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말 한마디의 힘
시인인 이해인 수녀가 10여 년 전 암투병 때 힘들었던 것은 사람들이 무심코 던진 말이었다. “암은 별 거 아니에요. 요즘은 감기랑 똑같아요”라는 말이 그렇게 듣기 싫었다고 한다. “지금이야말로 깊이 있고 영성이 담긴 시를 쓸 때입니다” 같은 말도 그랬다. 겉으로는 웃었지만 속에선 거부감이 들었다고 한다.

그랬던 이해인 수녀가 진정 위로받은 것은 ‘바보’ 김수환 추기경의 한마디였다. 추기경은 항암·방사선 치료(6년간 총 58회)를 받은 수녀를 한참 걱정스럽게 보더니 딱 한마디 했다. “그래? 대단하다, 수녀!” 이 말에 투병생활 중 처음으로 펑펑 울었고, 그 투박한 공감이 오래도록 큰 힘이 됐다고 한다.

말은 사람을 힘들게도 하고, 힘을 내게도 한다. 그래서 어느 나라나 말에 관한 속담이 많다. 우리 조상들은 ‘말 한마디에 천냥 빚도 갚는다’면서도 ‘혀 아래 도끼 들었다’고 경계했다. 영국 속담에 ‘말이 일단 밖으로 나가면 타인의 소유다’는 말이 있고, 일본 속담에선 ‘입은 화(禍)의 근원’이라고 했다.

우리말이 논리보다는 감성적이어서 말의 무게와 온도가 그때그때 차이가 있다. 같은 말도 아 다르고 어 다르고, 조사(助詞) 하나로도 느낌이 확 바뀐다. ‘키가 커’와 ‘키는 커’, ‘키도 커’, ‘키만 커’가 같을 수 없다. 어떤 언어든 ‘부정+부정=긍정’인 게 철칙인데, 우리말은 ‘잘도 그러겠다’ 처럼 ‘긍정+긍정=부정’의 예외가 있다는 우스개도 있다.

코로나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이는 대구·경북의 의사 간호사들이 가장 힘든 게 말에 의해 상처받는 것이라고 한다. 밀려드는 환자, 부족한 인력과 열악한 근무환경으로 몸도 마음도 소진될 지경인 그들을 위로는 못할망정 “원래 너희 일인데 생색내지 마라” 같은 독설로 찔러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주저앉으면 누가 바이러스와 싸우겠나.

말은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 ‘생각이 말이 되고, 말이 행동이 되고, 행동이 습관이 되고, 습관이 성격이 되고, 성격이 운명이 된다. 우리는 생각대로 된다’(마거릿 대처)고 했다. 모두가 힘든 지금, 서로 나눌 것은 ‘고·미·안·잘(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안녕하세요, 잘했어요)’이 아닐까.

외국인이 좋아하는 우리말에 ‘수고했어요’가 있다. 영어로 옮기기 힘들지만 듣는 이에게 힘이 된다고 한다. 대구·경북에는 이렇게 격려해주자. “욕봤습니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