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선의 'ASEAN 톺아보기' (38)] 마하티르의 정치 도박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모하맛 총리는 지난달 24일 압둘라 국왕에게 돌연 사직서를 제출했다. 마하티르 총리는 오는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개최 후 총리직 이양을 공언했던 터라 사의 표명은 큰 충격이었다. 국왕은 그의 사의를 받아들이면서 차기 정부가 구성될 때까지 임시 총리직을 맡아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자 새 정부 구성이 용이치 않을 것이란 점에서 마하티르의 사의 표명이 총리직 이양을 회피하기 위한 의도가 아닌가 하는 추측이 난무했다. 그런데 압둘라 국왕은 지난달 29일 무히딘 야신 말레이시아원주민연합당(PPBM) 대표를 제8대 총리로 임명했고, 무히딘 총리는 다음날 곧바로 공식 취임했다.
사태가 급진전하자 마하티르는 같은 당 소속인 무히딘에게 배신감을 나타내고, 자신이 하원 의원 과반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주장하며 무히딘 총리를 국회 불신임투표에 부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말레이시아 헌법상 하원에서 과반의 신임을 얻은 하원 의원을 국왕이 총리로 임명하게 돼 있는데, 무히딘은 과반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는 이유를 들었다. 2018년 5월 총선을 통해 말레이시아 헌정사상 61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뤄 정치개혁에 대한 기대를 높였던 마하티르의 희망연대(PH) 연립정권은 분열과 파국으로 막을 내리게 됐다.
총리직 사퇴의 데자뷔
마하티르는 왜 돌연 총리직 사퇴를 표명하고 PPBM 대표직까지 무히딘에게 넘겨줘 화를 자초했을까. 2002년 6월 마하티르가 총리직과 여당인 통일말레이국민조직(UMNO) 대표직 사임을 전격 발표하던 상황이 데자뷔(기시감)로 떠오른다. 당시 UMNO의 만류로 결국 마하티르는 사의를 접고, 이듬해 비동맹 정상회의와 이슬람회의기구(OIC) 정상회의를 개최한 뒤에야 22년간의 총리직을 마무리하고 압둘라 부총리에게 바통을 넘겼다.
95세의 마하티르는 2018년 5월 총리로 다시 취임하면서 2년 뒤 연정 파트너인 안와르 이브라힘 인민정의당(PKR) 대표에게 총리직을 넘길 것을 약속했으나 불분명한 태도로 일관했다. 올 2월 들어 안와르 세력은 마하티르에게 총리직 이양의 구체적인 시간표를 제시할 것을 압박했고, 안와르 반대 세력은 마하티르의 사임 발표 하루 전인 2월 23일 저녁 쉐라톤호텔에서 새로운 연정 구성을 논의했다. 이 모임은 안와르의 PKR에서 이탈한 아즈민 경제장관과 무히딘이 주도했으며, 야당연합의 UMNO 및 범말레이시아이슬람당(PAS) 의원들도 참여한 보수 성향 범말레이계의 거사였다. 새로운 연정안에 대해 마하티르는 나집 라작 전 총리 등 UMNO의 부패 인사들과는 손잡을 수 없다고 했고, 이에 따라 무히딘이 대안으로 급부상했다.
최근 말레이시아 정국 혼란은 총리직 승계를 둘러싼 연정 내 세력 다툼으로 촉발된 것이다. 하지만 그 근저에는 종족정당에 바탕을 둔 말레이시아 정치의 본질적인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초미의 관심사는 마하티르가 언제 안와르에게 총리직을 넘길 것인가였다. 안와르는 마하티르가 총리이던 시절 부총리로서 주목받았으나 1998년 부패 및 동성애 혐의로 축출돼 둘은 애증 관계로 묘사되곤 했다. 총리직 승계와 관련한 마하티르의 모호한 태도는 정국의 불확실성을 높이는 원인을 제공했다.
종족정당 간 세력 다툼이 문제
말레이시아는 말레이계 62%, 중국계 22%, 인도계 7% 등 다종족 복합사회다. 따라서 말레이시아 정치는 이념보다 종족에 바탕을 둔 정당들이 말레이계의 주도권을 인정한 가운데 연합하는 체계로 발전돼왔다. 1946년 조직된 말레이계의 UMNO를 중심으로 중국계 및 인도계 정당이 합류해 결성한 국민전선(BN)이 2018년 정권교체 때까지 집권했다.
2018년 집권한 희망연대는 총선을 앞두고 급조된 정당연합이어서 정치개혁과 경제정책에서 확실한 국정 수행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부패 척결과 다종족통합사회 건설을 내세운 희망연대는 지난 총선에서 말레이계 지지의 30%밖에 확보하지 못했다. 이런 내재적 한계는 지난해 보궐선거의 참패와 민심 이반으로 나타났다. 한편 야당연합의 보수 말레이정당인 UMNO와 PAS의 공조 강화는 희망연대에 커다란 부담으로 작용했다.
무히딘 총리의 새로운 연정은 각 정파의 합종연횡 등 말레이시아 정국의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의 한 지인은 이렇게 말했다. “완전히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다. 그냥 물러날 마하티르가 아니다.” 마하티르는 회고록에서 늘 최선을 다해 일했고 “박수칠 때 떠나라”는 어머니의 충고를 떠올리곤 했다고 술회했다. 또 자신에 대한 평가는 현재와 미래의 국민 몫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말레이시아 현대화의 아버지’ ‘아시아적 가치의 주창자’ ‘반(反)서방주의자’ ‘동방정책의 주창자’ 등으로 불렸던 그는 말레이시아 정치사에 어떤 인물로 기록될까. 그에게 영예로운 퇴진이란 어떤 모습일까.
김영선 <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객원연구원, 前 한·아세안센터 사무총장 >
사태가 급진전하자 마하티르는 같은 당 소속인 무히딘에게 배신감을 나타내고, 자신이 하원 의원 과반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주장하며 무히딘 총리를 국회 불신임투표에 부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말레이시아 헌법상 하원에서 과반의 신임을 얻은 하원 의원을 국왕이 총리로 임명하게 돼 있는데, 무히딘은 과반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는 이유를 들었다. 2018년 5월 총선을 통해 말레이시아 헌정사상 61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뤄 정치개혁에 대한 기대를 높였던 마하티르의 희망연대(PH) 연립정권은 분열과 파국으로 막을 내리게 됐다.
총리직 사퇴의 데자뷔
마하티르는 왜 돌연 총리직 사퇴를 표명하고 PPBM 대표직까지 무히딘에게 넘겨줘 화를 자초했을까. 2002년 6월 마하티르가 총리직과 여당인 통일말레이국민조직(UMNO) 대표직 사임을 전격 발표하던 상황이 데자뷔(기시감)로 떠오른다. 당시 UMNO의 만류로 결국 마하티르는 사의를 접고, 이듬해 비동맹 정상회의와 이슬람회의기구(OIC) 정상회의를 개최한 뒤에야 22년간의 총리직을 마무리하고 압둘라 부총리에게 바통을 넘겼다.
95세의 마하티르는 2018년 5월 총리로 다시 취임하면서 2년 뒤 연정 파트너인 안와르 이브라힘 인민정의당(PKR) 대표에게 총리직을 넘길 것을 약속했으나 불분명한 태도로 일관했다. 올 2월 들어 안와르 세력은 마하티르에게 총리직 이양의 구체적인 시간표를 제시할 것을 압박했고, 안와르 반대 세력은 마하티르의 사임 발표 하루 전인 2월 23일 저녁 쉐라톤호텔에서 새로운 연정 구성을 논의했다. 이 모임은 안와르의 PKR에서 이탈한 아즈민 경제장관과 무히딘이 주도했으며, 야당연합의 UMNO 및 범말레이시아이슬람당(PAS) 의원들도 참여한 보수 성향 범말레이계의 거사였다. 새로운 연정안에 대해 마하티르는 나집 라작 전 총리 등 UMNO의 부패 인사들과는 손잡을 수 없다고 했고, 이에 따라 무히딘이 대안으로 급부상했다.
최근 말레이시아 정국 혼란은 총리직 승계를 둘러싼 연정 내 세력 다툼으로 촉발된 것이다. 하지만 그 근저에는 종족정당에 바탕을 둔 말레이시아 정치의 본질적인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초미의 관심사는 마하티르가 언제 안와르에게 총리직을 넘길 것인가였다. 안와르는 마하티르가 총리이던 시절 부총리로서 주목받았으나 1998년 부패 및 동성애 혐의로 축출돼 둘은 애증 관계로 묘사되곤 했다. 총리직 승계와 관련한 마하티르의 모호한 태도는 정국의 불확실성을 높이는 원인을 제공했다.
종족정당 간 세력 다툼이 문제
말레이시아는 말레이계 62%, 중국계 22%, 인도계 7% 등 다종족 복합사회다. 따라서 말레이시아 정치는 이념보다 종족에 바탕을 둔 정당들이 말레이계의 주도권을 인정한 가운데 연합하는 체계로 발전돼왔다. 1946년 조직된 말레이계의 UMNO를 중심으로 중국계 및 인도계 정당이 합류해 결성한 국민전선(BN)이 2018년 정권교체 때까지 집권했다.
2018년 집권한 희망연대는 총선을 앞두고 급조된 정당연합이어서 정치개혁과 경제정책에서 확실한 국정 수행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부패 척결과 다종족통합사회 건설을 내세운 희망연대는 지난 총선에서 말레이계 지지의 30%밖에 확보하지 못했다. 이런 내재적 한계는 지난해 보궐선거의 참패와 민심 이반으로 나타났다. 한편 야당연합의 보수 말레이정당인 UMNO와 PAS의 공조 강화는 희망연대에 커다란 부담으로 작용했다.
무히딘 총리의 새로운 연정은 각 정파의 합종연횡 등 말레이시아 정국의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의 한 지인은 이렇게 말했다. “완전히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다. 그냥 물러날 마하티르가 아니다.” 마하티르는 회고록에서 늘 최선을 다해 일했고 “박수칠 때 떠나라”는 어머니의 충고를 떠올리곤 했다고 술회했다. 또 자신에 대한 평가는 현재와 미래의 국민 몫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말레이시아 현대화의 아버지’ ‘아시아적 가치의 주창자’ ‘반(反)서방주의자’ ‘동방정책의 주창자’ 등으로 불렸던 그는 말레이시아 정치사에 어떤 인물로 기록될까. 그에게 영예로운 퇴진이란 어떤 모습일까.
김영선 <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객원연구원, 前 한·아세안센터 사무총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