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시장에 상장된 중국 수출업체 A사는 현지 금융회사로부터 한 달째 거래내역 조회서를 받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러다간 제대로 사업보고서를 작성하지 못해 외부감사인(회계법인)으로부터 ‘비적정’ 의견을 받을 위기에 처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베이징에 자회사를 둔 B사는 현지 직원의 80%가 정상 출근을 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 정부 정책에 따라 춘제(설) 연휴와 출장 등으로 자리를 비웠던 직원들이 자가격리 또는 일부 이동 통제를 받고 있어서다. 당장 다음주 증권선물위원회 연결 재무제표 제출 기한이 다가왔지만 자회사의 결산 업무가 멈춰 있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기업들의 회계감사 업무에도 불똥이 떨어졌다. 중국 기업과 거래하거나 현지법인을 운영하고 있는 12월 결산법인들은 법정 기한 내 재무제표와 사업보고서 제출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대책 마련을 호소하고 있다.

코로나發 '회계감사 대란'…70곳 결산차질
상장사 중국법인 결산 차질 ‘속출’

2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한국상장회사협의회와 코스닥협회가 긴급 설문조사한 결과 지난 20일까지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여덟 곳과 코스닥 상장사 60여 곳이 “중국 현지 사정으로 회계 결산에 애로를 겪고 있다”고 답했다. 설문에 답한 기업은 12월 결산 상장사 1500곳 중 약 70곳으로 4.6%에 불과하지만 실제 영향권에 있는 기업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지 사업장이 있거나 수출입 계약이 있는 등 중국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상장사는 800곳에 달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국공인회계사회는 상장사뿐 아니라 외부감사를 받는 비상장 기업들도 코로나19로 인해 감사 업무에 타격이 있을 것으로 예상돼 지난 주말 총 170개 회계법인에 설문을 돌렸다. 지난해 말 현재 외부감사 대상 기업은 3만2431곳이다. 이 중 매년 1~3월에 회계결산 업무와 외부감사를 하는 12월 결산법인은 94.3%를 차지한다.

관련 기업들은 결산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해 법을 위반하게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기업은 정기 주주총회 개최 6주 전에 별도 재무제표를, 4주 전에 연결 재무제표를 금융위원회 산하 증선위와 감사인에게 제출해야 한다.

“이대로면 비적정에 시장 퇴출 맞을 수도”

기업의 재무제표를 감사하는 회계법인들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감사인은 주총 1주 전까지 감사 의견을 내야 하는데 기업들의 결산이 늦어지고 증빙이 미흡하면 ‘적정’ 의견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상하이에서 근무하는 회계법인 관계자는 “중국 전체적으로 춘제 연휴가 2월 2일까지 연장된 이후 지방 정부의 공장 재가동 승인 지연, 재택근무 유도 등으로 상당수 기업에서 정상 출근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사업보고서 제출 기한에 맞춰 재무제표 작성과 감사업무가 진행되기는 물리적으로 어렵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확산 국면이 다음달까지 이어지면 상장사들은 무더기 퇴출될 위기에 놓인다. 현행법상 재무제표와 감사의견을 첨부한 사업보고서를 직전 회계연도 경과 90일 이내에 제출해야 하기 때문에 12월 결산법인은 다음달 30일이 기한이다. 사유가 있다면 5일간 추가 기간을 부여받을 수 있지만 그마저 넘기면 관리종목 지정에 상장폐지 대상까지 될 수 있다.

금융위는 중국에 자회사를 둔 상장사의 경우 재무제표 및 사업보고서 제출 시한을 1~2개월 넘기더라도 시장조치나 행정조치를 하지 않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중소기업들이 상대적으로 회계 결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며 “금융감독원의 심사를 거쳐 타당한 이유가 있는 기업은 제재하지 않는 방안을 들여다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수정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