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문화회관에서 방호복을 입은 방역요원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공연장 방역을 하고 있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세종문화회관에서 방호복을 입은 방역요원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공연장 방역을 하고 있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문화계에 이토록 혹독하고 시린 겨울이 있었을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시장 전체가 얼어붙었다. 특히 공연 시장이 직격탄을 맞았다. 코로나19 여파로 관객들의 예매 취소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25일 기준 공연예술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이달 1~24일 공연 매출은 184억249만원에 그쳤다. 전월 동기(322억4228만원)에 비해 42.9% 줄었다. 예술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텅 빈 객석이다. 그 상상조차 하기 싫은 순간이 현실이 된 것이다. 관객 없이는 무대를 올릴 수 없기에 이들은 어쩔 수 없이 진행 중이던 공연을 중단하거나 예정된 공연 전체를 취소하고 있다.

무대가 전염병이란 지독한 악재를 만났다. 물론 국민 모두가 이 악재로 인해 엄청난 공포에 떨고 있다. 공연계엔 여기에 하나의 공포가 더해졌다. 무대가 송두리째 사라지는 두려움이다. 수년에 걸쳐 많은 사람과 함께 준비한 작품을 관객 앞에 선보일 수조차 없게 됐다. 일자리가 순식간에 사라져 생계를 이어가는 것조차 힘든 예술인도 많다.

공연산업은 다른 산업과 장르에 비해서도 전염병에 훨씬 취약한 편이다. 일반 상품은 오프라인 판매가 어려우면 온라인으로 팔 수 있다. 영화도 주문형비디오(VOD)로 판매가 가능하다. 공연은 이마저도 어렵다. 오프라인 공간인 극장에서만 이뤄진다. 창작자와 관객이 함께한 공간에서 호흡해야 하는 공연의 태생적 특성은 그만의 예술적 아우라를 만들어내는 원동력이다. 그러나 군집 자체를 해선 안 되는 전염병 창궐이란 악재 앞에선 커다란 한계로 작용한다.

그럼에도 이들에게 무대를 포기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민간의 소규모 단체일수록 그렇다. 이미 투입된 제작비, 대관료 등 비용을 다 감당할 수 없어 존폐 위기에 놓인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무대를 올리는 단체도 있다. 전염병 위기를 겪은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를 겪었다. 이때마다 수많은 단체가 폐업했다. 이번에도 마땅한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정부 지원을 기다리는 것 외에 각 단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러나 언젠가 또 이 위기는 반복될 수 있다. 이 상황에 더 철저히 대비하고 공연계 수익 다변화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현재 출연자나 공연장과 계약할 때 전염병은 ‘천재지변’에 포함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공연 취소 시 제작사가 고스란히 비용 부담을 질 수밖에 없다. 이를 보완하는 제도적 정비가 시급하다.

앞으로 관객이 공연장에 오지 않아도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공연 영상화 작업은 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공연계에선 네이버TV를 통해 온라인 생중계를 하는 시도를 해왔다. 이에 착안해 전염병 위기로 공연장을 찾지 못하는 관객을 위해 서울돈화문국악당, 바리톤 이응광 등이 온라인 생중계를 진행하고 있다. 나아가 중계는 물론 영화처럼 VOD 제작을 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춰야 한다. 평소에도 무대 공연만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VOD를 제작해 하나의 수익 사업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를 통해 당장 무대를 올리지 못하는 위기 상황에서도 최대한 버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영상화 작업에도 비용이 투입되는 만큼 여기엔 정부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인류 전체를 죽음의 공포에 몰아넣은 전염병을 꼽자면 14세기 창궐한 흑사병일 것이다. 이때도 예술은 사라지지 않았다. ‘죽음의 무도’라는 뜻의 풍유적 예술장르인 ‘댄스 마카브라’가 유행했으며, 많은 예술가들이 죽음의 공포 앞에서도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그 결과 ‘다시 태어나다’는 의미의 ‘르네상스’ 시대가 도래했다. 국내 공연계도 이런 위기 속에서 보다 단단해지고 새롭게 태어날 수 있도록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한다.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