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문재인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글 한 개와 반대하는 글 세 개가 올라와 있다. 탄핵을 촉구하는 글은 논리가 단순하다. “국민이 마스크를 구입하기도 어려운데 대통령은 300만 개의 마스크를 중국에 지원했고, 중국의 모든 지역을 대상으로 입국금지를 하지 않아 국민을 위험에 빠뜨렸다”는 주장이다.

탄핵에 반대하는 글들은 선과 악의 대결 구도가 뚜렷하다.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이라는 사이비 종교가 무분별하게 바이러스를 확산시켰고, 문 대통령은 이에 맞서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과거 정부들은 국민을 속이고 시민들을 방치했는데, 문재인 정부는 모든 수치를 공정하게 공개하고 있어 국가로부터 방치당한다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논지도 보인다. 문재인 정부는 ‘선’이고, 신천지와 과거 정부들은 ‘악’이라는 프레임이다.

중국 우한에서 발병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새로 생긴 변종 바이러스다. 치명적이진 않지만 전염력이 매우 강하다. 그런데도 정부는 지역사회 감염 가능성을 낮게 봤다. 서울 대형 종합병원에서 방어하는 수준으로 끝낼 수 있다고 자신했다.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때 그랬으니까. 하지만 이번 바이러스는 정부의 방어선을 비웃듯 서울 대형 종합병원들을 우회해 지역사회로 침투해 들어왔다.

역사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사건으로 물줄기가 종종 바뀐다. 그게 이번엔 대구 신천지였다. 밀집 대형으로 예배를 길게 하고 비밀조직처럼 신분 노출을 꺼리는 집단이다. 바이러스엔 ‘최고의 숙주’였다.

정부와 여당은 과거 발병한 감염병들을 토대로 대응했다. 의외의 사건이 터질 가능성은 무시했다. 대통령은 “일상생활 활동은 위축됨 없이 평소대로 해도 되겠다”고 말했고, 여당 대표는 “승기를 잡았다”고 외쳤다. 대구 신천지에서 바이러스가 은밀히 퍼지기 시작한 무렵이었다.

환자가 늘고 있는데도 정부는 메르스 때의 경험을 교조적으로 적용했다. 증상의 경중에 관계없이 모든 감염자를 음압병실에 입원시켰다. 메르스와의 전쟁을 치러본 대형 종합병원들은 대응을 잘했다. 하지만 증상이 경미하고 전염력이 강한 감염병에 이런 방식의 대응은 맞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확진자는 5000명을 넘어섰다. 지금의 의료시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뛰어넘었다. 신임 군 간호장교들까지 동원해야 할 정도로 민간 의료인력이 바닥났다. 정부는 뒤늦게 우한처럼 대규모 병상 시설을 서둘러 늘리고 있다.

세상은 예측 밖 영역이라는 것을 보여준 것이 이번 사태다. 병원 침상이 부족해서 사망자가 속출할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전국 초·중·고교 개학을 3주나 연기하고 학교에 비축해둔 마스크까지 꿔다 써야 할 지경이다. 마스크가 ‘대통령 화두’로까지 등장할 것이라고 예측한 사람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우리 국민이 해외에서 입국을 거부당하고 격리되는 사태는 누가 책임져야 하나.

문재인 정부는 출범한 지 3년이 다 돼간다. 과거 정부에 비해 무엇이 다른가를 묻게 한다. 정부 조직은 물론 공무원도 과거 정부에 있었던 사람들이다. 정치인도 그때 그 사람들이다. 2~3년 만에 뭐가 그리 달라졌겠는가. 과거 정부도 열심히 일했다. 제대로 못한 것이 늘 문제였다. 이번 재난도 똑같다. 국회의원 총선거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 등 ‘정무적 판단’이 개입하는 행태마저 달라지지 않았다. 선과 악의 대결 프레임을 들이대면 이번 정부 역시 적폐투성이다.

원점으로 다시 돌아가자. 전염병과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우리가 모르는 것이 여전히 많다. 바이러스가 봄이 오면 수그러들지, 독성이 강해지는 것은 아닌지, 또 다른 유전자 변이가 나타날지 알 수 없다. 백신이나 치료제 개발 시기조차 예측하기 어렵다. 불확실성이 가득하다는 사실을 이제는 겸허하게 받아들이자. 질병과 많이 싸워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앞에 나서도록 하자. 아는 척하는 정치인과 관료, 지방자치단체장들은 이제 입을 다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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