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유국 '치킨게임' 돌입…유가전쟁 본격화
코로나에 증산 경쟁까지
국제유가가 이처럼 폭락세를 보인 것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때문이다. 국제유가는 올초만 하더라도 60달러대에 거래됐다. 미국과 이란의 갈등으로 인해 일시 70달러대에 진입하기도 했지만 잠시에 그쳤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세계 수요가 부진해질 것으로 예상되자 미끄럼틀을 탔다. 중국의 원유 수요가 1분기에만 10% 감소할 것이란 추정이 나온 2월 50달러대가 붕괴했다.
이 같은 하락세를 부채질한 것은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의 석유 전쟁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수요 부진으로 국제유가가 크게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자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이 포함된 OPEC+가 최근 감산 협의를 시도했다.
사우디를 중심으로 한 OPEC은 하루 150만 배럴 감산을 제안했다. 하지만 러시아가 지난 6일 반대했다. 추가 감산할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다. 이들은 이달 말 종료되는 기존 감산(하루 210만 배럴) 연장에도 합의하지 못했다. 알렉산드르 노바크 러시아 에너지장관은 “다음달 1일부터 어떤 국가도 감산 요구를 받지 않는다”며 증산을 시사했다. 이날 국제유가는 10% 폭락했다.
사우디는 7일 반격에 나섰다. 하루 970만 배럴인 생산량을 4월부터 1000만 배럴 이상으로 늘리고, 수출가를 배럴당 6~8달러 내리기로 했다. 사우디 당국자는 “필요하다면 하루 1200만 배럴까지도 늘릴 수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원유 수요가 급감한 상황에서 무차별 증산에 나선 것이다.
미 셰일업체와 금융시장 충격줄 수도
사우디와 러시아는 세계 산유량 1위와 2위 국가였다. 국제유가의 움직임이 자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2010년대 세계 경제가 둔화세를 보이자 논의 끝에 2016년 OPEC+를 결성한 배경이다. 이후 감산을 이어오면서 유가를 지지해 왔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불신이 커져왔다. 가장 많은 양을 감산해온 사우디는 상대적으로 적은 양을 줄여온 러시아에 불만을 품었다. 러시아는 감산이 미 셰일오일 업자들만 돕는다고 보고 있다. 감산으로 유가를 방어하는 동안 미국의 석유 생산량은 세계 1위가 됐다. 러시아와 사우디는 시리아 문제에서도 부딪쳤다. 사우디는 시리아 반군을 돕지만 러시아는 정부군을 지원한다. 사우디는 증산 경쟁에 나서면 러시아의 생산단가가 비싼 만큼 러시아가 버티지 못할 것으로 계산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2~3분기 브렌트유 가격 전망을 30달러로 낮추면서 20달러까지 추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모건스탠리는 2분기 브렌트유 전망을 배럴당 57.50달러에서 35달러로, WTI 전망을 배럴당 52.50달러에서 30달러로 낮췄다.
문제는 이렇게 낮은 유가가 이어지면 세계 경기를 뒤흔들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채산성 악화로 각국 석유기업이 무너지면 금융회사에도 연쇄 타격이 가해진다. 미 증시에서 에너지 기업 비중은 4.4% 수준이지만, 정크본드 시장에선 11%에 달한다. 또 에너지산업은 금융업계는 물론 지역 산업과도 연계돼 있다. 캐피털 IQ에 따르면 상장된 원유 및 가스 업체에 종사하는 사람만 70만 명에 이른다. 비상장 업체에 종사하는 약 100만 명은 제외한 것이다.
헤지펀드 그레이트힐캐피털의 토머스 헤이스 회장은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유가가 낮아지면 일부 에너지 기업은 부도 가능성이 커진다”며 “러시아가 곧 협상장에 돌아오지 않으면 미 셰일기업들의 신용 위기가 불거지고 이는 경기 침체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