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수사시 음지로 숨을 우려…‘정부 책임 검찰에 떠넘기기’시각도
신현욱 소장 ”증거인멸 진행중…이만희 수사로 신도들에 메시지줘야”
지방자치단체장들을 중심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폭증의 책임이 있는 신천지측에 강도 높은 수사를 촉구하는 가운데 법조계에서는 검찰의 강제수사가 필요하다는 의견과 그렇지 않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정부의 강압적인 조치는 신천지 신자를 숨게 한다”
2일 방역당국과 법조계에 따르면 복지부와 질본 관계자는 지난달 28일 대검찰청 관계자를 불러 코로나19관련 대책 회의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복지부와 질본 관계자는 “신천지의 협조하에 신천지 31만명 명단을 확보해 방역절차를 진행하고 있다”며 검찰에 “수사에 신중을 기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면서 검찰 압수수색에 대해선 “검찰 조치가 필요할때는 별도로 요청하겠다”고 당부했다.
사실상 방역당국의 별도 요청이 있기 전까지는 압수수색을 하지 말라는 얘기다. “고발 및 수사의뢰가 없더라도 강제수사를 적극 검토하라”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발언에도 불구하고 방역당국은 정반대의 목소리를 낸 것이다.
방역당국은 이어 “지자체측이 ‘신천지 신도 명단이 실제와 차이가 있다’고 주장한 부분에 대해서도 미성년자 포함 여부, 주소지 기준 여부 등 분류상 차이로 발생한 오차에 불과하다”며 “대부분 명단이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된다”고 언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초 신천지측의 실제 신도와 명단상 차이가 발생해 고발이 이뤄졌고, 이에 따라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 필요성이 증가했지만 방역당국은 이러한 강제수사 필요성이 없다는 것을 검찰에 해명한 꼴이 된 것이다.
김강립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1총괄조정관(복지부 차관)도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정례브리핑에서 “정부의 강압적인 조치로 인해 신천지 신자가 음성적으로 숨는 움직임이 확산할 경우 방역에 긍정적이지 않은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지자체가 확보한 신천지 명단은 대체로 신천지에서 제공한 자료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했다. 검찰은 일단 신천지 수사 방식에 대해 방역당국의 요청을 최대한 반영하기로 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번 코로나 폭증 사태가 벌어진 데 신천지의 잘못이 크지만 방역당국의 의견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검찰은 신천지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지만 방역당국의 방침에 따라 ‘속도조절’을 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신천지에 대한 검찰 수사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과 수원지검에서 진행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이만희 총회장을 살인 혐의로 고발한 사건 배당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형사2부(부장검사 이창수)는 서울시가 지난 1일 신천지교 교주인 이만희 총회장에 대해 살인죄 및 상해죄, 감염병예방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 사건을 2일 배당받아 수사하기 시작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1일 “국민 생명을 위협하는 바이러스 진원지의 책임자 이만희 총회장을 체포하는 것이 지금 검찰이 해야 할 역할”이라며 “(신천지 지도부가)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서울시는 이미 예고한 대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 등으로 형사고발하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28일 미래통합당이 '새누리당의 당명을 이만희가 작명했다'는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혐의로 이만희 총회장을 고소한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검사 정진웅)에 이날 배당됐다. 신천지피해연대측의 고발 사건은 수원지검 형사 6부(부장검사 박승대)가 수사하고 있다. 신천지피해연대는 고발장에 신천지가 위장교회와 비밀센터(비밀리에 진행하는 포교장소) 429곳, 선교센터를 수료한 입교 대기자 7만 명과 중요 인사 명단은 공개하지 않는 등 조직 보호를 위해 정부의 코로나19 역학조사를 방해하고 있다고 명시했다.
지자체는 신천지 관련 코로나19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며 검찰의 수사를 촉구하는 모양새다. 대구시는 감염병예방법 위반 혐의로 신천지 관계자들을 지난달 28일 경찰에 고발했다. 강원도는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신천지 신도 2명 중 1명의 동선에 의구심을 품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광주시도 신천지 측에 신도와 교육생 명단을 제출하지 않으면 고발조치 하겠다고 경고했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신천지의 제출 명단을 믿을 수 없다며 강제 역학조사에 들어갔고, 이철우 경북지사는 신천지 등의 대학내 포교 활동을 엄단하겠다고 밝혔다.
법조계에선 현재 검찰 수사 방식에 대해 찬반이 엇갈린다. 법조계와 검찰내부에선 “검찰이 수사에 나섰다가 겁을 먹은 신천지 신도들이 음지로 숨어 오히려 방역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는 시각이 많다.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지자체장들이 잇따라 ‘신천지 책임론’을 강조하는 배경엔 초기 정부의 방역 대응 실패 책임을 전가시키려는 측면도 있다”고 강조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소속 권경애 변호사는 2일 페이스북에서 “이 재난을 윤석열 검찰총장을 잡을 호기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며 “방역작업과 관련해 모든 행정적 권한을 동원한 조치를 취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왜 검찰을 끌어들여 검찰과 대적하는 정치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검사 출신 변호사도 “검찰이 압수수색을 통해 실제 신천지 신도 명단을 확보하더라도 법적으로 이를 방역당국에 제공할 수 없다”며 “설사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더라도 현재로선 혐의가 낮아 법원에서 기각될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신천지 시간벌고 있을 것”
반면 신천지에 정통한 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검찰의 강제수사가 신천지 신도들을 더욱 움츠려들게 할 것이라고 보는 견해는 신천지 집단의 본질을 기존 종교와 동일하다고 보는 오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신천지는 가족한테도 자신이 신도임을 숨기는 등 고도의 밀행성이 바탕이 된 사이비 종교”라며 “검찰이 강제수단을 동원한들 이들의 밀행성이 더해지거나 덜해지는 등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들을 천주교 기독교 불교 등 기존 종교와 마찬가지로 보고 투명하게 자료를 제출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 자체가 정부의 큰 착각"이라며 “신천지 전문가 대다수 현재 신천지 규모가 정부에 신고한 31만명보다 훨씬 클 것으로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기존 종교에 잠입해 정체를 숨기고 활동하는 신천지의 독특한 포교방식과 신천지교 교주인 이만희를 믿으면 절대로 죽지 않는 다며 역학조사에 협조하지 않는 이들의 행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대처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실제 20여년간 신천지에서 활동한 신천지 전 교육장 출신인 이단·사이비 전문가인 신현욱 신천지문제상담소 소장(목사·2006년 신천지 탈퇴)은 “검찰의 강제수사가 늦어지고 있는 사이 신천지는 시간을 벌며, 증거를 삭제하고 있을 것”이라며 “검찰의 강제수사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말했다. 신 소장은 “신천지측이 자발적으로 정부 요청에 응할 것이라고 보는 것은 착각”이라며 “어떠한 자료도 정부의 강제 조치가 있지 않는 한 스스로 내놓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강제수사시 음지로 숨을 것이라고 하는데, 이에 대해서도 강하게 경고한다면 신천지 신도들도 법적 처벌에 대해 어느정도 인식을 하게 될 것”이라며 “신천지엔 절대로 상식적인 대응을 해선 안된다. 이만희 교주부터 수사해서 전체 신도들에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해야한다”고 말했다.
승재현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도 “신천지의 본질은 은폐성과 익명성”이라며 “강제수사를 통해 은폐성과 익명성을 드러나게 해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신천지가 제출한 명단에서 조금이라도 틀린 사실이 발견됐다면 검찰이 적극 수사를 펼칠 필요가 있다”면서도 “수사도 시작되기 전에 검찰 외곽에서 압수수색을 거론하면 오히려 실제 수사가 방해를 받을 수 있다. 이번 수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선 검찰이 이만희 총회장에 대한 수사에 적극 나서면 오히려 신천지의 역학조사 협력 및 방역작업이 오히려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만희를 신으로 여기는 이 집단 특성상 이만희에 대한 범죄 혐의에 국가공권력이 투입된다는 신호만으로도 신천지는 내부적으로 극심한 내분과 재산 다툼에 휩싸일 것이란 전망이다. 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방역을 위해서라도 강제수사는 필요하다”며 “이번 신천지 사태는 진영논리로 접근하면 안된다. 검찰도 방역당국에 판단을 맡길 것이 아니라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