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세계가 초비상사태에 들어갔다. 800여 명의 사망자를 기록한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확산 이후 17년이 지난 지금도 예측불허의 변종 바이러스에 대한 대비가 미흡한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인간을 겨냥한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나라도 지난해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바이러스로 인해 큰 재난을 겪었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지구가 존재하는 한 종식되지 않을 것이다.

○바이러스 구조 알아야 백신 개발

바이러스 약점 찾는 '초저온 전자현미경'…신약 개발에 활용
바이러스 재앙에 대처하는 과학의 힘은 대단하다. 바이러스의 생김새, 즉 입체구조를 정확히 알면 약점인 부위를 찾아낼 수 있는데 이를 통해 백신과 치료제를 신속하게 개발할 수 있다. 중국 과학자들은 지난해 발병한 ASF에 빠르게 대처하기 위해 초저온-전자현미경 기술(cryo-EM)로 ASF 바이러스의 정확한 입체구조를 밝혀냈다. 단백질 등의 생체물질을 초저온으로 급속히 얼려 본연의 상태를 유지하면서 전자빔을 이용해 고해상도로 입체구조를 분석하는 방법인 cryo-EM은 이미 태아소두증을 일으키는 지카 바이러스의 백신 개발에 기여하며 주목받았다. 2016년 지카 바이러스의 입체구조가 규명된 뒤 같은 해 백신 개발에 성공한 것이다. 코로나19의 입체구조도 곧 밝혀질 것이다.

cryo-EM 기술은 자크 뒤보셰, 요아힘 프랑크, 리처드 헨더슨 등 세 명의 과학자들이 이뤄낸 성과다. 2013년 시작된 ‘해상도 혁명’ 덕분에 그동안 기술적 한계로 알지 못했던 생명체의 입체구조를 고해상도로 영상화할 수 있게 됐다. 이 기술은 바이오, 화학, 재료 등 과학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기술로 인정받았다. 이들은 2017년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바이러스 약점 찾는 '초저온 전자현미경'…신약 개발에 활용
○기존 기술 단점 극복

생명의 기본단위인 세포는 단백질로 구성된다. 단백질의 입체구조는 주로 엑스선결정학(단백질을 결정화해 구조를 규명하는 방법)이나 핵자기공명법(용액에 녹아 있는 소규모의 단백질 구조를 밝히는 방법) 등으로 분석해왔다. 엑스선결정학은 1953년 DNA의 이중나선 입체구조를 밝혀 생명 현상의 비밀을 푸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 기술들은 단백질을 결정화해야 하고 고농도 단백질을 사용해야 하는 등 단점이 있다. 생명 조절에 핵심적 역할을 하는 거대 단백질 복합체나 막단백질의 입체구조는 대부분 밝혀지지 않았다. 생명 현상은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었다.

cryo-EM의 기술혁명은 이를 극복했다. 뒤보셰는 샘플을 초고속, 초저온으로 유리처럼 얼려 본연의 성질을 유지하면서 전자빔에 의한 손상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프랭크는 전자빔에 쪼인 샘플에서 얻는 모호한 2차원(2D) 이미지를 고해상도의 3D 이미지로 전환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헨더슨은 cryo-EM으로 단백질의 입체구조를 고해상도로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이 기술을 통해 단백질 결정을 만들지 않고 소량의 샘플로 막단백질과 거대 단백질 복합체의 고해상도 입체구조를 파악할 수 있게 됐다.

cryo-EM은 기존 기술이 해결하지 못한 생명의 비밀을 풀 수 있는 기술이다. 가까운 미래에 현대생물학에 혁명을 일으킬 것이다.

○신약 개발 돌파구 역할

세포막에 존재하면서 물질 수송, 외부신호 감지 등 중요한 생리기능을 담당하는 막단백질은 다양한 질병과 관련이 있다. 현재 개발되고 있는 신약 후보물질의 50% 이상이 막단백질을 표적으로 삼고 있다. 그동안 막단백질의 생산 및 결정화가 매우 어려워 대부분 물질구조가 파악되지 않았지만 전문가들은 cryo-EM 기술이 이를 극복하는 첨병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cryo-EM이 신약 개발에 돌파구가 될 것이라는 얘기다.

이 기술의 파급효과를 일찍이 포착한 미국, 유럽, 일본, 중국 등은 이미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고 실제로 우수한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아직 cryo-EM 기술에 대한 관심이 낮다. 고성능 cryo-EM 장비 도입, 전문가 양성, 연구 인프라 확장 등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