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논설실] 치명적 '무지'가 치명적 '코로나 위기'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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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태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확산되면서 한 가지 사실은 점점 명확해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위험에 대해 너무 무지했다는 점이다. 의료진도 잘 몰랐고 정부는 더 무지했다. 전문가를 자처하는 비(非)전염병·방역 전공자들이 짧은 지식과 발병 초기 정보에 의존해 쏟아낸 잘못된 정보들은 '방역 경계심'을 허물어 버렸다. 그러니 평범한 국민들은 속수무책일수 밖에 없었다.
감염병의 특성상 지역사회 확산이 시작되면 인력(人力)으로 막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바이러스나 종교단체인 신천지, 잘못된 정보의 범람 탓으로만 확산된 것이 아니다. 국민의 안전과 방역을 최종적으로 책임지는 정부가 결과적으로 코로나19를 처음부터 과소평가했다. '지나칠 정도로 선제적 대응'을 입으로만 강조했지만 고비마다 내린 결정은 늘 한 발씩 늦었다. "정부가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코로나19의 위험을 과소평가한 정보를 믿고 싶었던 게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코로나 사태를 국란(國亂) 수준의 위기로 비화시킨 치명적 무지와 잘못은 곳곳에 널려있다.
◆높은 전파력과 낮은 치사율 함정을 간과했다
현재 추정되는 코로나19의 치사율(사망자/확진자)은 대략 2% 선이다. 치사율이 10% 정도였던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나 40% 이르렀던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보다 낮다. 이를 바탕으로 "코로나19는 독감보다 더 조금 더 독한 질병이니 치료만 제때 받으면 큰 위험이 없다" 는 식의 정보가 넘쳐났다. 코로나19의 특성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위험을 과소평가한 것이다. 치사율은 질병이 종식돼야 최종적인 집계가 가능하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다.
특히 사스와 메르스보다 2~4배 높은 전파력을 간과한 것은 치명적이다. 중국 우한에서보듯 도시 전체를 봉쇄해야 할 정도로 국가 기능이 마비된 실제 사례를 보고도 중국의 이상한 식습관과 낮은 위생수준 등의 탓으로만 돌렸다. 높은 전염력 이면의 더 큰 위험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코로나19가 창궐하고 있는 대구의 경우 확진자와 의심환자들이 급속 늘고 병원내 감염으로 의료진과 병동이 격리되면서 통계로 잡히지 않는 사망자들이 급증할 가능성이 높다. 평소에는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던 만성질환자들과 사건사고 피해자, 급성 심장질환자 등이 의료인력과 병원시설 부족으로 위험한 상태에 놓일 수 있다. 이런 우려스런 현상은 대구에서 이미 나타나고 있다. 코로나19의 치사율은 낮을지 몰라도 그로 인한 직간접적 사망자는 훨씬 높을 수 있다. ◆자칭 전문가들도 가세한 '위험 축소' 경쟁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속히 늘기 시작한 2월15일 이전만 해도 전문가들을 자처하는 비(非) 감염병·방역 전공자들이 너도나도 "공포가 과잉됐다"고 떠들어댔다. 특히 메르스 때와 비교해 '사망자 0명' '병원 감염 0%' '수퍼전파자 0%' '아직 에어로졸(작은 침방울) 감염없다' 등을 내세워 "지나치게 겁먹을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전염병은 끝이 나야 병의 특성과 치명적 특성을 알 수 있다는 게 상식이다. 정부와 일부 언론은 코로나19 발병지 중국으로부터 환자 유입을 막기 위해 '중국 통제'에 나서야 한다는 의사협회 조언은 무시했다. '중국 혐오'와 '우파 포퓰리즘'으로 매도하기도 했다. 일방적으로 중국 편을 드는 세계보건기구(WHO)를 비판하면 "중국을 무너뜨리려는 미국의 의도를 간과한 것"이라는 현실과 동떨어진 반응을 보였다. 되레 "미국은 미국독감으로 8000여명이 죽었다. 중국을 비판할 처지가 못 된다"고 '반격'하기도 했다. 단순 인플루엔자인 미국독감을 이보다 치사율이 약 50배 높은 코로나19와 단순 비교하는 어처구니없는 주장까지 내놓은 것이다.
◆정부는 중국발(發) 전염병에 크게 관심 없었다
사스, 조류독감 등 2000년대 들어 세계적으로 유행한 바이러스성 전염병의 상당수는 중국이 발원지다. 인구 밀집, 낮은 위생수준, 특이한 식습관 등이 원인으로 제기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전염병 진앙지가 되곤하는 중국이 바로 우리나라 옆에 있다는 사실이다. 두 나라 간 인적 및 경제적 교류가 활발한 상황에서 중국의 풍토병이나 전염병이 바로 국내에 번질 가능성은 언제든지 있다. 세계10위권 경제대국과 높은 의료수준을 자랑하는 한국의 정부라면 국민 안전을 위해 각종 전염병의 전파 가능성에 대비해 현지 역학조사와 자료 수집 등의 대비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했다. 중국과 밀접한 관계라면 중국을 협조를 받아 국내 의료진과 조사관을 현지에 파견해 자료를 수집하는 게 필요하다. 중국과의 공동 조사는 더욱 좋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해외 신종 감염병 발생 시 국내 의료진과 조사관을 발병 초기에 현지에 파견해 국내 전파 사태에 대비하는 시스템을 제대로 구축해야 한다.
김태철 논설위원 synergy@hankyung.com
감염병의 특성상 지역사회 확산이 시작되면 인력(人力)으로 막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바이러스나 종교단체인 신천지, 잘못된 정보의 범람 탓으로만 확산된 것이 아니다. 국민의 안전과 방역을 최종적으로 책임지는 정부가 결과적으로 코로나19를 처음부터 과소평가했다. '지나칠 정도로 선제적 대응'을 입으로만 강조했지만 고비마다 내린 결정은 늘 한 발씩 늦었다. "정부가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코로나19의 위험을 과소평가한 정보를 믿고 싶었던 게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코로나 사태를 국란(國亂) 수준의 위기로 비화시킨 치명적 무지와 잘못은 곳곳에 널려있다.
◆높은 전파력과 낮은 치사율 함정을 간과했다
현재 추정되는 코로나19의 치사율(사망자/확진자)은 대략 2% 선이다. 치사율이 10% 정도였던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나 40% 이르렀던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보다 낮다. 이를 바탕으로 "코로나19는 독감보다 더 조금 더 독한 질병이니 치료만 제때 받으면 큰 위험이 없다" 는 식의 정보가 넘쳐났다. 코로나19의 특성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위험을 과소평가한 것이다. 치사율은 질병이 종식돼야 최종적인 집계가 가능하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다.
특히 사스와 메르스보다 2~4배 높은 전파력을 간과한 것은 치명적이다. 중국 우한에서보듯 도시 전체를 봉쇄해야 할 정도로 국가 기능이 마비된 실제 사례를 보고도 중국의 이상한 식습관과 낮은 위생수준 등의 탓으로만 돌렸다. 높은 전염력 이면의 더 큰 위험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코로나19가 창궐하고 있는 대구의 경우 확진자와 의심환자들이 급속 늘고 병원내 감염으로 의료진과 병동이 격리되면서 통계로 잡히지 않는 사망자들이 급증할 가능성이 높다. 평소에는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던 만성질환자들과 사건사고 피해자, 급성 심장질환자 등이 의료인력과 병원시설 부족으로 위험한 상태에 놓일 수 있다. 이런 우려스런 현상은 대구에서 이미 나타나고 있다. 코로나19의 치사율은 낮을지 몰라도 그로 인한 직간접적 사망자는 훨씬 높을 수 있다. ◆자칭 전문가들도 가세한 '위험 축소' 경쟁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속히 늘기 시작한 2월15일 이전만 해도 전문가들을 자처하는 비(非) 감염병·방역 전공자들이 너도나도 "공포가 과잉됐다"고 떠들어댔다. 특히 메르스 때와 비교해 '사망자 0명' '병원 감염 0%' '수퍼전파자 0%' '아직 에어로졸(작은 침방울) 감염없다' 등을 내세워 "지나치게 겁먹을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전염병은 끝이 나야 병의 특성과 치명적 특성을 알 수 있다는 게 상식이다. 정부와 일부 언론은 코로나19 발병지 중국으로부터 환자 유입을 막기 위해 '중국 통제'에 나서야 한다는 의사협회 조언은 무시했다. '중국 혐오'와 '우파 포퓰리즘'으로 매도하기도 했다. 일방적으로 중국 편을 드는 세계보건기구(WHO)를 비판하면 "중국을 무너뜨리려는 미국의 의도를 간과한 것"이라는 현실과 동떨어진 반응을 보였다. 되레 "미국은 미국독감으로 8000여명이 죽었다. 중국을 비판할 처지가 못 된다"고 '반격'하기도 했다. 단순 인플루엔자인 미국독감을 이보다 치사율이 약 50배 높은 코로나19와 단순 비교하는 어처구니없는 주장까지 내놓은 것이다.
◆정부는 중국발(發) 전염병에 크게 관심 없었다
사스, 조류독감 등 2000년대 들어 세계적으로 유행한 바이러스성 전염병의 상당수는 중국이 발원지다. 인구 밀집, 낮은 위생수준, 특이한 식습관 등이 원인으로 제기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전염병 진앙지가 되곤하는 중국이 바로 우리나라 옆에 있다는 사실이다. 두 나라 간 인적 및 경제적 교류가 활발한 상황에서 중국의 풍토병이나 전염병이 바로 국내에 번질 가능성은 언제든지 있다. 세계10위권 경제대국과 높은 의료수준을 자랑하는 한국의 정부라면 국민 안전을 위해 각종 전염병의 전파 가능성에 대비해 현지 역학조사와 자료 수집 등의 대비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했다. 중국과 밀접한 관계라면 중국을 협조를 받아 국내 의료진과 조사관을 현지에 파견해 자료를 수집하는 게 필요하다. 중국과의 공동 조사는 더욱 좋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해외 신종 감염병 발생 시 국내 의료진과 조사관을 발병 초기에 현지에 파견해 국내 전파 사태에 대비하는 시스템을 제대로 구축해야 한다.
김태철 논설위원 synerg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