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성태의 데스크 시각] 국회가 '정책의 디테일' 챙겨야 한다
중소·중견기업인들을 만날 때마다 정부 경제정책을 향한 반감과 ‘뿌리 깊은’ 정치 불신에 깜짝 놀라곤 한다. 10년 이상 알아온 한 중소기업 사장은 “‘어정쩡한’ 애국심으로 지방에 공장을 지은 게 후회막심”이라며 “지금이라도 공장을 베트남 등 해외로 옮겨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최저임금 인상을 필두로 주 52시간 근로제 등 역점 추진 중인 정책마다 중소기업을 궁지로 내몰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또 다른 중소기업 사장은 “창업 20년 만에 처음 적자를 내고 보니 정부에 ‘정나미’가 떨어진다”고 했다. 그러면서 “매출 대비 인건비 비중이 높아 허덕대다가도 간헐적으로 들어오는 일감의 납기를 맞출 일손이 부족하다”며 “경영의 예측 가능성이 사라지면서 사업을 제대로 할 수 없고 의욕도 안 난다”고 하소연했다.

"정부에 情 떨어진다"는 中企

정부의 정책이 소득주도성장에서 규제개혁을 통한 혁신성장, 대·중소기업 간 양극화 해소를 위한 공정경제로 그 무게중심이 바뀌었는데도 현장에선 불만이 수그러들 기미가 없다. 정부의 경제정책에 ‘목표’만 있지 ‘디테일’이 빠졌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가령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은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가중시키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업종과 지역을 불문한 동일 최저임금 적용은 서비스 시장의 인력 ‘쏠림현상’을 부추겨 제조업의 인력난을 심화시키고 있다.

지방에서 전자부품업을 하는 한 사장은 “생산직 근로자의 평균 연봉이 3000만원에 육박하는데 사람을 구할 수가 없다”고 전했다. 청년실업 대책으로 내놓은 실업수당은 중기 기피현상을 부채질하고, ‘취업메뚜기족(族)’이란 신조어까지 낳았다.

한 중소기업인은 “실업수당 확대가 구직을 유인할 것이란 발상 자체가 난센스”라며 “해고해달라며 대놓고 태업하는 직원들을 보면 사업할 의욕조차 없다”고 말했다.

정책에 현장 애로사항 등 디테일이 빠진 것은 국회가 제 역할을 못한 탓이 크다. 국회에 대한 기업인의 평가가 박한 이유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최근 500개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20대 국회의 중소기업 정책이 ‘잘못됐다’는 응답이 47.4%에 달했다. ‘잘했다’는 의견은 8%뿐이었다.

규제 풀어 현장애로 해소해줘야

74.8%는 오는 4월 국회의원 총선거를 통해 입성할 21대 국회가 ‘경제와 민생부터 챙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책임지는 국회’(8.6%) ‘법을 지키는 국회’(8.4%)가 그다음을 이었다.

차기 국회의 중점 추진 정책으론 CEO의 43.2%가 규제완화를 꼽았다. 중견·중소기업계의 사업환경을 옥죄는 대표적 규제가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이다. 지난 1월부터 신규 화학물질 0.1t 이상을 제조하거나 수입할 때 신고 등록하도록 규제가 강화됐다. 유럽연합(EU)과 일본의 1t 이상, 미국의 10t 이상 등록 의무화보다 10배에서 100배까지 강화된 기준이다. ‘대·중소기업 간 상생협력’(42.6%) ‘투자 활성화’(35%) ‘최저임금 인상 및 주 52시간 근로제 보완’(33.6%) 등도 시급한 과제로 지목됐다.

21대 국회에 바라는 점을 촉나라 제갈량의 글에서 유래한 ‘집사광익(集思廣益)’이란 사자성어로 제시한 것이 눈길을 끈다. 여러 사람의 지혜를 모으면 더 큰 효과와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아무리 욕해도 세상을 바꾸는 것은 결국 정치’란 말이 있다. 사자성어엔 정치가 기업인들의 ‘기댈 언덕’이 돼달라는 염원이 담겨 있다.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