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냉랭 > 강경화 외교부 장관(오른쪽)이 6일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로 도미타 고지 주한 일본대사(왼쪽)를 초치한 뒤 면담하기 위해 자리로 향하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 냉랭 > 강경화 외교부 장관(오른쪽)이 6일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로 도미타 고지 주한 일본대사(왼쪽)를 초치한 뒤 면담하기 위해 자리로 향하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정부가 6일 일본의 한국인 입국 제한 강화에 대한 상응 조치를 발표했다. 일본인의 무비자 입국(사증 면제) 중단 및 기존 비자의 효력 정지 등 전날 일본 정부가 취한 조치와 같은 수준에서 맞불을 놨다. 입국자 관리 강화와 여행경보 상향 등도 포함됐다.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은 이날 저녁 외교부 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는 사전 협의나 통보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한 일본 측의 조치에 깊은 유감의 뜻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자 한다”며 이 같은 결정을 발표했다. 조 차관은 “일본의 취약한 방역 실태 및 대응을 두고 여러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일본으로부터 유입되는 감염병을 철저히 통제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앞서 청와대는 일본에 ‘상호주의 원칙’에 따른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청와대는 이날 오전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열고 “일본의 조치를 납득하기 어렵다”며 “정부는 상호주의에 입각한 조치를 포함해 필요한 대응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이날 도미타 고지 주한 일본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부른 자리에서 “일본의 부적절한 조치에 개탄을 금할 수 없다. 배경에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며 철회를 요구했다.
中엔 한마디도 못한 외교부…日엔 하루 만에 '입국 제한' 맞보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을 명목으로 취해진 입국 제한 조치들이 ‘한·일 외교전(戰)’으로 번지고 있다. 일본 정부가 한국인의 입국을 막자 한국 역시 일본인의 입국을 제한하는 조치로 맞불카드를 꺼냈다. 지난해 7월 일본의 수출 규제로 촉발한 양국 간 대결 국면이 재연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일본 발표 하루 만에 보복 조치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은 6일 상응 조치를 발표하면서 “우리 정부가 위와 같은 조치를 취한 것은 그간 우리가 주시해오던 일본 내의 코로나19 상황과 관련해 방역 대응상의 취약 부분이 지적되고 의문이 제기돼온 점을 감안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이번 대응 조치가 코로나19의 국내 확산을 막기 위한 것이란 설명이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방역 강화’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보복 성격이 강하다고 분석했다. 무엇보다 일본의 조치 내용과 수준에 맞춰 대응 수위를 조절했다. 일본에 대한 무비자 입국(사증 면제)과 이미 발급한 사증의 효력을 정지시킨 것을 비롯해 일본 전 지역을 대상으로 여행경보를 2단계인 ‘여행 자제’로 상향 조정하는 등 ‘닮은꼴’ 조치를 내놨다. 조 차관은 “(9일부터) 사증 발급 과정에서 건강 확인 절차가 포함될 것이며, 추후 상황 변화에 따라 건강확인서를 요청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발(發) 입국자의 2주간 격리라는 일본 조치에 맞서 우리 정부는 일본발 입국자에게 특별입국 절차를 적용하기로 했다. 적용 시점도 오는 9일 0시로 일본과 맞췄다.

일본발 항공기의 도착 공항도 인천·김포·김해·제주 공항으로 제한하기로 했다. 조 차관은 다만 “재일 한국인이 입국할 시 불편 초래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추후 상응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여지를 남겼다.

靑 “국제사회 불신받는 일본이…”

청와대는 일본의 이번 조치 뒤에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최근 부실한 방역으로 일본 내부는 물론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고 있는 일본 정부가 한국을 겨냥해 ‘물타기’를 하고 있다는 시각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1절 기념사에서 코로나19에 대한 한·중·일의 초국경적 협력을 제안한 직후 조치가 나왔다는 점도 청와대를 불편하게 하고 있다. 이날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회의에서 “일본은 불투명하고 소극적인 방역 조치로 국제사회로부터 불신을 받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린 것도 이 같은 인식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날 일본에 대해 “적반하장”이라는 말로 격앙된 내부 분위기를 전하는 등 강력한 보복 카드를 예고했다.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NSC 상임위원회 회의에서도 ‘상호주의’에 입각한 조치를 언급했다. 지난해 7월 일본의 소재·부품 수출규제 당시 촉발한 한·일 간 ‘팃포탯(tit for tat)’ 대치가 재연될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한때 우리 정부가 보복 카드를 다음주로 미루면서 상황 관리를 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지만 NSC 회의 8시간 만에 전격적으로 발표하면서 이 같은 관측을 일축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이날 조 차관 대신 도미타 고지 주한 일본대사를 불러 강하게 항의했다. 각국 대사를 차관급이 초치하는 외교 관례를 고려하면 이례적이었다. 강 장관은 도미타 대사에게 “추가 조치를 자제할 것을 그간 수차례 촉구했음에도 충분한 협의는 물론 사전 통보도 없이 조치를 강행한 데 대해 개탄을 금할 수 없다”고 문제 제기를 했다. 강 장관은 일본의 조치가 “코로나19 차단 성과를 일구어가는 시점에 이뤄졌다는 점에서도 매우 부적절하며 그 배경에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호주·중국 등과의 형평성 논란도

일각에선 입국 제한 조치를 한 이들 국가와 달리 일본에만 상응 조치를 강구한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일본에 대한 맞대응으로 입국 제한에 나설 경우 중국에 대해서도 조치를 강화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한 외교 소식통은 “중국에 대해서도 한국과 같은 조치를 취한 일본 입장에서 봤을 때 일본에만 취해진 이번 한국 정부의 조치는 ‘정치적’으로밖에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 한국인 입국 제한 조치를 하지 않고 있고 입국자 역시 현저하게 감소한 현 상황에선 중국인 입국 제한은 실효성이 없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설명했다.

김형호/임락근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