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 30여 대 추돌사고가 발생한 전북 남원시 사매2터널에서 18일 구조대원들이 탱크로리 차량을 견인하고 있다.   /연합뉴스
차량 30여 대 추돌사고가 발생한 전북 남원시 사매2터널에서 18일 구조대원들이 탱크로리 차량을 견인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내 도로의 터널 열 곳 가운데 여덟 곳 가까이가 제연시설(제트팬) 등을 제대로 갖추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7일 순천~완주 고속도로 사매2터널(전주 방향)에서 차량 30여 대가 추돌해 5명이 사망하고, 43명이 중상을 입는 큰 피해가 난 것도 제연시설 등 방재 장비가 없었기 때문이다.

18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전국 도로에 있는 2596개 터널 중 길이가 1㎞ 미만인 곳은 79.8%인 2074개에 달한다. 국토부의 도로·터널 방재시설 설치 관리 지침에는 길이가 1㎞ 미만인 터널엔 소화전 설비, 물 분무시설, 제연 설비, 자동 화재탐지 설비 등은 의무적으로 설치할 필요가 없다. 길이가 710m에 불과한 사매2터널도 스프링클러 등의 시설이 없었다. 한국도로공사 관계자는 “국토부 규정과 별도로 교통량이 많은 500m 이상 1㎞ 이하 터널에는 제연시설을 설치하고 있다”면서도 “사매2터널은 내부 기준에 부합하지 않아 환기시설이나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지 않고 소화기만 있었다”고 설명했다.

불나면 속수무책…전국 터널 80% 제연시설 '사각지대'
전문가들은 2004년 제정된 뒤 한 번도 바뀌지 않은 관련 규정을 현실에 맞게 손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법적 기준으로 1㎞ 이상인 터널에만 이런 시설을 설치하라고 하면 1㎞ 이하인 터널엔 설치하지 않는다”며 “현재 4등급으로 나뉘어 있는 방재등급을 세분화해 짧은 길이의 터널에도 방재시설 설치를 의무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프랑스와 독일에선 길이가 각각 300m, 400m를 넘는 터널에 제연시설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서울시도 2022년까지 관내 500m 이상 터널과 지하차도에 모두 제연시설을 설치할 계획이다. 인세진 우송대 소방방재학부 교수는 “터널은 일반 건물과 달리 밀폐돼 있어 대피하기 어렵고 고립되기 쉽다”며 “터널은 사고가 발생하면 피해 규모가 커질 수 있는 만큼 관련 규정을 개정해 제연 설비 설치 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순신 기자 soonsin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