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미리 교수부터 지방 전통시장의 반찬가게 주인까지 신상이 탈탈 털리는 것을 보면서 문득 마크 저커버그의 과거 발언이 떠올랐다. 기억이 가뭇해 찾아봤더니 꼭 10년 전이었다. 2010년 초 저커버그는 미국 정보기술(IT)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프라이버시의 시대는 끝났다”는 도발적인 주장을 펼쳤다. 6년 만에 페이스북을 세계 최대 SNS로 키워낸 스물여섯 살 청년의 패기 넘치는 발언이었다.

즉각 반론이 이어지며 논란이 커졌지만 저커버그의 관점에선 당연한 주장이기도 했다. 페이스북이 딛고 선 ‘연결’이라는 가치는 곧 ‘공유’를 뜻하고, 서로 나누려면 비밀이 있어선 안 되기 때문이다. 작년 4분기 페이스북 매출의 98%인 207억달러(약 24조6000억원)는 디지털 광고에서 나왔다. 사용자 정보와 같은 빅데이터를 활용한 맞춤형 광고다. 가입자들이 갖다 바친 사생활 정보는 곧 페이스북엔 돈이다.

가장 핫한 제품은 프라이버시

10년 만에 강산은 많이 변했다. 지난달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쇼 ‘CES 2020’에서 인공지능(AI)과 함께 가장 중요하게 다뤄진 주제는 프라이버시 보호였다. 구글은 음성 AI비서 서비스에 개인정보 보호 명령어를 추가했고, 아마존은 사용자가 보안 기능을 조절하는 제어센터 메뉴를 새로 선보였다. 28년 만에 CES를 찾은 애플도 프라이버시 정책을 집중 홍보했다. CNN이 ‘CES 2020의 가장 핫한 제품은 프라이버시’라고 제목을 달 정도였다. 이진규 네이버 이사는 탐방 보고서(한국인터넷진흥원)에서 “가전제품을 주제로 한 행사에서 프라이버시가 가장 뜨거운 주제가 된 것은 관련 이슈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 기업의 경쟁력이라는 점을 테크 기업들이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평가했다. 개인정보 유출로 여러 차례 곤욕을 치렀던 페이스북도 결국 지난해 프라이버시 전략을 크게 바꿨다. ‘디지털 광장’에서 ‘집안 거실’로 서비스 개념을 바꾸고 사생활 보호를 더욱 중시하겠다는 방침을 내걸었다. 이용자 정보가 사업 모델의 핵심인 회사가 과연 프라이버시 보호를 얼마나 해줄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하지만, 어쨌거나 페이스북조차도 설립 15년 만에 전략 대전환을 선언했다.

사용자 스스로 절제해야

테크 기업들이 너도나도 프라이버시 중시를 외치는 반면 정작 사용자들은 개의치 않는 경우가 많다. 개인의 시시콜콜한 사생활까지 퍼나른다. SNS는 공개적인 신상정보 게시판이나 마찬가지라는 보안 전문가들의 경고가 무색하다. 최근 해외에서 ‘셰어렌팅(sharenting)’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주목된다. 부모의 자녀양육을 뜻하는 패런팅(parenting) 앞에 공유(share)를 붙인 용어다. 의사결정 능력이 없는 자녀의 사진이나 영상, 개인정보를 SNS에 과다하게 노출하는 행위를 뜻한다. 예쁘게 커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정도가 지나친 사례를 흔히 본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미국과 유럽에선 자녀가 성장한 뒤 이를 문제삼을 경우 어떤 마찰이 빚어질 수 있는지를 놓고 법학계 등을 중심으로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고 있다. 상당수 부모는 SNS가 자녀 성장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걱정한다. 부모의 과도한 SNS 몰입이 오히려 자녀에게 뜻하지 않은 해를 입히기도 한다. 디지털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선 규제와 기술 개발도 중요하지만 사용자 스스로의 주의와 절제부터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에 귀를 기울일 때다.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