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코 ‘아무노래’ 영상 캡처. 한경 DB
지코 ‘아무노래’ 영상 캡처. 한경 DB
노래가 흘러나오면 양손을 들어 검지 손가락을 까딱인다. 그러고는 팔을 위아래로 흔들어 신나게 춤을 춘다. 가수 지코의 ‘아무노래’ 춤을 따라한 영상들이다.

50초에 불과한 이 짧은 영상들은 글로벌 동영상 플랫폼 ‘틱톡’에만 10만 편이 넘게 올라왔다. 관련 영상의 조회 수는 1억600만뷰를 돌파했다. 지코를 포함해 이효리, 화사, 청하 등 스타들이 안무 영상을 올렸을 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춤을 따라하며 영상을 잇달아 올리고 있다. 이에 힘입어 음원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지난달 공개 직후 주요 음원 사이트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지금도 상위권에 머물러 있다.

‘아무노래 챌린지’라는 타이틀로 만들어지기 시작한 이 영상은 틱톡과 함께 기획된 이벤트다. 동영상 플랫폼에서 가수와 콜라보레이션을 한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그저 음악에 맞춰 잠깐 춤을 추는 것 뿐인데 수많은 대중들이 이를 따라하고 열광하는 일은 분명 이례적이다. 여기엔 어떤 문화적 코드가 담겨 있는 것일까.

‘아무노래’ 열풍은 짧고 인상적인 ‘밈(Meme)’에 즉각적이고 폭발적으로 반응하는 ‘밈 컬처’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보여준다. 밈은 <이기적 유전자>를 쓴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제시한 개념으로, ‘문화적 유전자’를 의미한다. 요즘엔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행동과 양식 또는 그 이미지를 뜻하는 말로 자주 사용된다. ‘짤’ 등 짧은 영상이 밈의 대표적인 형식이다.

밈 컬처는 유튜브 등 영상 플랫폼의 등장과 함께 시작됐다. 2014년 루게릭병 환자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아이스버킷 챌린지’가 대표적이다. 얼음물을 뒤집어 쓰는 장면을 찍은 이 영상들은 빠르게 퍼져 나갔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밈 컬처는 일부 셀럽들에 한해 이뤄졌다.

최근엔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대중들이 함께 즐기기 시작했다. 직접 밈 컬처의 주체가 돼 콘텐츠를 만들고 확산시킨다. 해외에선 ‘아무노래’에 앞서 이런 현상이 나타났다. 가수 릴 나스 엑스는 자신의 노래 ‘올드 타운 로드(Old Town Road)’에 카우보이 콘셉트를 더해 ‘이햐 챌린지(yeehawchallenge)’를 시도했다. 덕분에 이 노래는 지난해 미국 빌보드 싱글 차트인 ‘핫 100’에서 19주간 1위를 차지했다.

밈 컬처 확산의 비결은 ‘아무노래’ 영상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이 영상은 처음부터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참여를 유도하도록 구성돼 있다. 동작 자체가 누구나 따라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신나게 추는 춤을 보면 나도 모르게 어깨를 들썩이고 같이 해보고 싶은 충동이 든다. 시작부터 카메라를 향해 또렷이 응시하며 검지 손가락을 반복해 움직이는 것도 참여를 유도한다. ‘일어나서 함께 춤추자’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결국 영상을 본 사람이 다시 영상을 틀고 동작을 따라하며 춤을 춰 보는 것으로 이 콘텐츠는 완성되는 셈이다.

‘콘셉팅(concepting)’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10~30대들은 재밌는 콘셉트를 연출해 사진이나 영상을 찍고 SNS에 올린다.‘인싸(인사이더의 줄임말·사람들과 잘 어울려 지내며 유행을 이끄는 사람)’가 되는 필수 조건 중 하나가 콘셉팅이기도 하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트렌드코리아 2019>를 통해 이런 현상을 소개했다. 김 교수는 “그동안 전문 창작자에게 국한됐던 콘셉팅이 일반 소비자에게 확산되고 있다”며 “콘셉트가 일상 속 순간순간의 목표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무노래’를 따라하는 것만으로 재밌는 콘셉팅이 이뤄지고, 인싸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리처드 도킨스가 제시했던 ‘밈’의 개념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자기 복제’다. 생명체가 유전자의 자기 복제를 통해 자신의 형질을 후세에 전달하는 것처럼, 밈도 자기 복제를 하여 널리 전파되고 진화한다. 좁게는 한 사회의 유행이나 문화 전승을 가능하게 하고, 넓게는 인류의 다양하면서도 다른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원동력이 된다. 인터넷에서 확산되고 있는 밈 컬처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대중들은 짧은 영상이란 쉽고 간편한 밈을 통해 문화적 자기 복제를 하고, 확산과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것 같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