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한국 자동차 생산량이 외환위기 당시인 1999년 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공장 가동 중단과 경기 침체, 중견 자동차 3사의 부진 등이 겹친 탓이다. 업계에서는 “올해 자동차 부품사들이 연쇄 도산하는 등 산업생태계가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9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 자동차 생산량은 18만9235대로 잠정 집계됐다. 지난해 2월(25만7276대)보다 26.4% 줄었다. 3년 전인 2017년 2월(33만6032대)과 비교하면 ‘반 토막’ 수준이다. 2월만 놓고 보면 1999년(16만9518대) 후 가장 적게 생산했다.

자동차 생산량이 급격하게 줄어든 가장 큰 이유는 코로나19의 확산이다. 중국에 있는 공장들이 장기간 문을 닫으면서 부품(와이어링 하니스) 공급이 끊겼고, 국내 완성차업체들도 공장 가동을 중단해야 했다. 현대·기아자동차는 지난달 공장별로 1~2주일씩 생산라인을 멈춰 세웠다. 한국GM 르노삼성자동차 쌍용자동차 등 중견 3사도 모두 한 차례씩 가동을 중단했다. 공장을 가동할 때도 빈 컨베이어벨트를 돌리는 경우가 많아 가동률은 50% 수준에 머물렀다.

국내외 자동차 시장이 쪼그라든 것도 국내 자동차 생산량을 떨어뜨린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글로벌 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올해 글로벌 자동차 판매량이 지난해보다 2.5% 줄어든 8800만 대 수준에 머물 것으로 내다봤다. 글로벌 경기 침체와 차량공유 서비스 활성화 등 악재에 코로나19 확산이라는 변수까지 더해져 판매가 부진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소비위축…'車 생산절벽' 장기화 우려

한국GM과 르노삼성자동차, 쌍용자동차 등 중견 3사의 부진도 자동차 생산량 급감을 부채질했다. 르노삼성은 부산공장 생산량의 절반(약 10만 대)을 차지하던 닛산 로그 수탁생산 계약이 끝났지만, 프랑스 르노 본사로부터 후속 수출 차량을 배정받지 못했다. 경영난으로 신차를 내놓지 못하고 있는 쌍용차의 국내외 판매량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한국GM도 2021년이 돼야 생산량이 ‘정상궤도’로 올라설 전망이다. 완성차업계 관계자는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는 꾸준히 신차를 내놓고 있어 그나마 버틸 수 있겠지만, 마땅한 신차가 없는 중견 3사는 사상 초유의 위기를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자동차산업의 ‘생산절벽’이 장기화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달 들어 국내 자동차 공장 가동률은 정상 수준으로 올라섰지만, 여전히 소비심리는 위축돼 있다. 한 자동차 영업점 관계자는 “매장에 사람들이 찾아와야 차량 장점을 설명할 텐데, 아예 방문을 안 하는 분위기”라며 “이렇게 가면 3월도 판매가 부진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한국 자동차산업의 생태계가 붕괴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연간 자동차 생산량이 400만 대를 넘겨야 생태계가 유지되는데, 올해 400만 대를 넘기는 건 이미 물 건너갔다는 게 중론이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