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과장 & 이대리] "퇴근 후 놀면 뭐하니"…여유시간 늘자 자격증 시험 '열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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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도생의 시대…다시 취업전선으로
"언제 잘릴지 몰라"…회사동료들과 남몰래 이직 스터디
"언제 잘릴지 몰라"…회사동료들과 남몰래 이직 스터디
지난해 한 유통 대기업에 입사한 신입사원 윤모씨(27)는 지난달 입사 동기 세 명과 스터디 모임을 꾸렸다. 모임 목적은 ‘이직 스터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유통업계가 직격탄을 맞자 업종에 회의를 느껴 이직 준비에 나섰다. 오락가락하는 업황을 덜 타려면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고 판단한 그는 법학전문대학원 진학을 목표로 하고 있다. 윤 사원은 “이번 코로나19 피해를 보면서 이러다 회사가 망할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이 처음 들었다”며 “평생 한 직장에 머무르는 시대가 아닌 만큼 전문 자격증을 따서 몸값을 높이려고 한다”고 말했다.
산업환경이 하루가 멀다하고 급변하다 보니 이직 준비가 김과장 이대리의 일상이 돼가고 있다. 더 높은 연봉, 더 편한 근무여건을 위해서만은 아니다. 최근 산업계에 감원 칼바람이 불면서 ‘생존’을 위해 더 안정적인 새 직장을 찾고 있다. 밤잠 줄여가며 다시 취업전선에 뛰어든 김과장 이대리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생존을 위해 이직 준비”
이직은 이미 하나의 흐름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80만 명이 이직을 택했다. 2015년 69만 명에서 4년 새 11만 명이 늘었다. 잡코리아가 지난해 말 벌인 설문조사에서도 직장인 59.7%가 ‘새해 이직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이직을 꿈꾸는 첫째 이유는 안정적인 밥벌이를 위해서다.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그들을 다시 취업전선에 내몰았다. 서울의 한 정보기술(IT) 기업에 다니는 이 주임은 퇴근 후 틈틈이 학예사 자격증 공부를 하고 있다. 입사 3년 만에 구조조정 대상에 오를 뻔해서다. 홈페이지 관리 업무를 인공지능(AI)으로 자동화하겠다는 회사 방침에 따라 한 달 전 그가 속한 팀은 해체됐다. 이 주임은 다행히 다른 팀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해고는 면했지만 그가 느끼는 불안감은 커질 대로 커졌다. 이 주임은 “동료들이 차례차례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고 했다.
감원 바람은 기업 규모와 업종을 가릴 것 없이 불고 있다. 두산중공업은 만 45세 이상 기술·사무직 직원을 대상으로 명예퇴직 신청을 받았다. 조건에 맞는 인원은 2600여 명으로 전체 직원의 40%가 넘는다. 에쓰오일도 1976년 창사 이후 처음으로 희망퇴직을 검토할 예정이다.
지난해부터 ‘비상 긴축경영’을 강조해온 한 유통회사는 올해 초 3년차 이상 대리급에게도 권고사직을 요구했다. 그동안 부장급 등 선임급에서만 시행되다 대상이 대폭 확대됐다. 9년차 사원인 오 과장은 “입사 후 이렇게까지 분위기가 안 좋았던 적은 처음”이라며 “대리급까지 해당이 되면서 회사의 허리 격인 과장들도 동요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용 보장된 공무원도 직장 옮기기도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항공·유통업계에선 젊은 직원들을 중심으로 이직 준비가 한창이다. 저비용항공사(LCC)에 다니는 김 대리는 요즘 이직을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지난해 ‘노재팬 운동’에 이어 올해 초 코로나19 사태로 회사가 경영난에 빠졌기 때문이다. 그의 회사는 이미 무급휴직제를 도입했다. 휴직 기간 그는 재경관리사 자격증을 준비할 계획이다. 김 대리는 “입사 초기에는 평생직장이라고 생각했는데 불과 몇 년 만에 큰 위기가 왔다”며 “이직 경쟁이 더 치열해진 만큼 자격증이라도 따서 이직 시장에 뛰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절대 잘리지 않는다’는 부러움 섞인 시선을 받는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 중에서도 의외로 이직을 결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경직된 조직 문화나 정형화된 업무에 질려 나오는 젊은 층이 대부분이다. 한 무역 관련 공공기관에 재직하다가 일반 기업으로 자리를 옮긴 정모씨(33)는 “안정적인 것도 좋지만 무사안일주의에 빠져 있는 선배들을 보며 ‘이렇게 살아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미래가 다소 불안하긴 해도 일한 만큼 인정받는 사기업으로 옮겼다”고 말했다.
재취업 위한 ‘이직 스터디’도
주 52시간 근무제가 안착되면서 김과장 이대리들의 이직 준비는 더 수월해졌다. 국내 한 IT기업에 다니는 김 매니저는 1주일에 두 번씩 퇴근 후 코딩 스터디 모임을 한다. 일이 덜 바쁘던 전 직장에서는 코딩 학원도 다녔다. 코딩을 배워 앱 개발 기술을 익히는 게 그의 목표다. 그는 “퇴근했다고 집에서 쉬기만 하는 건 시간 아까운 일”이라며 “근무시간이 줄면서 퇴근 후에 이직 준비를 하는 동료가 많다”고 귀띔했다.
동료들과 이직 스터디를 꾸리는 경우도 있다. 저연차 신입사원끼리 직무와 관련된 과제를 수행하거나 면접 준비를 하는 식이다. 지난해 한 대기업에 입사한 성모씨(29)는 “첫 직장을 발판 삼아 이직하려는 동기들이 워낙 많아 모임을 꾸리는 게 어렵지 않았다”며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도 이직 스터디를 구한다는 게시글이 많이 올라온다”고 말했다.
불안한 마음에 ‘투잡(two job)’을 뛰는 직장인들도 있다. 한 IT회사에 근무하는 박 대리는 주말마다 동영상 편집 외주 일을 하고 있다. 평소 그가 회사에서 하는 마케팅 업무와 전혀 다른 일이다. 유튜브 등 동영상 편집 수요가 늘어나는 점을 노려 학원까지 다니면서 기술을 배웠다. 지금은 한 달에 수십만원씩 번다. 박 대리는 “회사에는 말하지 않고 가욋일로 하는 것”이라며 “업황이 들쭉날쭉한 탓에 언제 자리에서 쫓겨나도 당장 굶어죽지 않기 위해 투잡을 뛰고 있다”고 말했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
산업환경이 하루가 멀다하고 급변하다 보니 이직 준비가 김과장 이대리의 일상이 돼가고 있다. 더 높은 연봉, 더 편한 근무여건을 위해서만은 아니다. 최근 산업계에 감원 칼바람이 불면서 ‘생존’을 위해 더 안정적인 새 직장을 찾고 있다. 밤잠 줄여가며 다시 취업전선에 뛰어든 김과장 이대리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생존을 위해 이직 준비”
이직은 이미 하나의 흐름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80만 명이 이직을 택했다. 2015년 69만 명에서 4년 새 11만 명이 늘었다. 잡코리아가 지난해 말 벌인 설문조사에서도 직장인 59.7%가 ‘새해 이직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이직을 꿈꾸는 첫째 이유는 안정적인 밥벌이를 위해서다.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그들을 다시 취업전선에 내몰았다. 서울의 한 정보기술(IT) 기업에 다니는 이 주임은 퇴근 후 틈틈이 학예사 자격증 공부를 하고 있다. 입사 3년 만에 구조조정 대상에 오를 뻔해서다. 홈페이지 관리 업무를 인공지능(AI)으로 자동화하겠다는 회사 방침에 따라 한 달 전 그가 속한 팀은 해체됐다. 이 주임은 다행히 다른 팀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해고는 면했지만 그가 느끼는 불안감은 커질 대로 커졌다. 이 주임은 “동료들이 차례차례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고 했다.
감원 바람은 기업 규모와 업종을 가릴 것 없이 불고 있다. 두산중공업은 만 45세 이상 기술·사무직 직원을 대상으로 명예퇴직 신청을 받았다. 조건에 맞는 인원은 2600여 명으로 전체 직원의 40%가 넘는다. 에쓰오일도 1976년 창사 이후 처음으로 희망퇴직을 검토할 예정이다.
지난해부터 ‘비상 긴축경영’을 강조해온 한 유통회사는 올해 초 3년차 이상 대리급에게도 권고사직을 요구했다. 그동안 부장급 등 선임급에서만 시행되다 대상이 대폭 확대됐다. 9년차 사원인 오 과장은 “입사 후 이렇게까지 분위기가 안 좋았던 적은 처음”이라며 “대리급까지 해당이 되면서 회사의 허리 격인 과장들도 동요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용 보장된 공무원도 직장 옮기기도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항공·유통업계에선 젊은 직원들을 중심으로 이직 준비가 한창이다. 저비용항공사(LCC)에 다니는 김 대리는 요즘 이직을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지난해 ‘노재팬 운동’에 이어 올해 초 코로나19 사태로 회사가 경영난에 빠졌기 때문이다. 그의 회사는 이미 무급휴직제를 도입했다. 휴직 기간 그는 재경관리사 자격증을 준비할 계획이다. 김 대리는 “입사 초기에는 평생직장이라고 생각했는데 불과 몇 년 만에 큰 위기가 왔다”며 “이직 경쟁이 더 치열해진 만큼 자격증이라도 따서 이직 시장에 뛰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절대 잘리지 않는다’는 부러움 섞인 시선을 받는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 중에서도 의외로 이직을 결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경직된 조직 문화나 정형화된 업무에 질려 나오는 젊은 층이 대부분이다. 한 무역 관련 공공기관에 재직하다가 일반 기업으로 자리를 옮긴 정모씨(33)는 “안정적인 것도 좋지만 무사안일주의에 빠져 있는 선배들을 보며 ‘이렇게 살아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미래가 다소 불안하긴 해도 일한 만큼 인정받는 사기업으로 옮겼다”고 말했다.
재취업 위한 ‘이직 스터디’도
주 52시간 근무제가 안착되면서 김과장 이대리들의 이직 준비는 더 수월해졌다. 국내 한 IT기업에 다니는 김 매니저는 1주일에 두 번씩 퇴근 후 코딩 스터디 모임을 한다. 일이 덜 바쁘던 전 직장에서는 코딩 학원도 다녔다. 코딩을 배워 앱 개발 기술을 익히는 게 그의 목표다. 그는 “퇴근했다고 집에서 쉬기만 하는 건 시간 아까운 일”이라며 “근무시간이 줄면서 퇴근 후에 이직 준비를 하는 동료가 많다”고 귀띔했다.
동료들과 이직 스터디를 꾸리는 경우도 있다. 저연차 신입사원끼리 직무와 관련된 과제를 수행하거나 면접 준비를 하는 식이다. 지난해 한 대기업에 입사한 성모씨(29)는 “첫 직장을 발판 삼아 이직하려는 동기들이 워낙 많아 모임을 꾸리는 게 어렵지 않았다”며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도 이직 스터디를 구한다는 게시글이 많이 올라온다”고 말했다.
불안한 마음에 ‘투잡(two job)’을 뛰는 직장인들도 있다. 한 IT회사에 근무하는 박 대리는 주말마다 동영상 편집 외주 일을 하고 있다. 평소 그가 회사에서 하는 마케팅 업무와 전혀 다른 일이다. 유튜브 등 동영상 편집 수요가 늘어나는 점을 노려 학원까지 다니면서 기술을 배웠다. 지금은 한 달에 수십만원씩 번다. 박 대리는 “회사에는 말하지 않고 가욋일로 하는 것”이라며 “업황이 들쭉날쭉한 탓에 언제 자리에서 쫓겨나도 당장 굶어죽지 않기 위해 투잡을 뛰고 있다”고 말했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