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갑영 칼럼] 정치의 전횡이 불러오는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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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근거보다 정치를 앞세운 코로나 대책
脫원전·소주성·주택 및 교육정책도 마찬가지
이념보다 전문가의 지적 정직성을 존중해야
정갑영 < 연세대 명예특임교수, 前총장 >
脫원전·소주성·주택 및 교육정책도 마찬가지
이념보다 전문가의 지적 정직성을 존중해야
정갑영 < 연세대 명예특임교수, 前총장 >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의 국민은 고달프기만 하다. 마스크 한 장 사려고 대여섯 시간 줄을 서야 하고, 병실이 없어 제때 치료받지 못하고 생명을 잃는가 하면, 해외로도 자유롭게 나갈 수 없는 참담한 상황에 처했다. 세계 100여 개국이 기피하는, 인구 비례로 감염자가 가장 많은 오염국가로 전락해 버렸다. 착륙을 거부당한 국적기가 회항하는가 하면, 신혼부부들이 억류되고, 중국에서는 교민의 출입을 막기 위해 대문에 각목까지 박았다고 한다. 확진자도 아닌데 단순히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당하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수모(受侮)다.
국제적인 모멸보다 더 큰 위기는 정부의 방역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크게 저하되는 현실이다. 막연한 낙관론이나 탁상공론으로, 과학적 근거보다는 정치적 고려를 앞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은 외국에서 일방적으로 홀대받는데 외교부는 수수방관하고, 보건복지부는 국민이 주된 감염원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큰소리치던 마스크조차도 태부족이다. 공항은 그대로 열려 있고, 지역 감염 확산을 막는 적극적인 대책도 찾아보기 힘드니, ‘코로나 사태’가 곧 종식되리라는 믿음을 심어주지 못하고 있다. 그 사이 역병은 하루가 다르게 창궐하고, 경제는 마비된 채 기약 없는 공포가 나라를 짓누르고 있다.
전대미문의 위기를 불러온 원인을 어디서부터 찾아야 하나.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중국과의 왕래를 선제적으로 차단하지 않은 것이 결정적인 실책 아니겠는가. 정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방역의 전문성보다는 중국과의 ‘공동운명체’를 꿈꾸는 정치논리를 더 중시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불문가지다. 중국과 북한에 그 많은 정성을 쏟아부었지만, 여전히 냉대와 조롱으로 화답받고 있으니 국격(國格)이 말이 아니다. 결국 국경을 엄격히 통제한 대만은 성공하고, 중국에 관대했던 한국과 이란, 일본 등은 큰 고통을 겪고 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하는 헌법정신을 망각하고, 정치적 실리를 먼저 계산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셈이다.
정치논리가 과학적 진리나 합리성을 압도한 정책 결정은 이번뿐만이 아니다. 탈(脫)원전 정책은 물론 소득주도성장, 주택정책 등도 모두 학계의 주류와는 상반된 것이었고, 입시와 자사고 폐지 등 교육정책도 정치논리가 압도한 작품이다. ‘족보 있는’ 정책이라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소주성’은 결국 소득불균형을 확대시키고, 급기야 작년에는 1인당 소득이 4%나 감소했으며 명목성장률도 외환위기 이후 최저로 떨어졌다. 탈원전은 당장 가시적인 피해가 없는 것 같지만, 경제성 없는 에너지 공급이 산업 경쟁력에 미칠 장기적인 파장은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창의적이고 전문성을 갖춘 인재의 필요성을 감안하면, 교육정책도 똑같은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교육을 통해 불균형을 해소할 사회적 이동성도 크게 제약될 것이다. 모두 정치의 전횡이 불러올 미래 한국 사회의 암울한 모습이다.
당장은 지역 감염 확산을 막는 대책이 가장 절실하다. 전문가 중심의 위기대응 시스템을 가동해 의료계가 제시하는 모든 비상조치를 과감하게 실행하고 국민의 협조와 이해를 구해야 한다. 추경도 의료장비와 병실의 확보 등 방역에 집중해야 한다. 그 많은 세금을 걷고 국채까지 발행하며 1000원짜리 마스크 한 장 제대로 공급하지 못한다니, 어떻게 정부를 신뢰할 수 있겠는가. 외출도 자제하라면서 세금 낮추고, 쿠폰 나눠준다고 소비가 얼마나 늘겠는가. 지금은 조기에 코로나의 확산을 차단하는 것이 가장 강력한 경기 부양책이다.
《경제학의 교훈》을 저술한 헨리 헤즐릿의 지적처럼 민주 사회가 직면한 가장 큰 위기는 ‘전지전능한 정부’를 요구하는 명분에 영합해 과학적 합리성을 압도하는 정치의 전횡에서 비롯된다. 정치가 전횡하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물론 국민의 생명까지도 위기에 처할 수 있다. 과학적 논리보다 정치철학이 압도하는 정책은 결코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주권자인 국민이 전문가의 지적 정직성(intellectual honesty)을 존중하는 정부를 바르게 선택해야만 한다.
국제적인 모멸보다 더 큰 위기는 정부의 방역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크게 저하되는 현실이다. 막연한 낙관론이나 탁상공론으로, 과학적 근거보다는 정치적 고려를 앞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은 외국에서 일방적으로 홀대받는데 외교부는 수수방관하고, 보건복지부는 국민이 주된 감염원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큰소리치던 마스크조차도 태부족이다. 공항은 그대로 열려 있고, 지역 감염 확산을 막는 적극적인 대책도 찾아보기 힘드니, ‘코로나 사태’가 곧 종식되리라는 믿음을 심어주지 못하고 있다. 그 사이 역병은 하루가 다르게 창궐하고, 경제는 마비된 채 기약 없는 공포가 나라를 짓누르고 있다.
전대미문의 위기를 불러온 원인을 어디서부터 찾아야 하나.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중국과의 왕래를 선제적으로 차단하지 않은 것이 결정적인 실책 아니겠는가. 정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방역의 전문성보다는 중국과의 ‘공동운명체’를 꿈꾸는 정치논리를 더 중시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불문가지다. 중국과 북한에 그 많은 정성을 쏟아부었지만, 여전히 냉대와 조롱으로 화답받고 있으니 국격(國格)이 말이 아니다. 결국 국경을 엄격히 통제한 대만은 성공하고, 중국에 관대했던 한국과 이란, 일본 등은 큰 고통을 겪고 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하는 헌법정신을 망각하고, 정치적 실리를 먼저 계산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셈이다.
정치논리가 과학적 진리나 합리성을 압도한 정책 결정은 이번뿐만이 아니다. 탈(脫)원전 정책은 물론 소득주도성장, 주택정책 등도 모두 학계의 주류와는 상반된 것이었고, 입시와 자사고 폐지 등 교육정책도 정치논리가 압도한 작품이다. ‘족보 있는’ 정책이라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소주성’은 결국 소득불균형을 확대시키고, 급기야 작년에는 1인당 소득이 4%나 감소했으며 명목성장률도 외환위기 이후 최저로 떨어졌다. 탈원전은 당장 가시적인 피해가 없는 것 같지만, 경제성 없는 에너지 공급이 산업 경쟁력에 미칠 장기적인 파장은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창의적이고 전문성을 갖춘 인재의 필요성을 감안하면, 교육정책도 똑같은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교육을 통해 불균형을 해소할 사회적 이동성도 크게 제약될 것이다. 모두 정치의 전횡이 불러올 미래 한국 사회의 암울한 모습이다.
당장은 지역 감염 확산을 막는 대책이 가장 절실하다. 전문가 중심의 위기대응 시스템을 가동해 의료계가 제시하는 모든 비상조치를 과감하게 실행하고 국민의 협조와 이해를 구해야 한다. 추경도 의료장비와 병실의 확보 등 방역에 집중해야 한다. 그 많은 세금을 걷고 국채까지 발행하며 1000원짜리 마스크 한 장 제대로 공급하지 못한다니, 어떻게 정부를 신뢰할 수 있겠는가. 외출도 자제하라면서 세금 낮추고, 쿠폰 나눠준다고 소비가 얼마나 늘겠는가. 지금은 조기에 코로나의 확산을 차단하는 것이 가장 강력한 경기 부양책이다.
《경제학의 교훈》을 저술한 헨리 헤즐릿의 지적처럼 민주 사회가 직면한 가장 큰 위기는 ‘전지전능한 정부’를 요구하는 명분에 영합해 과학적 합리성을 압도하는 정치의 전횡에서 비롯된다. 정치가 전횡하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물론 국민의 생명까지도 위기에 처할 수 있다. 과학적 논리보다 정치철학이 압도하는 정책은 결코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주권자인 국민이 전문가의 지적 정직성(intellectual honesty)을 존중하는 정부를 바르게 선택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