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84)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렸을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가 감기 증상을 이유로 27일(현지시간) 외부 일정을 취소하면서다. 교황은 코로나19 확산 우려에도 전날 바쁜 외부 일정을 강행했다. 교황이 머무는 바티칸은 최근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는 이탈리아 중심부에 있다.

AP통신에 따르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로마 시내 산조반니 인 라테라노 성당에서 사순절 미사를 집전할 예정이었으나 돌연 일정을 취소했다.

교황청은 성명을 통해 “교황이 약간 몸이 불편한 상태이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마테오 브루니 교황청 대변인은 “교황이 가벼운 질환으로 바티칸 내 숙소인 산타마르타에 머물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교황청의 이번 성명은 코로나19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전 유럽으로 확산하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주목된다. 이탈리아에서는 이날까지 650명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다. 크루즈선 ‘프린세스 다이아몬드’의 확진자를 일본 감염자 통계에서 제외하면 중국과 한국 다음으로 많다. 현재 유럽 지역 확진자의 80% 이상이 이탈리아에서 나왔다.

상황이 이런데도 교황은 전날인 26일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수요 일반 알현에 참석한 데 이어 사순절 시작을 맞아 진행한 ‘재의 수요일 예식’을 집전하는 등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일반 알현 행사에서는 마스크를 쓴 사람들과 악수를 하고 신자들의 머리에 입을 맞추는 등 평소와 다름없는 행보를 이어갔다. 이탈리아 현지 언론에 따르면 교황은 재의 수요일 예식 집전 당시 거친 목소리에 가끔 기침을 하는 등 감기 증세를 보였다.

외신들은 교황의 코로나19 감염설을 직접 다루기 꺼리는 분위기다. 섣불리 감염설을 제기했다가 코로나19로 인한 세계의 혼란이 가중될 것이란 우려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영국 텔레그래프와 미국 뉴욕포스트 등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코로나19 감염자들을 위로하는 행사에 참석한 다음날 몸이 안 좋아졌다” 정도로만 보도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코로나19에 걸리는 건 시간 문제’라고 보는 쪽도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교황은 감염 위험에 노출됐다는 우려가 나오는 와중에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고 전했다. 교황은 23일 이탈리아 남부 항구도시 바리를 방문해 인접 국가들의 주교단 회의에 참석했다. 재의 수요일 예식과 관련해서도 교황청 내에서 코로나19 감염을 우려해 교황의 집전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많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정연일 기자 ne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