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고생하고 욕만 먹는데"…마스크 판매 포기 약국 속출
서울 종로5가 인근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태모씨(83)는 ‘마스크 5부제’가 시행된 지난 9일부터 공적(公的) 마스크 판매를 중단했다. 지난 6일 마스크 중복구매 방지제도가 도입되면서 집에 있던 아내까지 동원해 신분증 확인 작업을 돕게 했지만 결국 ‘백기’를 들었다. 태씨는 “봉사심에서 마스크를 판매했는데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정부가 마스크 5부제를 공식 시행한 지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벌써부터 마스크 판매에서 손을 떼는 약국들이 생겨나고 있다. 업무 부담이 큰 데다 정부정책에 대한 시민들의 비난을 고스란히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1장에 400원 이익? 오히려 손해”

"생고생하고 욕만 먹는데"…마스크 판매 포기 약국 속출
10일 서울 종로5가 인근 A약국에서는 오전 9시30분부터 배송된 공적 마스크 200장의 포장을 모조리 뜯고 다시 비닐봉지에 담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전체 직원 5명 중 3명이 투입됐다. 대부분 약국에 배부된 마스크는 5장이 한꺼번에 포장된 제품이다. 1인당 2장을 팔려면 재포장이 불가피하다.

1인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들은 마스크 5부제 시행 후 마스크 판매를 엄두도 내지 못한다. 마스크 분류 작업에 신분확인 절차까지 더해지면 마스크 판매에만 반나절이 걸리기 때문이다.

마스크 판매가 사실상 ‘밑지는 장사’인 것도 약사들이 마스크 판매를 포기하는 이유 중 하나다. 현재 공적 마스크 한 장에 약국 매입가격은 1100원, 판매가격은 1500원이다. 한 장을 팔 때마다 400원이 남지만 10%의 부가가치세를 제하면 250원에 불과하다. 여기에 인건비, 카드 수수료 등의 지출을 감안하면 남는 게 없다는 것이다. 종로5가 인근의 한 약국 관계자는 “카드 수수료라도 아끼려고 최대한 현금을 받으려 하지만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대한약사회에 따르면 공적 마스크를 취급하지 않는 약사회 회원은 200명 수준으로 추정된다. 중복구매 방지를 위한 전산장비가 없어 판매를 중단했거나, 과도한 업무로 마스크 판매를 중단한 약국이 대부분이다. 대한약사회 관계자는 “부가세만이라도 빼달라고 정부에 건의하고 싶지만 모두가 힘든 시기에 이런 말을 꺼내기도 어렵다”며 “약국이 마스크 장사로 떼돈을 버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도 있어 약사들이 더 힘들어하고 있다”고 했다.

공적 마스크 판매 ‘업무방해’ 해당 안 돼

심지어 일부 약사는 약국을 공적 마스크 판매처로 정한 정부를 업무방해죄로 고소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약국은 엄연한 개인사업장인데 공적 마스크를 팔도록 해 매출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시민들로부터 “왜 마스크 준비가 안 돼 있느냐”는 등의 비난만 받고 있어서다.

약사들이 정부를 업무방해죄로 고소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법조계 해석이다. 공적 마스크 판매 자체가 의무사항이 아닌 데다 이를 포기하더라도 그에 따른 불이익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공적 마스크 판매에 동참하지 않는다고 해서 정부가 약국에 불이익을 주는 일은 절대 없다”며 “일선 약사들이 고생하고 있다는 데 정부도 동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약사 부담이 과중하다는 지적이 나오자 서울시는 약국에 단기 인력을 지원하기로 10일 결정했다. 서울에 있는 약국 2500여 곳을 대상으로 단기 근로인력을 하루 세 시간 투입한다는 게 골자다. 한 곳당 14일간 인력이 지원되며, 이르면 11일부터 투입될 예정이다.

배태웅/전예진/남정민 기자 btu10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