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임원조·이상옥 부부, 매달 1차례 이상 장애·노인시설서 대접
"내 가족 힘들고 배고플 때 대접받으면 얼마나 고마울까 하는 생각에"
[#나눔동행] "33년 전 시작한 자장면 봉사…10년은 더해야죠"
"결혼하면서 시작했으니 33년 됐네요.

건강만 허락한다면 앞으로 10년은 더 봉사하고 싶어요"
지난달 19일 오전 대전 서구 한 중증장애인시설서 만난 임원조(60) 씨 이마에는 연신 굵은 땀방울이 맺혔다.

마스크를 하고 있음에도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은 가리지 못한다.

임씨는 애써 준비 중인 음식에 땀이 떨어지지 않게 조심하면서 자장면 조리에 여념이 없다.

지난밤 아내 이상옥(56) 씨와 함께 준비한 양파와 배추 등 채소를 삶고, 춘장을 섞어 200인분 자장 양념을 만든다.

임씨 부부는 이른 아침부터 식당에서 면 뽑는 기계를 챙겨와 이곳 탁자 위에 설치해뒀다.

이 기계는 미리 준비해 가져온 200인분 반죽을 조금씩 조금씩 흡입한 뒤 가느다란 면으로 만들어 내놓는다.

기계에서 나온 면을 빼내 끓는 물에 넣어 삶는 작업이 수십 분째 이어진다.

임씨가 삶은 면을 그릇에 담아 아내에게 건네면, 아내는 미리 끓여 놓은 자장을 한 국자 퍼 면 위에 뿌리고 손님들에게 내간다.

[#나눔동행] "33년 전 시작한 자장면 봉사…10년은 더해야죠"
자장 양념이 면에 적절히 녹아들도록 맛나게 비벼 먹는 것은 손님들 몫이다.

이곳 손님 대부분은 정신적으로 아픈 아이들이다.

몸이 불편해 혼자 식사를 해결할 수 없는 아이들도 많다.

비교적 덜 아픈 아이와 이들을 보살피는 선생님들이 도와줘 감칠맛 넘치는 자장면 한 끼를 맛본다.

이씨는 "몸이 불편해 침상에 누워 있는 아이들에게 면을 그대로 줄 수 없어 밥알처럼 가위로 잘게 썰어 내준다"며 "수년째 하다 보니 얼굴을 알아보고 맛있다고 인사를 해주는 아이들도 있고, 항상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한 달여가 지난 20일 오후 3시 임씨 부부가 운영 중인 서구 도마동 매일반점을 찾았다.

1987년 결혼하면서 유성구 진잠동에 중화요리 식당을 열었던 이들은 2001년 이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눔동행] "33년 전 시작한 자장면 봉사…10년은 더해야죠"
점심을 먹기에는 다소 늦은 시간인데도 식당 안은 자장면과 탕수육을 즐기는 손님들로 붐볐다.

자장면 가격은 1천500원이고, 짬뽕은 2천500원이다.

시중 가격의 3분의 1도 안되는 참 '착한 가격'이다.

처음 장사를 시작했던 1987년 자장면 한그릇에 600원을 받았다고 하니, 가격이 올랐다고 볼 수도 없는 수준이다.

그렇다고 재료와 음식 질이 낮은 것은 절대 아니다.

이씨는 "이사 올 때 식당 건물을 사서 들어와 임대료가 나가지 않는다"며 "배달은 하지 않고 남편이랑 2명이 운영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선해 가격을 낮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시 봉사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임씨 부부는 친척 소개로 1987년 결혼하면서 봉사의 길에 들어서게 됐다.

들어보니 어떤 거창한 이유가 있던 것도 아니다.

[#나눔동행] "33년 전 시작한 자장면 봉사…10년은 더해야죠"
이씨는 "돈이 많았던 것도 아닌데 자장면 만드는 것은 재능이고, 기술이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봉사하자고 마음먹었다"며 "원래 별다른 뜻 없이 경로당에서 매달 한 번 동네 어르신들 접대하던 게 일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자장면은 600원 하던 시절 특별한 날에만 먹을 수 있던 음식이었다, 우리 식당도 줄을 서서 먹고 엄청났었다"며 "시간이 갈수록 몸도 많이 힘들어지다 보니 돈을 버는 욕심을 버렸다, 1천500원 하는 자장면 가격도 10년은 더 됐을 것"이라고 전했다.

임씨 부부는 1997년 외환위기 사태 여파로 2000년대 들어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그 위기는 자녀 2명과 함께 이겨냈다.

부모님을 돕던 아이들은 어느새 속기사로, 중앙부처 공무원으로 각각 성장했다.

이씨는 "아이들이 잘 컸다, 중고등 학생 때는 식당일뿐만 아니라 함께 봉사 현장에 가서 도와줬다"며 "별다른 탈 없이 자라준 아이들에게 정말 감사한다, 우리보다 업그레이드되지 않았나"라며 밝게 웃는다.

[#나눔동행] "33년 전 시작한 자장면 봉사…10년은 더해야죠"
임씨 부부는 33년간 매달 최소 한 차례는 복지시설을 방문해 200여명을 대상으로 자장면을 무료로 제공해 왔다.

복지시설에 거주하는 홀몸노인을 식당으로 초대해 생일상도 차려줬다.

지금까지 몇차례, 몇명에게 자장면을 제공했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지금도 쌀 100㎏을 1년에 두 번 동사무소에 기부한다.

지난 2일에도 친척 부탁으로 고교 야구 선수에게 자장면과 탕수육을 만들어 주고 왔다.

이씨는 "내 가족이 힘들고 배고플 때 대접받으면 얼마나 고마울까 하는 생각에 봉사가 즐겁기만 하다"며 "봉사하러 가면 반갑게 인사해주시는 어른들도 계시고, 그런 게 그냥 좋다"고 말했다.

임씨 부부는 건강만 허락한다면 앞으로 10년은 더 봉사할 생각이다.

삶은 면을 끊어 그릇에 담는 작업을 주로 해온 이씨는 몇 년 전부터 엄지손가락에 변형이 생긴 상황이다.

매일 영업이 끝나면 온몸에 파스를 붙인 채 힘들어하는 부부에게 자녀들도 더는 힘들게 일하지 말라고 성화다.

이씨는 "건강하면 계속하고 싶은데 사람 일은 모르지 않나, 그래도 70살까지는 해야겠다"면서도 "아무래도 경기가 안 좋다 보니 3년간 쉬어온 일요일 영업을 재개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나눔동행] "33년 전 시작한 자장면 봉사…10년은 더해야죠"
오후 4시 무렵 주방에서 나온 임씨는 마지막으로 "코로나19 때문에 3월 봉사를 어떻게 할지 시설 관계자분들과 상의해보려 한다"며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봉사를 하고 싶다"며 환하게 웃었다.

임씨는 2015년 12월 노인복지관과 어린이 보호시설 등을 찾아 자장면 봉사를 한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