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권의 호모글로벌리스(37)] 영원한 안식처를 찾아
프란시스코 프랑코 스페인 총통의 유해가 작년 10월 말 마드리드 시내 공동묘지로 이장됐다. 1939~1975년 36년간 스페인을 통치한 프랑코는 사망 후 마드리드 근교에 있는 ‘전몰자의 계곡’에 묻혔다. 프랑코의 지시에 따라 건설된 이 기념물에는 스페인 내전 중 사망한 4만여 명이 안치돼 있다. 국민 화합을 명분으로 건설됐으나, 스페인 민주화 이후 기념물 내 프랑코 무덤의 존재는 끊임없이 정치·사회적 논쟁 대상이 됐다. 2018년 페드로 산체스 총리의 사회당 정부는 ‘역사 청산’ 차원에서 이장을 결정했고, 대법원 판결을 거쳐 시행했다. 프랑코에 대한 평가는 ‘유럽 최후의 파시스트’부터 지금의 스페인을 있게 한 ‘국부(國父)’에 이르기까지 상반된 시각이 병존한다. 그러나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붓다의 말처럼 그도 정치권력의 부침과 시대정신의 변화를 피할 수는 없었다.

부관참시, 이장(移葬)보다 더 큰 모욕

[박희권의 호모글로벌리스(37)] 영원한 안식처를 찾아
사망 후에도 안식처를 찾지 못하고 묘지를 전전한 역사상 인물은 의외로 많다. 그중에서도 아르헨티나 에바 페론의 운명은 한 편의 드라마다. ‘페론주의’의 상징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에비타’는 33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군사 쿠데타로 정권이 바뀌자 그의 유해는 이탈리아와 스페인을 떠돌아야 했다. 이사벨 페론이 대통령이 된 뒤 약 2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와 대통령궁에 안치됐는데 그것도 잠시, 군사 쿠데타 후인 1976년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에 있는 레콜레타 공동묘지 내 가족묘지로 옮겨져 오늘에 이른다.

죽은 자에게 이장보다 더 큰 모욕은 부관참시(剖棺斬屍)다. 무덤을 파헤쳐 관을 부수고 유해를 토막 내 욕보이는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정적(政敵)에게 복수하는 수단으로 사용됐다. 올리버 크롬웰의 경우를 보자. 청교도 혁명을 일으켜 찰스 1세를 처형하고, 영국 최초로 공화정을 실시한 크롬웰은 사후(死後) 웨스트민스터 묘지에 안장됐다. 그러나 왕정복고로 즉위한 찰스 2세는 복수심에 불타 크롬웰을 부관참시했다. 무덤을 파서 관을 부수고 목을 잘랐다. 머리는 장대에 꽂아 웨스트민스터 성당에 걸었다. 그 후 머리는 무려 300년을 떠돌다가 1960년에야 케임브리지에 있는 시신 곁에 묻혔다. 모진 인생역정이었다.

사후 복수를 예견하고 미리 조치를 강구한 사례도 있다. 바빌론 여왕인 니토크리스의 무덤에는 다음과 같은 비문이 있었다. ‘바빌론 왕은 돈이 필요하면 무덤을 파서 원하는 만큼 가져가라. 단, 정말로 돈이 필요할 때만 무덤을 파라.’ 페르시아 제국의 설계자이자 전성기를 이끈 다리우스 1세가 바빌론을 정복한 뒤 비문을 읽었다. 황제로서 돈은 많았지만 금은보화가 무덤 안에서 썩는 것은 낭비라고 생각한 그가 무덤을 파헤쳤다. 그러나 돈은 없었고 여왕의 시신 옆에서 메모가 나왔다. ‘죽은 자의 무덤을 약탈할 생각을 할 정도로 당신은 탐욕스럽군.’ 산 자에 대한 죽은 자의 통쾌한 복수였다.

오늘날 독재국가가 아닌 한 부관참시를 보기는 어렵다. 근대문명은 잔혹한 형벌을 법으로 금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덤에 침을 뱉는 무례를 방지하기는 힘들다. 누군가가 무덤 위에서 춤을 추는 것도 좀처럼 막기 어렵다. 옛날 한 영국 귀족의 부인은 남편과 사이가 매우 나빴다. “당신이 죽으면 무덤 위에서 춤을 출 거야.” 그러나 꾀가 많은 남편은 그녀의 계획을 좌절시켰다. 바다에 묻어달라는 조항을 유언에 남겼기 때문이다.

선행(善行)으로 마음 속에 묻혀야

그렇다고 중국 철학자 장자나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처럼 죽음을 초탈하지 않은 이상 자연장(自然葬)으로 장사를 지내 동물의 먹이가 되도록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떻게 하면 누군가가 당신의 무덤에서 춤을 추거나 침 뱉는 것을 예방할 수 있을까? 먼저 선행을 베푸는 방법이 있다. 특히, 국가 지도자가 준엄한 역사의 평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선정(善政)을 펼쳐야 한다. 르완다에는 ‘사람은 죽어서 들에 묻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에 묻힌다’는 격언이 있다. 당신의 선행을 기리며 사람들은 슬픔의 눈물을 흘리거나 추모의 꽃다발을 놓을 것이다.

또 다른 방법은 우주에 묻히는 것이다. 사망 후 유골을 우주공간으로 보내는 우주 장례식은 1997년 처음 시작됐다. 그 후 상업용 로켓기술이 발달하면서 성업 중이다. 여러 우주장례 서비스 업체가 경쟁하고 있고, 비용도 낮아지고 있다. 작은 캡슐에 담긴 유해가 지구궤도를 수년간 돌다가 대기권에 진입하며 연소돼 소멸하거나, 유골함을 실은 인공위성이 240년간 지구궤도를 돌거나, 달에 매장하는 등 다양한 장례 방식이 실행 중이거나 실현될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당신은 우주의 별이 돼 영원한 안식을 취하게 될 것이다.

박희권 < 글로벌리스트·한국외국어대 석좌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