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을 수 있다고 장담한지 하루만인 27일(현지시간) 미국에서 코로나19 공포가 급속히 퍼졌다. 전날 밤 캘리포니아에서 감염 경로를 알기 힘든 확진자가 나오면서다. 샌프란시스코와 샌디에이고, 로스앤젤레스 인근 오렌지카운티 등 캘리포니아주 소재 지방정부는 잇따라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미국에서의 코로나19 확산이 불가피하다'는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진단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며 확산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직후 지역사회 전파 사례로 의심되는 첫 코로나19 환자의 사례가 보도되면서 불안감이 증폭됐다.

워싱턴포스트(WP) 등 미 언론에 따르면 이 환자는 캘리포니아주 소노마카운티에 사는 여성으로 최근 중국 등 코로나19 발병국을 방문하거나 감염자와 접촉하지 않았는데도, 호흡기 증세를 보였고 결국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CDC는 이 환자가 해외에서 코로나19에 감염돼 돌아온 환자와 접촉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지역사회 전파외 다른 가능성을 열어놨다. 하지만 미 언론은 지역사회 전파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코로나19가 이미 미국에 퍼져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존스홉킨스대 소속 전염병 연구자인 제니퍼 누조는 WP에 이번 일이 지역사회 전파 사례로 확인될 경우 "이미 이 나라에 감염된 사람들이 있을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는 것과 (이들이)바이러스가 발견되지 않은 채 돌아다니고 있다는 점(이 확인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밴더빌트대학 감염질환 전문가 윌리엄 섀프너 박사도 미 언론에 "만약 이 환자가 코로나19가 퍼진 국가에서 온 사람과 직접 접촉하지 않았다면 이는 어딘가에 파악되지 않은 다른 감염자가 있고, 이미 낮은 단계의 전파가 시작됐음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이 환자의 사례를 계기로 미국의 코로나19 검사 시스템에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도 커졌디. 이 환자는 원래 호흡기 증세로 북부 캘리포니아의 한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다 상태가 악화돼 지난 19일 UC데이비스 의료센터로 옮겨졌다. 산소호흡기를 단 채였다. 이 때 의료진은 코로나19 감염 가능성을 의심해 CDC에 감염 검사를 요청했다. 하지만 CDC는 23일에야 검사 요청을 수용했고, 이 환자는 26일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의료진의 검사 요청 1주일만에 결과가 나온 것이다.

이는 그동안 CDC가 최근 14일 내 중국 여행을 다녀온 환자나 코로나19 감염자와 접촉한 환자만을 대상으로 코로나19 검사를 하도록 가이드라인을 정했기 때문이다.
'늑장 검사'가 도마에 오르자 CDC는 이날 부랴부랴 검사 기준을 확대했다. 중국뿐 아니라 감염자가 많은 한국, 일본, 이탈리아, 이란을 다녀와 심각한 호흡기 증세를 보이는 환자까지 코로나19 검사를 받도록 했다.

하지만 여전히 검사 역량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캘리포니아주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최근 코로나19 발병이 우려되는 지역을 여행한 주민이 8400명에 달하며 이들의 감염 여부를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주 정부가 보유한 코로나19 진단용 키트는 200개에 불과하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캘리포니아주는 연방정부로부터 조만간 추가 물량을 공급받기로 했다고 밝혔지만 단기간에 물량 부족이 해소될지는 미지수다, 캘리포니아주 인구는 4000만명에 육박한다.

과거 캘리포니아주 격리시설에서 코로나19 감염자를 치료했던 의료진이 제대로된 보호장비도 착용하지 않고 치료를 했고 이후 일반 대중과 접촉했다는 내부고발도 나왔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보건복지부 내부제보자를 인용해 이런 내용을 보도했다.
이들 의료진은 중국 우한 등에서 돌아온 미국인들이 한동안 격리됐던 군 기지에서 코로나19 감염자를 치료하거나 검사를 도왔는데, 제대로된 보호장구가 지급되지 않은데다 감염증 방역에 관한 전문적 훈련도 없이 현장에 투입됐다는 것이다. 치료를 마친 의료진은 이후 자유롭게 해당 군 기지를 떠났다고 NYT는 전했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