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글와글|말 없이 휴가간 후배 핀잔 줬더니…"우리 아빠 변호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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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 A씨는 최근 후배로부터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하겠다"는 협박 아닌 협박을 받았다.
사연은 이렇다. 야간에 2인이 조를 이뤄 당직 근무를 서야 하는 A씨의 회사는 매월 말이면 다음 달의 당직 스케줄이 공유됐다. 당직은 순번이 정해져 있어 스케줄표가 따로 나오지 않아도 직원들이 충분히 예상 가능하게 돼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회사에 비상이 걸렸다. A씨와 함께 야간 근무를 해야 할 B씨가 출근을 하지 않았던 것. 당황한 A씨는 즉각 상사에게 보고했고, "휴가를 갔다"라는 황당한 답변을 받았다. 알고 보니 B씨가 당직날에 맞춰 연차를 쓰고, 교대 인원을 구하지도 않은 채로 근무를 펑크낸 것이었다.
결국 이날 A씨는 B씨의 몫까지 전부 혼자 맡아 일해야 했다.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당장 눈 앞에 닥친 일 때문에 어딘가에 하소연할 수도 없었다.
다음날 동료들에게 B씨의 연차에 대해 물었지만 그 누구도 이 사실을 알고 있지 않았다. A씨는 B씨가 어떤 동료한테도 말하지 않고, 조용히 당직에 맞춰 연차 결재를 받은 게 도통 이해되지 않았다. 공정하게 일수를 맞춘 야간 근무 스케줄인데다 2인이 팀을 이루는 것인데 당연히 '교환'을 해야지, 근무를 일방적으로 펑크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휴가에서 돌아온 B씨에게 확인해보니 실제로 B씨는 실수가 아닌, 일부러 자신의 당직에 맞춰 연차를 쓴 게 맞았다. 그러나 B씨는 당당했다. 그는 "윗선에서 결재를 한 건데 왜 나한테 지적이냐"고 반박했다. 황당해진 A씨는 "결재자들이 그 많은 직원의 개별 당직 스케줄까지 직접 비교하고 챙기면서 연차 결재하지는 않는다. 본인이 신경써서 결재를 올렸어야하는 부분 아니냐"고 말했다.
불만스러운 얼굴이긴 했지만 B씨는 더 이상 A씨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그래서 A씨는 "다음에는 이런 경우 서로 미리 말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다. 갑작스럽게 혼자 일하게 되니 어이도 없고 힘들었다"라고 당부하고는 자리를 떴다. 이후 B씨는 상사에게도 꾸중을 들었다.
문제는 며칠 뒤에 벌어졌다. 상사의 호출을 받고 불려간 A씨는 B씨가 자신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할 것이라는 말을 전해들었다. B씨는 아빠가 변호사라 이야기하며 근로기준법 항목을 요목조목 짚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연차는 본인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것인데 회사에서 나를 꾸짖은 것은 직장 내 괴롭힘이나 다름 없다"며 자신에게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고. 그렇지 않으면 법으로 해결할 것이라며 으름장을 놨다고 했다.
A씨의 상사는 이 같은 B씨의 태도에 이미 그와 한 차례 언성을 높여 다퉜고, 갈등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상태였다. A씨는 혼란스러웠다. 자신도 B씨와 한바탕하고 싶었지만, 본인이라도 먼저 사과를 해서 회사까지 얽혀버린 이 꼬인 관계를 풀어야 하는 것인지 고민스러웠다. 또 실제로 이런 경우가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에 해당하는 것인지 답답하기만 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2018년 12월 27일 국회를 통과해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명시됐고, 2019년 7월 16일부터 실시됐다. 사용자나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우위를 이용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 정신적인 고통을 주는 등의 행위를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직장에서의 지위 혹은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는지',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는 행위인지',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인지' 이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만 한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가져올 근무 환경에서의 비상식적 악습 근절에 대한 기대와 환영은 현재까지도 높은 상황이다. 그러나 시행 초기부터 따르던 기준의 모호함, 악용이나 부작용에 대한 우려 등이 여전히 잔존하는 것도 사실이다. 건강한 사내 문화 정착을 위해서는 질책에 앞서 정당한 언사와 지시가 수반되고 있는지, 주장을 내세우기에 앞서 조직에 피해를 가하고 있지는 않는지 스스로를 한 번 더 되돌아보는 배려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와글와글]은 일상 생활에서 겪은 황당한 이야기나 어이없는 갑질 등을 고발하는 코너입니다. 다른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은 사연이 있다면 보내주세요. 그중 채택해 [와글와글]에서 다루고 전문가 조언도 들어봅니다. 여러분의 사연을 보내실 곳은 jebo@hankyung.com입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newsinfo@hankyung.com
사연은 이렇다. 야간에 2인이 조를 이뤄 당직 근무를 서야 하는 A씨의 회사는 매월 말이면 다음 달의 당직 스케줄이 공유됐다. 당직은 순번이 정해져 있어 스케줄표가 따로 나오지 않아도 직원들이 충분히 예상 가능하게 돼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회사에 비상이 걸렸다. A씨와 함께 야간 근무를 해야 할 B씨가 출근을 하지 않았던 것. 당황한 A씨는 즉각 상사에게 보고했고, "휴가를 갔다"라는 황당한 답변을 받았다. 알고 보니 B씨가 당직날에 맞춰 연차를 쓰고, 교대 인원을 구하지도 않은 채로 근무를 펑크낸 것이었다.
결국 이날 A씨는 B씨의 몫까지 전부 혼자 맡아 일해야 했다.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당장 눈 앞에 닥친 일 때문에 어딘가에 하소연할 수도 없었다.
다음날 동료들에게 B씨의 연차에 대해 물었지만 그 누구도 이 사실을 알고 있지 않았다. A씨는 B씨가 어떤 동료한테도 말하지 않고, 조용히 당직에 맞춰 연차 결재를 받은 게 도통 이해되지 않았다. 공정하게 일수를 맞춘 야간 근무 스케줄인데다 2인이 팀을 이루는 것인데 당연히 '교환'을 해야지, 근무를 일방적으로 펑크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휴가에서 돌아온 B씨에게 확인해보니 실제로 B씨는 실수가 아닌, 일부러 자신의 당직에 맞춰 연차를 쓴 게 맞았다. 그러나 B씨는 당당했다. 그는 "윗선에서 결재를 한 건데 왜 나한테 지적이냐"고 반박했다. 황당해진 A씨는 "결재자들이 그 많은 직원의 개별 당직 스케줄까지 직접 비교하고 챙기면서 연차 결재하지는 않는다. 본인이 신경써서 결재를 올렸어야하는 부분 아니냐"고 말했다.
불만스러운 얼굴이긴 했지만 B씨는 더 이상 A씨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그래서 A씨는 "다음에는 이런 경우 서로 미리 말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다. 갑작스럽게 혼자 일하게 되니 어이도 없고 힘들었다"라고 당부하고는 자리를 떴다. 이후 B씨는 상사에게도 꾸중을 들었다.
문제는 며칠 뒤에 벌어졌다. 상사의 호출을 받고 불려간 A씨는 B씨가 자신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할 것이라는 말을 전해들었다. B씨는 아빠가 변호사라 이야기하며 근로기준법 항목을 요목조목 짚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연차는 본인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것인데 회사에서 나를 꾸짖은 것은 직장 내 괴롭힘이나 다름 없다"며 자신에게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고. 그렇지 않으면 법으로 해결할 것이라며 으름장을 놨다고 했다.
A씨의 상사는 이 같은 B씨의 태도에 이미 그와 한 차례 언성을 높여 다퉜고, 갈등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상태였다. A씨는 혼란스러웠다. 자신도 B씨와 한바탕하고 싶었지만, 본인이라도 먼저 사과를 해서 회사까지 얽혀버린 이 꼬인 관계를 풀어야 하는 것인지 고민스러웠다. 또 실제로 이런 경우가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에 해당하는 것인지 답답하기만 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2018년 12월 27일 국회를 통과해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명시됐고, 2019년 7월 16일부터 실시됐다. 사용자나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우위를 이용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 정신적인 고통을 주는 등의 행위를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직장에서의 지위 혹은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는지',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는 행위인지',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인지' 이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만 한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가져올 근무 환경에서의 비상식적 악습 근절에 대한 기대와 환영은 현재까지도 높은 상황이다. 그러나 시행 초기부터 따르던 기준의 모호함, 악용이나 부작용에 대한 우려 등이 여전히 잔존하는 것도 사실이다. 건강한 사내 문화 정착을 위해서는 질책에 앞서 정당한 언사와 지시가 수반되고 있는지, 주장을 내세우기에 앞서 조직에 피해를 가하고 있지는 않는지 스스로를 한 번 더 되돌아보는 배려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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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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