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Fed가 금리 내린다고 나아질 상황 아니다"
"가장 나쁜 건 턴어라운드할만한 모멘텀이 보이질 않는다는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는 미 중앙은행(Fed)이 금리를 내린다고 도와줄 수 있는 게 아니다."
27일(현지시간) 무너진 뉴욕 증시를 보면서 월가의 한 펀드매니저가 한 말입니다. 이날 하루 다우지수는 1190포인트(4.42%)는 포인트 떨어졌습니다. 하루 포인트 기준으로는 역대 최대 하락폭입니다.
그것도 사상 최고로 빠른 속도로 떨어졌습니다. 지난 6일간 연속으로 내렸고, 무려 12.2% 급락했습니다.

다우지수는 하루종일 커다란 변동성을 보였습니다.
장 초반 400포인트대 하락으로 출발하더니 한 때 200포인트 수준까지 하락폭을 줄였습니다. 하지만 오후 2시 이후 추가 하락하더니, 장 막판에는 논스톱으로 1190포인트까지 떨어졌습니다.
또 다른 월가의 운용역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난 10여년간 지수가 이렇게 빠르게 속수무책으로 떨어진 적이 없었다"면서 "지난 10여년새 새로 펀드운용을 맡은 사람들은 처음 겪어보는 일에 패닉에 빠졌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Fed가 금리 내린다고 나아질 상황 아니다"
증시가 폭락한 이유는 너무 많습니다.
"안심하라"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 하루만에 쏟아진 미국내 코로나바이러스 관련 뉴스는 투자자들을 경악시켰습니다. 캘리포니아주는 이날 33명이 코로나바이러스에 걸렸으며, 적어도 8400여명의 감염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확진자 중 한 명은 여행 등도 다녀오지 않아 감염 경로도 알 수 없는 상태입니다. 또 뉴욕에서도 700여명이 자체격리 요청을 받은 상태로 밝혀졌습니다.
이는 미국도 안전지대가 아니란 사실을 깨닫게했습니다. 경제활동이 얼어붙으면서 미 경제가 침체로 빠질 것이란 우려가 커졌습니다.
마침 전날 저녁 재닛 옐런 전 Fed 의장은 미시간주에서 열린 콘퍼런스에서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한 사실이 뉴스를 타고 퍼졌습니다.

미국을 지탱해온 소비는 안그래도 주춤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날 발표된 지난 4분기 GDP 증가율(잠정치)는 속보치와 같은 2.1%로 집계됐지만 소비와 기업투자 지표는 더 악화됐습니다. 미국 경제의 67%를 차지하는 개인소비지출은 1.7% 늘어 속보치 1.8% 증가보다 낮아졌습니다. 지난해 3분기(3.2% 증가)와 비교하면 크게 낮습니다. 이는 월마트 등의 연말 쇼핑시즌 판매실적에서도 드러났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노바이러스가 전역으로 퍼진다면 소비는 커다란 타격을 받을 겁니다.
게다가 미국은 서비스업이 주력인 나라입니다. 코로나가 확산된다면 항공 여행 음식료 등 서비스업은 스톱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미 지난 21일 발표된 IHS마킷의 2월 서비스업 구매관리자지수(PMI) 예비치는 49.4로 나와 걱정이 커지고 있었습니다. 이는 예상치(53.2)와 전월(53.4)을 크게 밑돌았을 뿐 아니라 '경기 위축'을 나타내는 50 이하로 떨어진 것입니다.
[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Fed가 금리 내린다고 나아질 상황 아니다"


이렇게되면 미국 기업들의 실적은 개선될 리가 없습니다.
골드만삭스는 이날 코로나바이러스 여파로 올해 미국 기업들의 순이익 증가율이 제로(0%)에 그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동안 올해 7~9% 증가할 것이란 월가의 예상에서 크게 후퇴한 것입니다.
그것도 미국에서는 코로나바이러스가 크게 번지지 않은 상황을 가정해 추정한 것입니다.

만약 코로나 감염이 미국 전역으로 번지면 기업 실적은 마이너스로 떨어질 겁니다.
미국 기업들은 지난 금융위기 이후 엄청난 양의 부채를 쌓았습니다. 현재 10조달러에 달합니다. 그동안은 금리가 낮아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확산으로 경기 전망이 어두워지는 가운데 실적이 악화된다면 회사채 값은 급락하고, 대출을 회수하려는 곳도 급증할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무디스, S&P 등 신용평가사들이 신용등급을 내린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요.
[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Fed가 금리 내린다고 나아질 상황 아니다"
모하메드 엘 에리언 알리안츠 고문은 이날 CNBC 인터뷰에서 "경제 혼란이 금융시장의 혼란으로 이어질 것이고 이는 신용위기, 그리고 유동성 위기로 번질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는 코로나 확산이 기업 입장에서 매출, 재고관리, 운송, 공급망 혼란, 비용 증가 등 모든 점이 문제가 되고 있다면서 "이건 펀더멘털 쇼크"라고 지적했습니다.
엘 에리언 고문은 "Fed가 금리를 내린다고해도 금융시장은 얼어붙을 수 있다"고 예상했습니다.

맞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문제는 월가의 '신흥종교'가 된 Fed가 해결할 수가 없다는 게 근본적 불안 요인입니다.
더 큰 불안 요인도 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언제 잡힐 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겁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치사율은 낮지만 그만큼 전염성이 강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바이러스에 감염돼 숙주가 된 사람들이 이를 계속 전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날 월가에서는 바티칸의 교황까지 감염됐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까지 돌았습니다. 전날 감기로 외부 일정을 취소했다는 소식이 와전된 것입니다.
한 펀드매니저는 "당분간 턴어라운드할 모멘텀이 보이질 않는다"면서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이 줄었다는 뉴스 외에는 시장을 살릴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Fed가 금리 내린다고 나아질 상황 아니다"
뉴욕 증시의 주요 지수는 정확히 일주일만에 10% 이상 떨어져 순식간에 조정장에 진입했습니다.
이렇게 빠른 급락세는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을 부르고 있습니다. 그동안 레버리지를 일으켜 투자해온 헤지펀드 등은 순식간에 막대한 손실에 처해 손절매를 할 수 밖에 없게된 것입니다.
이런 손절매는 시장 급락세를 더욱 부추길 수 밖에 없습니다. 이날 하루종일 지수가 출렁인 배경을 디레버리징으로 지목하는 투자자도 많습니다.
급등했던 미국 달러화의 가치가 어제 오늘 급락한 이유를 해외 투자자들의 디레버리징에서 찾기도 합니다. 미국 경제의 침체 가능성이 커졌고, Fed가 금리를 인하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달러 값이 내릴 가능성이 높아진 탓입니다.
[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Fed가 금리 내린다고 나아질 상황 아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