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테일 못지않은 세심함에 역점…'기생충' 정체성 살려내고 싶었죠"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베스트셀러 '기생충 각본집&스토리보드북' 디자이너 맛깔손
지난달 서점가에서 화제를 모은 책을 꼽자면 단연 《기생충 각본집&스토리보드북 세트》(플레인아카이브)가 1순위다. 지난해 10월 출간된 이 책은 영화 ‘기생충’이 지난달 10일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등 4개 부문을 휩쓴 이후 판매가 급증하기 시작해 2월 넷째주 교보문고 종합 베스트셀러 1위까지 올랐다. 지금도 주요 서점 예술·대중문화 분야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 중이다. 영화 관계자나 일부 애호가에게 팔리던 영화 각본집·스토리북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다.
이 책이 인기를 끌면서 독특한 책 디자인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보통 책 상단에 있는 제목을 과감하게 아래쪽에 넣고, 인디언 모자를 쓴 기택(송강호 분) 얼굴의 절반가량을 흑백으로 전면에 크게 배치했다. 그래픽 디자이너 맛깔손(본명 최희은·33)의 작품이다. 최근 서울 이태원동 작업실에서 만난 그는 “봉준호 감독이 요구한 스타일에 고민을 거듭하며 디자인한 결과”라고 말했다. “봉 감독은 다소 낯설면서도 담백한, 기교 없는 디자인을 원했습니다. 예상치 못한 요구여서 많이 당황했죠. 그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려고 영화뿐 아니라 책과 인터뷰까지 모두 찾아봤습니다.”
표지에 기택의 얼굴을 반만 넣은 것은 “기택의 눈빛과 분위기에 집중되는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라고 했다. “반만 넣어 얼굴에서 보이는 장면의 힘이 생겼죠. 독자들이 책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하는 효과도 주고요. ‘봉테일(봉준호+디테일)’ 못지않은 세심함도 살리려 했습니다. 브리지 장엔 영화 속 인디언 깃털 패턴을 넣었고, 영화의 주된 장소인 지하 계단 모양을 삐뚤게 형상화해 페이지 안쪽에 배치했습니다.”
영화 ‘낮은 목소리’ 블루레이 DVD 디자인 작업을 함께했던 플레인아카이브로부터 기생충 각본집 디자인 제안을 받은 것은 지난해 3월이었다. 그는 “영화 개봉 전에 시나리오를 받고 나서 단순히 책표지를 디자인하기보다 영화의 브랜드 정체성을 내 손으로 정립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책뿐 아니라 각종 포스터와 공간 디자인 작업을 해왔다. 국립현대미술관과 국립중앙박물관 등의 전시 디자인에 참여했고, 서울 동대문 현대시티아울렛 지하 1층 매장 브랜드 아이덴티티 작업을 했다. 최근 문화역서울 284에서 열린 ‘호텔사회’ 기획전에는 입체적 공간 설치 작품인 ‘바 언더워터’를 선보여 주목받기도 했다.
“기생충 각본집 작업을 계기로 좀 더 대중적인 디자인 작업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픽 디자인은 콘텐츠 자체로서 존재하기보다 다른 콘텐츠와 함께 많이 보이고 읽히는 게 좋죠. 하지만 그냥 정답 같은 상업적 디자인을 하기보다 제 감수성을 담아 좀 더 낯설고 다르게 읽히는 디자인을 통해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고 싶습니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이 책이 인기를 끌면서 독특한 책 디자인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보통 책 상단에 있는 제목을 과감하게 아래쪽에 넣고, 인디언 모자를 쓴 기택(송강호 분) 얼굴의 절반가량을 흑백으로 전면에 크게 배치했다. 그래픽 디자이너 맛깔손(본명 최희은·33)의 작품이다. 최근 서울 이태원동 작업실에서 만난 그는 “봉준호 감독이 요구한 스타일에 고민을 거듭하며 디자인한 결과”라고 말했다. “봉 감독은 다소 낯설면서도 담백한, 기교 없는 디자인을 원했습니다. 예상치 못한 요구여서 많이 당황했죠. 그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려고 영화뿐 아니라 책과 인터뷰까지 모두 찾아봤습니다.”
표지에 기택의 얼굴을 반만 넣은 것은 “기택의 눈빛과 분위기에 집중되는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라고 했다. “반만 넣어 얼굴에서 보이는 장면의 힘이 생겼죠. 독자들이 책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하는 효과도 주고요. ‘봉테일(봉준호+디테일)’ 못지않은 세심함도 살리려 했습니다. 브리지 장엔 영화 속 인디언 깃털 패턴을 넣었고, 영화의 주된 장소인 지하 계단 모양을 삐뚤게 형상화해 페이지 안쪽에 배치했습니다.”
영화 ‘낮은 목소리’ 블루레이 DVD 디자인 작업을 함께했던 플레인아카이브로부터 기생충 각본집 디자인 제안을 받은 것은 지난해 3월이었다. 그는 “영화 개봉 전에 시나리오를 받고 나서 단순히 책표지를 디자인하기보다 영화의 브랜드 정체성을 내 손으로 정립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책뿐 아니라 각종 포스터와 공간 디자인 작업을 해왔다. 국립현대미술관과 국립중앙박물관 등의 전시 디자인에 참여했고, 서울 동대문 현대시티아울렛 지하 1층 매장 브랜드 아이덴티티 작업을 했다. 최근 문화역서울 284에서 열린 ‘호텔사회’ 기획전에는 입체적 공간 설치 작품인 ‘바 언더워터’를 선보여 주목받기도 했다.
“기생충 각본집 작업을 계기로 좀 더 대중적인 디자인 작업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픽 디자인은 콘텐츠 자체로서 존재하기보다 다른 콘텐츠와 함께 많이 보이고 읽히는 게 좋죠. 하지만 그냥 정답 같은 상업적 디자인을 하기보다 제 감수성을 담아 좀 더 낯설고 다르게 읽히는 디자인을 통해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고 싶습니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