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 이란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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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all Street Journal 칼럼
로버트 카플란 유라시아그룹 사무국장
인구 8500만…확진자 급증세
부통령 등 고위 관료 잇단 감염
총선 투표율 42%로 역대 최저
로버트 카플란 유라시아그룹 사무국장
인구 8500만…확진자 급증세
부통령 등 고위 관료 잇단 감염
총선 투표율 42%로 역대 최저
이란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란에서는 주(駐)이집트 대사를 지낸 하디 호스로샤히 등을 포함해 많은 사람이 코로나19로 사망했다. 이란 여성으로 최고위직에 오른 마수메 에브테카르 부통령 등 10여 명의 고위 관리도 코로나19 확진자가 됐다. 이라즈 하리르치 이란 보건부 차관은 지난달 24일 국민에게 전염병이 통제되고 있다고 말하면서 진땀을 흘렸다. 그는 다음날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그 전염병이 “적들의 음모 가운데 하나”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로하니 정부는 전례 없는 국민의 무관심을 받고 있다. 지난달 이란 총선의 투표율은 역대 최저 수준이었다. 전국 투표율이 42.6%였고, 수도 테헤란의 투표율은 25.0%에 불과했다.
이는 광범위한 질병의 증상이다. 지난 수십 년간 세계는 물질적으로 크게 발전했지만 이란은 오히려 뒤처졌다. 이란은 유라시아의 교차로에 자리잡고 있고, 인구가 8500만 명에 이른다. 아마도 우리 시대의 가장 큰 문화적, 경제적, 지정학적 비극은 이란 국민의 잠재력이 전혀 발휘되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역사는 종종 중요한 사건들로 움직인다. 1970년대 후반에는 이런 사건이 많았다. 이란의 전 국왕인 무함마드 리자 팔레비는 암으로 고통받았다. 그것은 그의 판단력과 결단에 악영향을 미쳤다. 사담 후세인은 시아파 성지인 나자프에서 망명 생활을 하던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를 프랑스로 추방했다. 그곳에서 호메이니는 추종자들을 규합했다. 이듬해 이란에서 혁명이 일어나고 호메이니가 정권을 장악했다.
만약 이런 사건들이 함께 작동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이란은 한국과 같이 세계화의 최전선에서 활기찬 경제 엔진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란은 경제적으로 간신히 나아가면서 정치적으로 크게 뒷걸음질쳤다.
1977년 이란의 경제 규모는 터키보다 26%, 한국보다 65% 더 컸다. 베트남의 거의 5.5배 규모였다. 그러나 2017년에는 터키 경제 규모가 이란보다 2.5배 커졌고 한국은 7배 이상으로 확대됐다. 이란에서는 빈곤이 다소 감소하긴 했지만 인구의 40%가 하루에 10달러도 못 벌고 있다.
무엇이 잘못됐을까. 세계은행의 한 전직 임원은 “민주적 정책만이 이란의 젊고 교육받은 사람들에게 기업가 정신을 고취시킬 수 있을 것”이라며 “이란이 세계 통합에 맞춘 외교정책을 펴야 훨씬 더 많은 이익을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이 안정적인 입헌군주제를 갖췄다는 가정 아래 지정학적 영향력을 상상해 보자. 이란은 이스라엘과 전략적 협력을 할 수 있고, 사우디아라비아 등 아랍 세계와 안정적이고 대립되지 않는 관계를 누릴 수 있다. 이란은 경제, 문화, 인구통계학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다.
하지만 이란은 가난하고 외로운 나라다. 그들의 유일한 동맹국은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정부다. 이란이 아닌 이집트와 사우디 같은 아랍국은 이스라엘과 사실상의 안보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런데 과거 페르시아인들은 수천 년 동안 유대인들과 더 좋은 관계를 맺었다.
이란의 정치는 종교에 대한 냉소주의를 불러일으켰다. 모스크 출석률은 몇 년째 감소하고 있다. 대신 민중은 이란 시라즈에 있는 14세기 시인 하피즈의 무덤에 몰려들고 있다. 많은 이란 사람의 책꽂이에는 하피즈의 감각적인 시구가 들어 있는 책이 있다. 이것은 이란 정부에 대한 저항의 조용한 상징이다.
이슬람 혁명은 2011년 ‘아랍의 봄’ 민중 봉기보다 훨씬 정교했다. 그러나 이란은 혁명의 쇠퇴기 단계에 있다.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치하 옛 소련처럼 이란 정권은 안정돼 보이지만 아마도 비참한 여진과 함께 위험에 처할 것이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시절 옛 소련의 붕괴는 사회경제적 격변을 일으켰다. 러시아 제국주의에 대한 격렬한 민족 분쟁이 일어났고, 이후 블라디미르 푸틴의 독재 정부가 들어섰다. 이란은 후기 소련처럼 정치 문화가 깊게 부식돼 있다. 신속한 헌법 질서 확립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이란 정권의 붕괴는 이란 혁명수비대에 의한 훨씬 더 폭압적인 통치를 불러올 수도 있다. 또 쿠르드, 아제르바이잔, 튀르크, 발루치 민족들이 봉기를 일으킬 가능성도 있다. 혁명수비대 외에는 기존의 관료적 권력 구조를 대체할 조직은 없을 것이다. 그동안 시민사회는 수십 년 동안 소멸돼 왔다. 어떤 파벌이 이란의 가공할 미사일 무기고에 대한 완전한 통제권을 갖게 될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 무기들은 이라크와 시리아까지 확장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을 굴복시키려고 하지만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쇠퇴하는 경제, 맹렬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그리고 늙고 병든 지도자들. 이란은 앞으로 몇 년 동안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흥미롭고 더 위험할 것이다.
원제=Coronavirus and the Tragedy of Iran
정리=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
THE WALL STREET JOURNAL 한경 독점제휴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그 전염병이 “적들의 음모 가운데 하나”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로하니 정부는 전례 없는 국민의 무관심을 받고 있다. 지난달 이란 총선의 투표율은 역대 최저 수준이었다. 전국 투표율이 42.6%였고, 수도 테헤란의 투표율은 25.0%에 불과했다.
이는 광범위한 질병의 증상이다. 지난 수십 년간 세계는 물질적으로 크게 발전했지만 이란은 오히려 뒤처졌다. 이란은 유라시아의 교차로에 자리잡고 있고, 인구가 8500만 명에 이른다. 아마도 우리 시대의 가장 큰 문화적, 경제적, 지정학적 비극은 이란 국민의 잠재력이 전혀 발휘되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역사는 종종 중요한 사건들로 움직인다. 1970년대 후반에는 이런 사건이 많았다. 이란의 전 국왕인 무함마드 리자 팔레비는 암으로 고통받았다. 그것은 그의 판단력과 결단에 악영향을 미쳤다. 사담 후세인은 시아파 성지인 나자프에서 망명 생활을 하던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를 프랑스로 추방했다. 그곳에서 호메이니는 추종자들을 규합했다. 이듬해 이란에서 혁명이 일어나고 호메이니가 정권을 장악했다.
만약 이런 사건들이 함께 작동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이란은 한국과 같이 세계화의 최전선에서 활기찬 경제 엔진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란은 경제적으로 간신히 나아가면서 정치적으로 크게 뒷걸음질쳤다.
1977년 이란의 경제 규모는 터키보다 26%, 한국보다 65% 더 컸다. 베트남의 거의 5.5배 규모였다. 그러나 2017년에는 터키 경제 규모가 이란보다 2.5배 커졌고 한국은 7배 이상으로 확대됐다. 이란에서는 빈곤이 다소 감소하긴 했지만 인구의 40%가 하루에 10달러도 못 벌고 있다.
무엇이 잘못됐을까. 세계은행의 한 전직 임원은 “민주적 정책만이 이란의 젊고 교육받은 사람들에게 기업가 정신을 고취시킬 수 있을 것”이라며 “이란이 세계 통합에 맞춘 외교정책을 펴야 훨씬 더 많은 이익을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이 안정적인 입헌군주제를 갖췄다는 가정 아래 지정학적 영향력을 상상해 보자. 이란은 이스라엘과 전략적 협력을 할 수 있고, 사우디아라비아 등 아랍 세계와 안정적이고 대립되지 않는 관계를 누릴 수 있다. 이란은 경제, 문화, 인구통계학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다.
하지만 이란은 가난하고 외로운 나라다. 그들의 유일한 동맹국은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정부다. 이란이 아닌 이집트와 사우디 같은 아랍국은 이스라엘과 사실상의 안보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런데 과거 페르시아인들은 수천 년 동안 유대인들과 더 좋은 관계를 맺었다.
이란의 정치는 종교에 대한 냉소주의를 불러일으켰다. 모스크 출석률은 몇 년째 감소하고 있다. 대신 민중은 이란 시라즈에 있는 14세기 시인 하피즈의 무덤에 몰려들고 있다. 많은 이란 사람의 책꽂이에는 하피즈의 감각적인 시구가 들어 있는 책이 있다. 이것은 이란 정부에 대한 저항의 조용한 상징이다.
이슬람 혁명은 2011년 ‘아랍의 봄’ 민중 봉기보다 훨씬 정교했다. 그러나 이란은 혁명의 쇠퇴기 단계에 있다.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치하 옛 소련처럼 이란 정권은 안정돼 보이지만 아마도 비참한 여진과 함께 위험에 처할 것이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시절 옛 소련의 붕괴는 사회경제적 격변을 일으켰다. 러시아 제국주의에 대한 격렬한 민족 분쟁이 일어났고, 이후 블라디미르 푸틴의 독재 정부가 들어섰다. 이란은 후기 소련처럼 정치 문화가 깊게 부식돼 있다. 신속한 헌법 질서 확립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이란 정권의 붕괴는 이란 혁명수비대에 의한 훨씬 더 폭압적인 통치를 불러올 수도 있다. 또 쿠르드, 아제르바이잔, 튀르크, 발루치 민족들이 봉기를 일으킬 가능성도 있다. 혁명수비대 외에는 기존의 관료적 권력 구조를 대체할 조직은 없을 것이다. 그동안 시민사회는 수십 년 동안 소멸돼 왔다. 어떤 파벌이 이란의 가공할 미사일 무기고에 대한 완전한 통제권을 갖게 될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 무기들은 이라크와 시리아까지 확장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을 굴복시키려고 하지만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쇠퇴하는 경제, 맹렬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그리고 늙고 병든 지도자들. 이란은 앞으로 몇 년 동안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흥미롭고 더 위험할 것이다.
원제=Coronavirus and the Tragedy of Iran
정리=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
THE WALL STREET JOURNAL 한경 독점제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