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들어 증시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채권은 끝물”이라며 주식시장 랠리를 예상했다. 지난해 시장을 억눌렀던 미·중 무역분쟁이 완화되고 글로벌 경기 회복 기대도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달도 안 돼 분위기가 180도로 바뀌었다. 뜻하지 않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때문이다.

연초 경기 반등을 예상하고 위험자산에 몰리던 자금이 증시를 떠나 다시 안전자산으로 피신하는 모습이다. 그 덕분에 채권시장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강세를 이어갈 분위기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가 2분기 이후까지 장기화되면 글로벌 공급망 붕괴로 경제 타격이 심각할 우려가 커 당분간 채권시장 랠리는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끝물이라더니…채권 강세장 돌아오나
코로나19 확산에 글로벌 금리 하락

21일 서울 채권시장에서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0.052%포인트 내린 연 1.182%에 마감했다. 3년 만기 국고채 금리가 연 1.2%선 아래로 내려온 것은 미·중 무역갈등이 심화됐던 지난해 8월 이후 처음이다. 당시 연 1.093%로 사상 최저치를 경신했던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이후 미·중 무역갈등 완화와 각국 정부 차원의 경기 부양 기대 등이 작용하면서 지난해 11월 연 1.5%대까지 반등한 이후 석 달여 동안 연 1.3~1.5% 박스권에서 움직였다. 그러다 국내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한 지난 18일 기준금리(연 1.25%)에 근접한 연 1.271%까지 떨어졌고 20일과 21일엔 각각 1.25%선과 1.20%선마저 내줬다.

허태오 삼성선물 연구원은 “국내 코로나19 확진자가 이틀 연속 무더기로 나오는 등 지역감염 우려가 높아진 데다 중국 인민은행이 기준금리(1년 만기 대출우대금리)를 0.1%포인트 인하하면서 국내 시중 금리의 하방 압력이 커지고 있다”며 “코로나19 사태가 중국 일본 한국 등 동아시아 전체로 확산되자 미국 유럽 등에서도 채권 금리가 동반 하락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미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21일 연 1.5152%로 전날보다 0.05%포인트 급락했으며 독일 10년 만기 국채 금리도 연 -0.444%로 0.026%포인트 내렸다.

국내 자금도 안전자산으로 급선회하는 분위기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한 달간 국내 채권형 펀드에 2835억원이 순유입됐다. 지난 한 주 동안 들어온 자금만 2254억원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반면 국내 주식형 펀드에서는 한 달 새 2조4584억원이 빠져나갔고 1주일간 순유출된 자금도 5948억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연 1% 벽 무너질까…전망 엇갈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사태가 3~4월까지 종식되지 않으면 이 같은 강세장이 계속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다만 지난해 8월 달성한 사상 최저 금리 기록을 또 한번 경신하고 연 1% 벽을 깨뜨릴 수 있을지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감염병 공포가 경기 반등 추세 자체를 꺾을 정도로 확대될 가능성은 현시점에서 낮아 보인다”며 “한국은행이 선제 대응을 하기 위해 오는 27일 기준금리를 인하하더라도 연말까지 추가로 더 내리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채권시장이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를 선반영하는 만큼 시장 금리도 연 1% 이하로 내려갈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얘기다.

반면 이미선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코로나19 사태로 여행·레저뿐만 아니라 유통·제조업 등 분야별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며 “당초 예상한 3월 종식은 이미 물 건너갔고 4~5월까지 이 같은 상황이 계속되면 채권시장도 한 차례 기준금리 인하로는 부족하다고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연구원은 이어 “이렇게 되면 금리 하단을 연 1% 아래로 열어두는 게 합리적일 것”이라고 했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