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밖은 위험해…코로나가 키운 '언택트 소비'
직장인 김정미 씨(40)는 지난 사흘 동안 집 밖에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되면서 회사의 재택근무 권고도 있었지만 굳이 외출할 필요가 없어서다. 아침 식사는 식자재 새벽배송업체 마켓컬리에서 전날 주문한 반조리 식품으로 해결했고, 점심은 배달업체 배달의민족에서 시켜먹었다. 개학이 연기된 아이들에겐 학교 시간표대로 과목별 온라인 강의를 듣게 했다. 퇴근 후 들렀던 요가원은 홈트레이닝으로 대체했다.

코로나19가 시민들의 소비 패턴을 완전히 바꿔놓고 있다. 비말로 전염되는 코로나19 감염을 피하기 위해 사람 간 접촉을 꺼리면서 ‘비대면(untact·언택트) 소비’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마켓컬리 쿠팡 G마켓 등 온라인 유통업체의 지난달 식자재·생필품 매출은 일제히 전년 동기 대비 50% 이상 늘었다. 5060세대까지 온라인쇼핑으로 옮겨가고 있다. 언택트 소비문화는 코로나19 사태 종식 이후에도 이어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코로나19 사태는 비대면 소비문화가 완전히 자리잡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그만큼 오프라인 소매 매장의 종말은 앞당겨질 것”이라고 말했다.
5060도 온라인 쇼핑, 운동·취미 집에서
이젠 '新소비 라이프'


외출은 최소한으로 줄인다. 모임은 극도로 꺼린다. 모든 소비는 집에서만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강요된 칩거’는 시민들의 생활과 소비패턴을 뒤바꿨다. 모바일 쇼핑과 결제, 당일 배송 등 탄탄한 인프라와 ‘코로나19 공포’의 결합은 ‘언택트(비대면·untact) 비즈니스’ 전성시대를 활짝 열어젖히고 있다.

코로나19가 몰고온 ‘언택트 바람’은 질병 종식 이후에도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전통 강자인 대형 오프라인 매장의 조로 현상을 가속화하고, 유통시장의 권력을 온라인 부문으로 빠르게 이동하게 하는 기폭제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집 밖은 위험해…코로나가 키운 '언택트 소비'
5060도 ‘언택트’ 가세

코로나19 사태가 확산하면서 사람들은 일제히 대형마트로 가는 발길을 끊고 온라인몰에 접속하기 시작했다. 식자재 새벽배송업체 마켓컬리의 지난달 20일 이후 하루 평균 주문량은 코로나19 사태 이전 대비 46% 증가했다.

특히 온라인 쇼핑 방식에 익숙지 않은 5060세대도 언택트 소비 대열에 합류했다. G마켓의 50대 이상 고객이 구매한 식품, 생필품 주문 건수(2월 2일~3월 3일 기준)는 전년 동기에 비해 각각 73%, 84% 늘었다. 같은 기간 전체 주문 증가율(각각 66%, 64%)보다 높은 수치다.

최근 한 달간 정육 당일배송업체 정육각의 55세 이상 고객 주문량은 전년 동기 대비 1500% 급증했다. ‘먹거리는 직접 만져보고 사야 한다’던 5060세대도 온라인에서 신선식품을 구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소해 정육각 이사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언택트 소비에 대한 시니어층의 심리적 장벽이 굉장히 낮아졌다는 걸 실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집 밖은 위험해…코로나가 키운 '언택트 소비'
운동·영화도 집에서…‘홈족(族)’의 진화

단순한 쇼핑뿐 아니라 운동, 영화 등 밖에서 즐기던 취미 생활까지 집안에서 하는 홈족도 늘고 있다. 홈트레이닝업체 1위인 건강한친구들의 지난달 신규 회원 가입자 수는 전년 동기 대비 300% 증가했다. 지난달 신규 회원 중 절반은 신천지교회 집단감염 사태가 발생한 직후인 지난달 마지막 주에 가입했다. 홈트레이닝업체 다노의 지난달 수강생(1만1000명)도 전년 동기(4300명) 대비 155% 늘었다. 안진필 건강한친구들 대표는 “코로나19 감염 우려가 큰 임신부나 출산 직후 산모를 대상으로 한 요가·필라테스 프로그램에 신규 회원이 몰렸다”고 말했다.

반면 연초가 성수기인 헬스장에선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국내 1위 헬스장인 고투피트니스를 운영하는 앤앤컴퍼니의 구진완 대표는 “기존 고객이 온라인 동영상을 통해 운동할 수 있도록 유도 중”이라며 “지난주 전국 헬스장 매출은 전주 대비 40%가량 감소했다”고 말했다. 집에서 체력을 기를 수 있는 운동용품 온라인 판매량도 폭증했다. G마켓의 최근 한 달(2월 1일~3월 2일)간 덤벨 판매량은 전월 대비 65%, 러닝머신은 39%, 실내용 트위스트 기구는 96% 늘었다.

영화관 나들이 대신 거실 TV 앞에서 리모컨을 집어드는 사람도 늘었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일요일(1일) 관객 수는 13만311명으로 지난해 3월 첫째주 일요일(56만9547명)에 비해 77.1% 감소했다. 이에 비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 왓챠플레이의 지난 1일 시청시간은 확진자가 나오기 직전인 1월 19일 대비 약 37% 증가했다. 웨이브의 지난달 마지막주 총 시청시간(1600만 시간) 역시 지난해 12월 첫주 시청시간(1300만 시간) 대비 큰 폭으로 증가했다. 웨이브 측은 “확진자의 동선에 영화관이 포함되면서 영화 관람객이 대거 몰렸다”고 설명했다.

일상이 될 ‘언택트 라이프’

확산하는 언택트 소비 문화는 전염병으로 인한 일시적 현상으로 보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클릭 몇 번이면 집을 나서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을 무기로 내세운 언택트 방식에 한 번 발을 들이면 예전의 오프라인 구매 방식으로 되돌아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온라인 쇼핑 방식에 어두운 중·노년층까지 흡수하면서 언택트 소비는 국내 유통시장의 메가트렌드로 자리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염병 대유행 이후 주요 온라인몰이 급격히 덩치를 키운 사례는 이미 여러 번 나왔다.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퍼지면서 중국의 알리바바가 급성장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그해 알리바바 매출은 전년 대비 5배 이상 늘어나며 글로벌 온라인 상거래 업체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연매출이 3000억원대에 불과하던 쿠팡 역시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발생 이후 매출이 1조원대로 뛰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당시 알리바바에 2000만달러를 투자해 578억달러를 벌어들였고, 그 학습 효과로 2015년 쿠팡에 10억달러를 투자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코로나19 확산을 계기로 오프라인에선 불특정 다수의 대면 서비스가 설 자리를 잃는 대신 신뢰에 기반을 둔 1 대 1 VIP 서비스가 성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심성미/홍윤정/김정은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