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이맘때는 전지훈련을 마친 프로골퍼들의 ‘귀국 러시’가 이어지는 시기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선수들의 귀국이 늦어지고 있다. ‘코로나 포비아’가 만들어낸 현상이다. 27일 한 매니지먼트 관계자는 “귀국 일정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위약금을 물고 비행기표를 아예 취소한 골퍼도 있다”고 귀띔했다.

그러면서 “일정을 바꿀 수 있는 ‘오픈 티켓’을 끊었거나 재정적으로 넉넉한 선수는 위약금을 물고 귀국 일정을 조정할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며 “일정을 바꾸지 못하는 티켓을 끊어 어쩔 수 없이 귀국하는 선수들도 많다”고 전했다. 앞서 여자골프 세계랭킹 1위 고진영(25)은 스폰서 계약 발표 행사를 취소하고 미국에 남았다. 모처럼 고향에서 가족들과 친구들을 만나려던 김세영(27)도 가족들이 만류해 귀국하지 못했다. 미국에서 동계훈련 중인 오지현(24)은 2월 말로 예정했던 귀국 일정을 3월로 미뤘다. 한국 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1000명이 넘어섰고, 아직은 ‘상대적 코로나 안전지대’인 미국에서 서둘러 귀국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귀국해도 마땅한 대책이 없다는 게 문제다. 보통 선수들은 귀국 후 짧은 휴식을 취한 뒤 개막전 준비를 위해 마무리 훈련에 들어간다. 대회가 열릴 코스답사를 하거나 행사 등을 소화하기도 한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대부분 행사가 취소됐고 골프장을 찾는 것도 쉽지 않다. 또 다른 매니지먼트 관계자는 “귀국한 선수들은 집, 연습장, 집을 왔다 갔다 하며 ‘집순이 생활’을 하는 게 전부”라며 “이렇게 골프계 전체가 침체됐던 기억이 없다”고 털어놨다.

기약 없는 투어 개막도 선수들의 힘을 빼놓고 있다. 3월 예정됐던 KLPGA투어 대만여자오픈은 취소됐고, 4월 9일 개막을 앞두고 있는 롯데렌터카여자오픈도 대회 개최를 장담하기 힘든 상황에 몰렸다. 롯데렌터카여자오픈 주최 측은 ‘대회 개최 2주 전 상황’ ‘1주 전 상황’ 등 ‘D데이’별로 대응책을 마련해 대회를 최대한 정상적으로 열 계획이다. 갤러리 없는 무관중 경기도 고려하고 있다. 하지만 상황이 호전되지 않으면 결국 선수들의 안전을 위해 취소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반면 국내에 입국했던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선수 사이에선 ‘출국 러시’가 이어지고 있다. 박인비(32)와 유소연(30)은 3월 초로 예정됐던 미국 출국 일정을 앞당겨 지난 26일 떠났다. 김효주(25)도 일정을 앞당겨 이날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박성현(27)은 이미 지난 22일 미국 올랜도로 건너갔다.

미국이 한국인 입국을 금지할 수 있다는 점도 이들의 이른 미국행을 재촉하고 있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