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평화 아닌 갈등 불씨 지핀 新중동평화 구상
최근 몇 주간 온 세상이 중국 우한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팔레스타인에서는 유혈 충돌과 시위가 이어졌다. 지난달 2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격 제안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평화를 위한 소위 ‘세기의 협상’이 발표된 직후부터다. 두 나라의 평화로운 공존과 팔레스타인의 미래를 위한 마지막 기회라는 미국의 일방적 선언에 팔레스타인은 즉각 반대했다. 22개국으로 구성된 아랍연맹과 이슬람국가 57개국 연합체인 이슬람협력기구조차 이를 맹비난하면서 세기의 협상은 출발부터 암초에 걸렸다. 한마디로 ‘친(親)이스라엘-반(反)팔레스타인’ 구도가 확연한 데다, 협상 내용의 핵심도 ‘자존심과 돈의 교환’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가 구상한 이 평화안의 핵심은 1967년 3차 중동전쟁으로 이스라엘이 불법 점령한 땅에 수백 개의 정착촌을 지어 살고 있는 약 75만 명의 이스라엘인의 실효적 지배를 인정하면서 이 영토의 관할권을 이스라엘이 갖도록 하고, 예루살렘을 완전한 이스라엘 수도로 삼는 것이다. 대신 거덜나고 조각난 미래 팔레스타인 독립국에는 장기간에 걸쳐 500억달러(약 60조원)를 투자해 경제 부흥을 돕는다는 것이다. 트럼프의 표현대로 하자면 “매일 여기저기 돈 꾸러 다니는 구걸 행각을 그만하게 하고 국가답게 제대로 살게 해주겠다”는 것이다.

얼핏 보면 매우 현실적이고, 협상가 트럼프의 주특기가 돋보이는 창의적인 방안처럼 보인다. 최대 재정지원국이던 ‘형제의 나라’ 사우디아라비아가 이스라엘과 협력하면서 트럼프 행정부를 지지하고 있고, 아랍의 대의만 외치는 주변 국가들은 제 앞가림하기도 벅찬 현실이다. 팔레스타인은 공무원 월급조차 제대로 주지 못할 정도로 나라 살림이 파탄난 데다, 대중의 정부 불신과 불만도 극에 달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가 던진 제안은 시기적으로도 절묘하다.

그러나 트럼프의 제안은 인류사회가 지금까지 지켜 온 보편적 원칙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독약 처방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만장일치 결의 242호, 338호 등을 통해 이스라엘의 점령지 반환과 군대 철수, 정착촌 건설 중지 등을 일관되게 요구해 왔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세 종교의 공동성지인 예루살렘을 국제적 관리 아래에 두고 화해와 공존을 권고해 왔다. 예루살렘은 불법 점령 직전까지 1330년간 팔레스타인의 도시였다. 더욱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국 수뇌부는 노벨평화상을 공동 수상하며, 1993년 오슬로에서 ‘땅과 평화의 교환’을 통해 점령지에 팔레스타인국가 창설을 합의했다. 이 합의마저 깨지게 되면서 중동평화 문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팔레스타인 문제의 갈등과 비극은 1897년 스위스 바젤에서 시작됐다. 그해 8월 29일 제1차 세계시온주의자 대회가 바젤에서 열렸고, 테오도어 헤르츨이 주도해 팔레스타인에 유대국가를 창설한다는 비밀 강령을 채택했기 때문이다.

스위스 수도 베른에서 기차로 1시간 거리의 바젤에 도착해 시온주의자 대회가 열렸다는 슈타트카지노 콘서트홀을 찾아갔다. 지금은 바젤 심포니오케스트라가 상주하고 있으며, 9월 공연을 위한 대규모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다. 19세기 말 망령처럼 확산된 유럽의 반유대주의 물결 속에서 공동체의 절멸 위기를 이겨내고 홀로코스트라는 인류의 비극을 온몸으로 감내해 온 유대인들의 생존 노력은 그 자체로 존중받고 지지받아야 한다.

그런데 왜 2000년 동안 평화롭게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 땅이 유럽에서, 유럽인들에 의해 박해받던 유대인들의 영토가 돼야 했나. 강대국들의 책임 회피이자 역사의 후퇴다. 이제 이스라엘의 생존이 보장됐다면, 그들로 인해 나라를 잃고 고통에 빠진 팔레스타인의 생존을 보장하는 것이 인류사회의 또 다른 책무다. 1인당 3만달러 소득의 군사강국 이스라엘은 당장 먹을 것이 없는 땅 주인 팔레스타인인의 생존을 겁박하기보다 이웃으로 끌어안는 공영의 삶을 택해야 한다. 그래야 팔레스타인의 극단적 저항도 줄어들 것이다. 이젠 이스라엘 극우 정권이 아니라 이스라엘 국민들이 결자해지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