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한전 적자가 탈원전 정책과 관련 없다니
3년 전까지 한 해 10조원 이상 영업이익을 내던 초우량 공기업 한국전력은 작년 1조3566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새 정부가 출범한 2017년 이익이 4조9500억원으로 확 꺾인 데 이어 2018년부터 2년 연속 손실을 냈다. 작년 적자 규모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국제 유가가 배럴당 최고 150달러까지 치솟았던 2008년(-2조7981억원) 후 가장 저조한 실적이다. 유가 급등과 같은 외부 변수가 없었던 상황에서 무엇이 문제였을까.

한전은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온실가스 배출권 비용을 꼽고 있다. 2015년 최초로 부과됐던 온실가스 비용이 급증하면서 작년에만 7000억원을 추가 부담했다는 것이다. 온실가스를 전혀 발생시키지 않는 원전 가동을 늘렸다면 충분히 줄일 수 있는 비용이었다. 배출권 거래법이 제정된 2012년에 이미 비용 추계까지 나왔던 사항이다.

방사성 폐기물 관리비, 원전 해체 단가 등 원전 복구 부채 설정비용은 2000억원 늘었다. 예컨대 원전 해체 충당금이 종전까지 호기당 7515억원이었는데 작년부터 8129억원으로 올랐다. 모두 원전정책 변화의 여파다.

핵심인 원전 이용률은 작년 70.6%에 그쳤다. 2016년 이전 80~90%에 달하던 원전 이용률은 2017년부터 3년째 70%선에 머물고 있다. 총 96기의 원전을 돌리는 미국에선 작년 원전 이용률이 평균 93.5%였다.

원자력은 한전이 의존하는 발전원 중 가장 효율성이 뛰어난 에너지다. 작년 전력 구입 단가가 ㎾h당 58.50원으로, 대체 발전원인 액화천연가스(LNG) 단가(119.13원)의 절반에 불과했다.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와 비교하면 3분의 1 수준이다. 연료인 국제 우라늄 시세 역시 지난 수십 년간 변동이 거의 없었을 정도로 안정적이다.

‘탈(脫)원전 정책 시행 후 한전이 적자 수렁에 빠졌다’는 보도가 잇따르자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와 한전은 해명 자료를 내놨다.

산업부는 “한전의 실적 악화는 온실가스 비용 증가 등에 따른 것으로 에너지 전환(탈원전) 정책과 관련이 없다”며 “원전 정비 및 가동은 정부가 인위적으로 조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한전 역시 “원전 이용률 하락은 전 정부 때 후쿠시마 사고 등의 후속 조치에 따라 안전 기준을 강화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원전 안전 조치를 대폭 강화했던 2014~2016년의 원전 이용률은 평균 80~85%였다.

정부는 130조원에 달하는 한전의 누적 부채를 해소하기 위해 올 하반기부터 전기요금을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원전 이용률을 어떻게 높일 것이냐에 대한 고민 없이 요금 인상만 추진할 경우 소비자들이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을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