가 끊임없이 솟아나곤 했었다. 습지는 사람뿐만 아니라 수많은 생물을 살리는 생명수의 원천이다. 장도습지에는 멸종위기종인 수달, 매, 솔개, 조롱이 등과 습지식물 294종, 포유류 7종, 조류 44종, 양서 파충류 8종, 육상곤충 126종, 식물군락 26개 등이 서식하고 있다.
마을 뒤 안 가파른 길을 걸어 올라가면 정상부에 습지가 있다. 스푼 모양의 분지 지형 안의 습지는 가로 300m, 세로 400m에 면적이 9만414㎡ 규모인 섬 지역 최대의 산지 습지다. 장도 산정에 습지가 생긴 것은 ‘이탄층’ 때문이다. 이탄층은 식물이 사멸한 뒤 썩거나 분해되지 않고 수천 년 동안 쌓여 형성된 지층이다. 스펀지 같은 이탄층은 저수지와 수질정화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며 동식물들에 서식지를 제공해 준다. 이탄층 위의 풀밭을 밟아 보면 푹신하다. 거기에 장도 습지 이탄층을 떠받치고 있는 기반 암석이 화강암이기 때문이다. 물이 잘 빠져나가는 암석층이었다면 이탄층이 있더라도 습지가 형성되지 못했을 것이다.
장도 습지가 물을 유지하는 것은 또 비가 아닌, 다른 수분 공급원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바로 해무다. 장도는 한국 서남부를 통과하는 난류의 길목에 있어 해무가 끊이지 않는다. 해무는 수분 공급과 동시에 습지 수분 증발을 억제해 주는 역할도 한다. 습지의 일등 공신인 셈이다.
대부분의 산지 습지가 과거에는 논으로 이용됐듯이 장도의 습지 또한 섬의 유일한 논이 있던 곳이다. 섬에서 쌀이 얼마나 귀했는지를 생각하면 장도 습지는 황금 논이었다. 장도를 비롯한 흑산도 인근 지역은 연평균 강수량이 1000㎜ 내외밖에 안 되는 대표적인 소우 지역이다. 그런데도 장도가 물이 풍부하고 논농사까지 가능했던 것은 오로지 이 습지 덕분이다. 논농사가 작파된 뒤에는 습지가 소 방목장이 됐다. 한 집당 보통 5마리씩, 많은 집은 20마리까지 길렀다. 장도 습지에 한때는 소가 150마리나 됐다. 제법 큰 목장이었던 셈이다. 소는 13년 정도 길렀다. 소 파동이 나서 송아지 한 마리가 10만원씩 하게 되자 다들 소를 정리했고, 습지에서는 더 이상 소도 기르지 않게 됐다.
이후 습지는 그대로 방치됐고 주민들은 습지 한가운데 솟아나는 용천수에 파이프를 연결해 마을까지 끌어와 식수로 사용했다. 환경부에서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한 뒤 습지에서 솟아나던 용천수 대신 산 아래 짝지골 계곡의 물을 받아 식수로 사용하게 됐다. 그 후 환경부에서 용천수 줄기를 보존해주기로 했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물줄기도 사라져버렸다. 사라진 것은 용천수만이 아니다. 물줄기가 없어지면서 작은 저수지도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용천수 물줄기가 없어지면서 모든 것이 사라져 버렸다. 환경부의 습지보호구역 지정이 습지를 훼손해 버린 역설! 환경부는 무어라고 답할까?
2019년 28가구 60명이 산다. 장도 사람들은 오랜 세월 수산물 채취로 살아왔다. 하지만 20여 년 전부터 전복 양식과 어류 가두리 양식이 시작돼 생업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그래도 가장 큰 소득원은 멸치잡이다. 그 밖에는 해조류 채취가 소득원이다. 작은 섬이지만 장도에는 해녀가 많았다. 제주에서 온 해녀도 있고 자생 해녀도 있다. 인근 해역에 전복, 해삼, 성게 등이 많다. 지금은 7명만 남았다. 장도 해녀 역시 고령화가 심각하다. 59세가 가장 어린 해녀이고 대부분이 육칠십대다. 장도의 또 하나 유산인 해녀가 사라질 날도 머지않았다. 늙은 해녀는 젊은 사람들이 안 돌아온다고 걱정이다. “늙은 사람들은 병원에 가 죽어 불고 20년쯤 뒤면 섬에 사람이 아주 없어져 불 것 같네요.” 노해녀에게 해산물 중 무엇이 제일 맛있는지 물으니 돌아오는 대답. “성게가 일품이죠.” 나그네 또한 성게를 으뜸으로 친다. 돌아오는 봄에는 장도 성게에 낮술 한잔 하러 또 오게 될 것만 같다.
목포항에서 쾌속선으로 3시간
홍어는 흑산 홍어다. 하지만 홍어는 옹진군 대청도 어장에서도 많이 잡힌다. 대청도, 소청도, 백령도 등은 옛날부터 홍어잡이로 큰 소득을 올렸다. 그런데 어째서 흑산 홍어가 이름 높을까. 그것은 바로 태도 서바다에서 잡히는 홍어 때문이다. 평상시에는 대청도, 백령도 인근 바다에 살던 홍어 떼가 가을철이면 남쪽으로 이동해 봄까지 머무른다. 이때가 산란기인 까닭이다. 산란철 홍어는 살이 찌고 영양가가 많아져 맛이 들 대로 든다. 이 산란철 홍어가 모여드는 곳이 태도 서바다다. 흑산 홍어가 유명한 것은 바로 이 태도 서바다에서 잡은 살찐 산란기 홍어 때문인 것이다. 흑산도에서 가거도 가는 뱃길에 있는 세 섬, 상태도, 중태도, 하태도 등을 태도군도라 부르는데 이 태도군도 서쪽 바다가 바로 홍어의 산란장인 태도 서바다다. 조선 정조 때 표류해서 필리핀과 오키나와까지 떠내려갔다 돌아온 홍어무역상 문순득이 홍어를 사서 싣고 영산포로 향하던 곳도 바로 이 태도 서바다였다. 태도야말로 흑산 홍어, 홍어문화의 원류다. 흑산 홍어가 유명하고 남도 쪽이 홍어 시세를 더 쳐주니 대청도 인근에서 잡힌 홍어들도 모두 목포 지역으로 들어온다. 국산이라 해서 다 흑산 홍어가 아닌 것이다. 흑산 홍어는 산란철 태도 서바다에서 잡힌 것이라야만 진짜다.
하태도에서 만난 어르신은 어린 시절 서바다에서 나는 크나큰 홍어들을 직접 보고 자랐다. 지금은 진짜 흑산 홍어가 없다고 한탄하신다.
“서바다에서 나는 홍어, 그 홍어가 진짜예요. 암치 하나가 12~13㎏까지 나가는데 지금은 많이 나가야 7~8㎏밖에 안 나가요. 그게 진짜 원조 홍어였어요. 지금은 대청도, 백령도에서 잡아 오죠. 그러니 진짜 흑산 홍어가 아닌 셈이죠.”
태도 서바다 중에서도 홍어가 가장 잘 잡히는 포인트는 느리섬과 어린여다.
태도군도의 섬들, 상·중·하태도는 내륙 사람들에게 낯선 이름이다. 난생처음 그 이름을 들어본 사람들이 태반일 것이다. 부근의 홍도와 흑산도, 가거도, 만재도 같은 이름난 섬들 사이에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무명으로 숨겨져 있는 낙도다. 낙도 중에서도 가장 먼 섬. 목포항에서 하루 단 한 번 여객선이 다니는데 쾌속선으로도 3시간이나 걸리는 뱃길이다.
태도는 해태가 많이 나는 섬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전라도 섬 지역에서는 김을 해태라 한다. 상·중·하태도, 고만고만한 세 개의 작은 섬은 바로 이웃해 있다. 흑산도에서 가까운 섬이 상태도인데 주민등록상 46가구 99명, 그중 가장 작은 섬은 중태도인데 11가구 25명이 산다. 하태도는 세 섬 중 가장 크고 출장소와 학교, 보건소 등 행정기관이 있는 중심 섬이다. 크다고 해봐야 80가구 150명이다. 상태도와 중태도는 5분 거리고 하태도는 20분 거리다.
상태도 선착장엔 노동 열사의 동상이…
상태도는 비탈진 언덕에 집들이 위태롭게 들어서 있다. 상태도는 낚시꾼이 많이 찾는 낚시 천국이다. 열기와 돌돔 등이 잘 잡힌다. 태도 섬사람들은 농토가 작으니 전적으로 바다에 의지해 살아왔다. 홍어 같은 물고기와 미역, 돌김 같은 해초류를 목포나 영산포에 가져다 팔고 식량을 사다 먹었다. 비탈밭에 고구마나 보리를 심기도 했지만 그런 식량은 금방 떨어져 잠깐의 먹거리밖에 되지 못했다. 태도 섬들에 사는 여자들은 대부분 물질이 본업이다. 이 지역에서는 해녀를 무레꾼이라 하는데 상태도에 9명, 하태도에 13명의 해녀가 있다. 상태도에는 25가구가 살아간다.
상태도 선착장에는 흉상 하나가 서 있다. 이 섬에서 태어난 독립투사일까. 그도 아니면 섬을 위해 크게 기여한 어느 유지의 동상일까. 아니다. 놀랍게도 노동열사의 동상이다. 이용석 열사. 더 놀라운 것은 동상을 세운 주체가 신안군수란 사실이다. 2013년 6월 13일 신안군수 박우량. 섬들로만 이뤄진 작은 군의 군수가 대놓고 노동열사의 동상을 세워주다니. 그 배짱이 놀랍고 그 헤아림이 고맙다. 인구 50명도 채 못 되는 작은 섬에 표를 보고 세웠을 리가 만무하다. 뜻이 없이 어찌 세웠겠는가.
머나먼 낙도가 이렇게 평화로울 수가…
상·중·하태도 세 섬의 가운데 있어서 얻은 이름이 중태도다. 세 섬 중 가장 작다. 평지가 없어서 비탈진 언덕에 몇 채의 집이 옹색하게 들어앉아 있지만 마을 안에 들어서니 섬은 더없이 편안하다. 주민들은 겨울이면 대부분 뭍의 자식들에게 가서 살다 온다. 바닷일이 없는 때를 이용해 긴 나들이를 하는 것이다. 머나먼 낙도의 외로움을 그렇게라도 자식들을 만나며 견뎌야 섬살이를 지속할 수 있는 것일 터다. 봄에는 갯바위에 붙은 돌김을 채취해 말려서 팔고 여름이면 톳이나 미역, 우뭇가사리 등을 채취해 살아간다. 마침 집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있는 노부부를 만났다. 커피를 내오시며 고맙다고 하신다. 무엇이 고마울까. 대접받는 나그네가 고마울 따름인 것을.
“초대를 해도 오시라 해도 안 오실 텐데 감사합니다.” 안주인이 거듭 머리를 조아린다. 아! 이런 황송할 데가 있을까. 나그네를 환대하는 그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 울컥한다.
“이 집이 젤 꼭대기여도 참 좋아요. 아침에 보면 동쪽에서 물 위로 해가 떠오른 걸 볼 수 있어요. 해가 바로 올라와요. 가만히 앉아 있어도.”
매일 바다에서 해가 솟아오르는 것을 볼 수 있는 섬 집. 매일 보는 일출도 늘 새로운 섬 집. 섬에서의 삶은 또 그렇게 지속된다.
■강제윤 시인은
강제윤 시인은 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 섬 답사 공동체 인문학습원인 섬학교 교장이다. 《당신에게 섬》 《섬택리지》 《통영은 맛있다》 《섬을 걷다》 《바다의 노스텔지어, 파시》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