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록은 그 인물이 살아온 시대의 프리즘이다. 그는 6.25전쟁의 혼란과 가난을 극복해가면서 상주농잠중학교를 졸업하고 스승과 친척의 도움으로 어렵사리 경북대 사범대 부속고등학교를 마친후 입주 과외를 하면서 고려대 상학과를 졸업한다. 그 후 한국은행에 들어가 성실과 끈기,집념으로 자금부장,은행감독원 부원장보, 부총재까지 오른다. 한은 이사 시절 상전격인 재무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에게 비록 저녁 자리에서였지만 '나라를 좀먹기위해 있는게 국회의원이냐'며 정신차리라고 훈계조로 호통칠 정도로 뱃심도 만만치 않았다.1993년 중소기업은행장으로 가선 정부의 인사청탁을 뿌리치고 신체적 장애가 있는 간부와 상고 출신을 임원으로 발탁, 주위를 놀라게 했다. 특히 1996년 임기를 마치고 본인의 후임자로 기업은행 역사상 처음으로 내부 인사를 추천, 당시 퇴임을 앞두었던 김승경씨가 은행장으로 발탁되면서 자행 출신 행장 시대를 열기도 했다.
은행장 퇴임후 정부가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에 대한 지원을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추진하기위해 설립한 중소기업청(중소벤처기업부)의 초대 청장으로 발탁됐다.민간인이 고위 공무원에 임명된 것은 당시만해도 드문 일이었다.
그의 회고록을 읽다보면 열정과 혼신을 다한 금융인의 모습을 마주치게 된다.한은의 핵심보직인 자금부장시절 4년간 한번도 휴가를 가지 못했고, 그에 앞서 사우디아라비아 한국대사관 재무관으로 일하면서 간농양으로 사선을 넘나들기도 했다.
이 전 행장이 한은 프랑크푸르트 사무소 근무시절 비엔나에서 열린 ADB(아시아개발은행) 연차총회에 참석한 남덕우 재무장관을 모시고 가다가 길을 몰라 헤매 약속시간에 늦었는데도 전혀 화를 내지 않았던 남 장관의 인품에 반한 얘기,금융계의 황제로 불렸던 이원조 은행감독원장과의 껄끄러웠던 일등 재미있는 에피소드들도 만나게 된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