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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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이 ‘코로나 사태’를 더욱 힘들어하는 것은 이 판국에도 정부의 관심사는 ‘방역’이 아닌 ‘정치’라는 의구심 때문이다. 마음이 콩밭에 가 있다 보니 대책마다 꼬이고, 그 수습을 위해 또 무리수를 동원하는 양상의 반복이다. 일본의 ‘한국인 입국제한·금지 조치’에 대한 정부의 이해하기 힘든 대처가 잘 보여준다.

청와대와 외교부는 일본의 조치가 “비과학적이고 비우호적”이라며 격렬하게 비난하고 나섰다. 하지만 어느 대목이 비과학적이고 비우호적이라는 것인지 제대로 된 설명은 없다.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과 매너도 민망할 정도로 거칠다.

외교부는 ‘비과학적 조치’로 판단한 근거로 입국제한 봉쇄 등은 ‘과학적 감염병 대응법’이 아니라고 세계보건기구(WHO)가 밝힌 점을 제시했다. 표나게 중국 편을 드는 바람에 WHO의 신뢰가 바닥으로 추락한 점에서 궁색하기 짝이 없는 설명이다. 한국의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나라가 WHO 권고와 정반대로 위험국으로부터 국경을 최대한 봉쇄중이다. “인구 1만명당 확진자가 중국(0.58명)보다 많은 한국(1.12명)에 대한 입국 제한은 과학”이라는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상의 주장에 반박하기 쉽지 않다.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은 “전세계가 평가하는 한국의 우수한 방역시스템에 대한 일본의 이해부족”을 지적했지만 이 역시 무슨 주장인지 모호하다. 한국 방역시스템이 감염자를 100% 판별해낼수 있다는 궤변으로 들린다. 한국인 성지순례단의 집단감염 사실이 이스라엘 공항에서 확인됐고, 무증상 감염자와 2주 격리기간이 지난 후에 발병하는 사례도 속출중이다.

청와대의 설명도 온통 모순덩어리다. 청와대는 “일본의 취약한 방역실태와 대응을 두고 여러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며 “적반하장”이라고 했다. 1000여명의 한국인을 격리한 중국에 대해 “방역능력이 떨어지는 나라의 불가피한 조치로 이해한다”고 했던 것과 상충되는 주장이다. 청와대는 또 쏟아지는 중국인 입국금지 요청에 ‘우수한 방역시스템으로 감염위험을 걸러낼 수 있다”며 “입국금지 조치는 실효성이 없다”고 강조해왔다. 이런 주장이라면 일본인 입국 봉쇄도 불필요하다는 모순된 결론이 이르게 된다.

도쿄올림픽 무산시 손실이 88조원에 이른다는 일본이 한국인 차단에 나선 것은 무조건 “비우호적 조치”로 몰아붙이는 것도 설득력이 약하다. 한국인 입국제한국이 100개국이 넘는 상황에서 일본에 대해서만 “방역 외 다른 의도를 의심할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은 공허할 수 밖에 없다.

제3자의 눈으로 보면 형평성과 객관성에서 취약한 한국 정부의 저의를 의심할만한 상황이다. 일본과 같은 날 한국인 입국을 아예 전면금지한 호주에 대해 정부는 침묵중이다. 1000여명의 한국인 입국자를 느닷없이 격리한 중국은 대사 초치조차 없었다. 유독 일본에만 격분하고 즉각적인 상응조치를 취한 것은 일본에 대한 한국정부의 비우호성으로 비칠 가능성이 높다. 일본이 중국에 대해서도 한국과 동일한 입국제한 조치를 동시에 취했다는 점도 정부 주장의 근거를 약화시킨다.

물론 일본의 조치를 비우호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정황과 심증은 넘친다. 그렇더라도 합리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 채 비우호적 조치라며 몰아세우는것은 품격있는 외교와 거리가 멀다. 아무리 초치했다지만 일국의 대사를 적국의 장수 대하듯 하는 것은 국격을 갉아먹는 행위다.

장관들의 저급한 면피성 주장이 쏟아지는 것도 자괴감을 증폭시킨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등 고위 관료들은 ‘지구상 어느 나라보다 신속한 조치를 취했다’며 자화자찬 모드다. 홍남기 부총리도 IMF 국제통화금융위원회에서 외국장관들에게 “확진자 수를 기준으로 다른 나라와 단순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주장을 펼쳤다. 검사를 많이해서 확진자가 많은 것이라는 건 ‘부분의 사실’일 뿐이다.방역실패가 확진자 증가의 본질이라는 점은 외면하고 ‘지구최고의 방역’이라 둘러대는 것은 본말전도에 불과하다. 장기간에 구축한 우수한 의료체계 및 방역시스템을 무용지물로 만들고만 부실방역에 대한 책임을 얘기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악소문과 가짜뉴스 탓에 마스크 대란에 대처하기가 어려웠다”며 언론까지 탓하고 나섰다. 책임있는 나라의 지도자들이 위선과 궤변에 몰두하는 것은 방역이 정치로 변질됐다는 방증이 것이다. 23년전 외환위기는 ‘금모으기 한마음’으로 국민을 통합시켰다. 코로나 사태는 갈등과 분열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너무 낯설고 달라진 대한민국의 현실이 걱정스럽다.

백광엽 논설위원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