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커피는 잊으세요" 돌고 돌아 '프리미엄 인스턴트'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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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가 2009년 'VIA'로 연 시장
서든커피, 버브커피, 블루보틀 등 진출
"언제 어디서나 최고급 커피 맛 같게"
스페셜티 커피업계의 오랜 고민 해결
서든커피, 버브커피, 블루보틀 등 진출
"언제 어디서나 최고급 커피 맛 같게"
스페셜티 커피업계의 오랜 고민 해결
뜨거운 물 붓고 휙 한번 저으면 끝.
인스턴트 커피는 인류의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로 꼽힌다. 아프리카와 중남미 등 사람 발길이 닿기 힘든 지역에서 나온 커피를 세계인의 음료로 만든 계기가 됐다. 1차 세계대전 참전 군인들의 '필수품'으로 사랑 받은 이후 1990년대까지 전성기를 누렸다. 2000년 이후 외면 받았다. 에스프레소 기반의 아메리카노가 대중화 됐고, 다품종 소량생산의 스페셜티 커피 중심으로 업계에 '제 3의 물결'이 일었다. 인스턴트는 '대량생산되는 싸구려 커피'라는 인식이 퍼졌다. 집집마다 화려한 에스프레소 기기와 캡슐 커피가 등장했다. 반전이 일어나고 있다. 요즘 커피 업계는 다시 인스턴트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 있다. 바리스타와 카페가 넘쳐나는 시대. "내가 만드는 커피는 무조건 간편한 게 좋다"는 소비자들이 부쩍 늘었다. 커피업계도 "잘 만든 인스턴트 커피가 웬만한 아마추어가 내린 스페셜티 커피보다 낫다"며 더 편리한 방식으로 더 맛있는 커피 만들기에 나서고 있다. ○"할머니의 스틱 커피는 잊으세요"
미국 스페셜티 커피 업계의 화두는 '인스턴트 크래프트'다. 대량생산의 가공 방식을 따르지만 커피 원두 선별이나 로스팅 방식은 일일이 전문 로스터와 전문가의 손을 거쳐 세심하게 고른 것을 뜻한다.
아무리 좋은 원두를 공수하더라도 국경과 바다를 건너면서 커피 맛은 변한다. 최고급 품종의 원두를 공수한 스페셜티 커피 업계의 오랜 고민은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에게 100%에 가까운 산지의 맛을 전할까'였다. 수십 번의 사람 손에 거치면서 마지막 단계에는 전혀 다른 맛을 낼 수 있다는 한계가 분명했다. 한때 일본에서 개발된 '드립백(휴대용으로 만든 핸드드립)'이 유행하기도 했지만, 이 역시 맛의 변수가 많았다.
이 답을 가장 먼저 찾은 건 스타벅스다. 2009년 인스턴트 커피에 소량의 초미세입자 커피를 넣어 향을 끌어올린 비아(VIA)를 내놓았다. 비아는 국내에도 10종 가량이 출시돼 매년 15%씩 성장하고 있다. 미국에선 현재 부알라, 서든커피, 버브커피, 스위프트컵커피의 조, 블루보틀 등이 모두 프리미엄 인스턴트 커피를 내놨다. 서든커피는 기존 유명 커피 로스터리인 인텔리젠시아, 세인트알리 등의 커피와 협업해 분쇄커피를 용기에 담아 판매한다.
샌프란시스코 기반의 스페셜티 커피 전문 로스터가 만든 '버브 커피'의 인스턴트 커피에는 패키지에 생산자, 국가명과 생산지역, 프로세스 방식, 재배된 지역 고도와 수확 기간까지 적혀있다. 그 위에는 '이것은 할머니가 마시던 인스턴트가 아니다. 소규모 수제 방식의 엄선된 커피가 들어있다. 물만 부으면 언제 어디서나 마실 수 있다'고 써있다.
○인스턴트 커피는 첨단 기술의 전쟁터
스페셜티 커피 업계가 만드는 프리미엄 인스턴트 커피는 가격도 기존 드립백 방식 등에 비해 비싸다. 6~7회 정도에 나눠 먹을 수 있는 패키지가 16~17달러. 2만원 안팎으로 1잔 가격이 3000원을 넘는다.
프리미엄 인스턴트 커피의 가격은 높을 수밖에 없다. 원재료의 가격이 비싸다. 소량 생산되는 고급 품종을 엄선한다. 로스팅하고 분쇄해서 판매하던 기존 스페셜티 커피 업계의 비즈니스 모델이 '노동집약적'이라면 인스턴트 커피는 '기술집약적'이다. 동결건조와 초미세 분쇄기술, 향미 보존 기법과 특수 패키지 등이 모두 적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고 싶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국내에선 커피믹스의 원조 회사인 동서식품이 뛰어난 기술력으로 인스턴트 커피 시장을 사실상 독점해왔다. 2011년 블랙 인스턴트 커피 '카누'를 기존 커피 믹스 커피의 대안으로 내놨다. 커피업계 관계자는 "기존 커피업계가 원두 산지와 직거래해 좋은 재료를 공수하고 로스팅을 잘 하는 것에 집중했다면, 인스턴트는 아무나 따라할 수 없는 자본과 기술의 경쟁"이라고 설명했다. ○5년간 연평균 5%대 성장
미국 시장조사업체 모조인텔리전스는 인스턴트 커피 시장이 2024년까지 연평균 5%대의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2018년 520억달러(62조6720억원)에서 2024년 677억달러(80조1736억원)까지 커질 것으로 예측됐다. 현재 인스턴트 커피는 세계 커피 시장의 20%를 넘는다. 국내 시장에서는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네슬레와 JAB홀딩컴퍼니는 수년간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 인수를 통해 프리미엄 인스턴트 시장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다. 네스카페와 네스프레소 등을 보유한 네슬레는 스타벅스의 브랜드 라이선스와 블루보틀의 지분 등을 사들였다. JAB는 인텔리젠시아, 스텀프타운, 피츠커피, 프레타망제, 큐리그 등에 투자했다. '커피믹스'에 익숙한 국내 소비자를 겨냥해 커피 업계도 더 간편한 커피 만들기에 역량을 쏟아붓고 있다. 이디야커피는 올해 기존 비니스트 스틱커피를 자체 생산하기 위해 평택에 첨단 제조 공장을 짓고 있다.
파스쿠찌는 드립백과 스틱 커피(인스턴트) 중 스틱 판매량이 눈에 띄게 증가해 최근 풍미를 극대화한 고품질 스틱 커피를 개발 중이다. 던킨은 오리지널 블렌드 원두를 아주 미세하게 가공하는 공법으로 갈아넣은 커피를 출시했다. 배스킨라빈스도 고유 커피 브랜드 '카페 브리즈'를 간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콜롬비아, 브라질, 니카라과산 원두를 블렌딩한 스틱형 커피를 만들었다. 프릳츠커피컴퍼니와 카페뎀셀브즈 등 브랜드는 드립백보다 더 간편한 형태의 티백 커피를 판매하고 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인스턴트 커피는 인류의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로 꼽힌다. 아프리카와 중남미 등 사람 발길이 닿기 힘든 지역에서 나온 커피를 세계인의 음료로 만든 계기가 됐다. 1차 세계대전 참전 군인들의 '필수품'으로 사랑 받은 이후 1990년대까지 전성기를 누렸다. 2000년 이후 외면 받았다. 에스프레소 기반의 아메리카노가 대중화 됐고, 다품종 소량생산의 스페셜티 커피 중심으로 업계에 '제 3의 물결'이 일었다. 인스턴트는 '대량생산되는 싸구려 커피'라는 인식이 퍼졌다. 집집마다 화려한 에스프레소 기기와 캡슐 커피가 등장했다. 반전이 일어나고 있다. 요즘 커피 업계는 다시 인스턴트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 있다. 바리스타와 카페가 넘쳐나는 시대. "내가 만드는 커피는 무조건 간편한 게 좋다"는 소비자들이 부쩍 늘었다. 커피업계도 "잘 만든 인스턴트 커피가 웬만한 아마추어가 내린 스페셜티 커피보다 낫다"며 더 편리한 방식으로 더 맛있는 커피 만들기에 나서고 있다. ○"할머니의 스틱 커피는 잊으세요"
미국 스페셜티 커피 업계의 화두는 '인스턴트 크래프트'다. 대량생산의 가공 방식을 따르지만 커피 원두 선별이나 로스팅 방식은 일일이 전문 로스터와 전문가의 손을 거쳐 세심하게 고른 것을 뜻한다.
아무리 좋은 원두를 공수하더라도 국경과 바다를 건너면서 커피 맛은 변한다. 최고급 품종의 원두를 공수한 스페셜티 커피 업계의 오랜 고민은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에게 100%에 가까운 산지의 맛을 전할까'였다. 수십 번의 사람 손에 거치면서 마지막 단계에는 전혀 다른 맛을 낼 수 있다는 한계가 분명했다. 한때 일본에서 개발된 '드립백(휴대용으로 만든 핸드드립)'이 유행하기도 했지만, 이 역시 맛의 변수가 많았다.
이 답을 가장 먼저 찾은 건 스타벅스다. 2009년 인스턴트 커피에 소량의 초미세입자 커피를 넣어 향을 끌어올린 비아(VIA)를 내놓았다. 비아는 국내에도 10종 가량이 출시돼 매년 15%씩 성장하고 있다. 미국에선 현재 부알라, 서든커피, 버브커피, 스위프트컵커피의 조, 블루보틀 등이 모두 프리미엄 인스턴트 커피를 내놨다. 서든커피는 기존 유명 커피 로스터리인 인텔리젠시아, 세인트알리 등의 커피와 협업해 분쇄커피를 용기에 담아 판매한다.
샌프란시스코 기반의 스페셜티 커피 전문 로스터가 만든 '버브 커피'의 인스턴트 커피에는 패키지에 생산자, 국가명과 생산지역, 프로세스 방식, 재배된 지역 고도와 수확 기간까지 적혀있다. 그 위에는 '이것은 할머니가 마시던 인스턴트가 아니다. 소규모 수제 방식의 엄선된 커피가 들어있다. 물만 부으면 언제 어디서나 마실 수 있다'고 써있다.
○인스턴트 커피는 첨단 기술의 전쟁터
스페셜티 커피 업계가 만드는 프리미엄 인스턴트 커피는 가격도 기존 드립백 방식 등에 비해 비싸다. 6~7회 정도에 나눠 먹을 수 있는 패키지가 16~17달러. 2만원 안팎으로 1잔 가격이 3000원을 넘는다.
프리미엄 인스턴트 커피의 가격은 높을 수밖에 없다. 원재료의 가격이 비싸다. 소량 생산되는 고급 품종을 엄선한다. 로스팅하고 분쇄해서 판매하던 기존 스페셜티 커피 업계의 비즈니스 모델이 '노동집약적'이라면 인스턴트 커피는 '기술집약적'이다. 동결건조와 초미세 분쇄기술, 향미 보존 기법과 특수 패키지 등이 모두 적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고 싶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국내에선 커피믹스의 원조 회사인 동서식품이 뛰어난 기술력으로 인스턴트 커피 시장을 사실상 독점해왔다. 2011년 블랙 인스턴트 커피 '카누'를 기존 커피 믹스 커피의 대안으로 내놨다. 커피업계 관계자는 "기존 커피업계가 원두 산지와 직거래해 좋은 재료를 공수하고 로스팅을 잘 하는 것에 집중했다면, 인스턴트는 아무나 따라할 수 없는 자본과 기술의 경쟁"이라고 설명했다. ○5년간 연평균 5%대 성장
미국 시장조사업체 모조인텔리전스는 인스턴트 커피 시장이 2024년까지 연평균 5%대의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2018년 520억달러(62조6720억원)에서 2024년 677억달러(80조1736억원)까지 커질 것으로 예측됐다. 현재 인스턴트 커피는 세계 커피 시장의 20%를 넘는다. 국내 시장에서는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네슬레와 JAB홀딩컴퍼니는 수년간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 인수를 통해 프리미엄 인스턴트 시장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다. 네스카페와 네스프레소 등을 보유한 네슬레는 스타벅스의 브랜드 라이선스와 블루보틀의 지분 등을 사들였다. JAB는 인텔리젠시아, 스텀프타운, 피츠커피, 프레타망제, 큐리그 등에 투자했다. '커피믹스'에 익숙한 국내 소비자를 겨냥해 커피 업계도 더 간편한 커피 만들기에 역량을 쏟아붓고 있다. 이디야커피는 올해 기존 비니스트 스틱커피를 자체 생산하기 위해 평택에 첨단 제조 공장을 짓고 있다.
파스쿠찌는 드립백과 스틱 커피(인스턴트) 중 스틱 판매량이 눈에 띄게 증가해 최근 풍미를 극대화한 고품질 스틱 커피를 개발 중이다. 던킨은 오리지널 블렌드 원두를 아주 미세하게 가공하는 공법으로 갈아넣은 커피를 출시했다. 배스킨라빈스도 고유 커피 브랜드 '카페 브리즈'를 간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콜롬비아, 브라질, 니카라과산 원두를 블렌딩한 스틱형 커피를 만들었다. 프릳츠커피컴퍼니와 카페뎀셀브즈 등 브랜드는 드립백보다 더 간편한 형태의 티백 커피를 판매하고 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