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터면 꿈을 포기할 뻔했습니다.”

서울 용산구에 있는 85㎡짜리 커피전문점 ‘트래버틴’. 낡은 한옥을 개조해 만든 이곳은 특유의 분위기에 독특한 커피 맛으로 입소문이 났다. 지난해 1월 이곳을 창업한 이승목 사장(32)에게 지난달은 악몽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면서 매출이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

운영자금도 서서히 바닥을 드러냈다. 퇴직금으로 어렵게 시작한 꿈이 와르르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찾아왔다. 급히 은행을 찾았다. ‘솟아날 구멍’은 있었다. 신한은행에서 5000만원의 긴급자금을 대출받았다. 이 사장은 “창업한 지 얼마 안 된 소상공인에게도 선뜻 돈을 빌려준 은행 덕분에 한숨 돌렸다”고 말했다.
커피점 트래버틴을 운영하는 이승목 사장(왼쪽)이 10일 자신의 가게에서 황소영 신한은행 용산전자지점 부지점장과 만나 얘기하고 있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
커피점 트래버틴을 운영하는 이승목 사장(왼쪽)이 10일 자신의 가게에서 황소영 신한은행 용산전자지점 부지점장과 만나 얘기하고 있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
소상공인 대출절차 확 줄인 신한銀

국내 주요 은행은 코로나19 대출을 지원하기 위한 비상 체제를 가동 중이다. 하지만 당장 대출 자금이 공급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서울신용보증재단 보증 신청이 밀려 한두 달은 기다려야 받을 수 있는 구조다. 이 사장처럼 창업한 지 얼마 안 된 소상공인은 상황이 더욱 열악하다. 기업 현황 파악, 실사 진행, 보증 처리, 본점 승인 등 거쳐야 할 절차가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이 사장에겐 행운이 따랐다. 영업일 기준으로 약 2주일 만에 통장에 5000만원이 꽂혔다. 신한은행 용산전자지점의 ‘결단’ 덕분이다. 이 지점은 이 사장이 지난달 6일 대출 상담을 신청하자마자 바로 다음날 사업장을 방문했다. 부지점장이 직접 기업 현황을 파악했다. ‘성장 가능성을 감안했을 때 돈을 빌려줘도 좋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지난달 10일 보증서를 신청한 뒤에도 “최대한 빨리 발급해달라”고 서울신용보증재단을 설득했다. 지난달 19일 보증서가 발행됐고 24일 5000만원의 대출이 이뤄졌다.

황소영 신한은행 용산전자지점 부지점장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매출이 많게는 60%까지 뚝 떨어졌다면서 긴급 대출을 문의하는 연락이 하루에도 수십 건씩 온다”며 “일상적인 절차를 따랐다간 소상공인이 다 무너질 수 있다고 우려해 대출 절차를 최소화하는 데 주력했다”고 말했다. 이 지점은 대출 신청을 받자마자 해당 소상공인의 가게를 방문해 현장을 실사하고, 성장 가능성을 확인한 뒤 지점장 전결로 대출을 실행했다. 본점 승인 과정은 생략했다.

모범 사례, 전국 지점 확대한다

신한은행 "지점장이 발벗고 자영업 신속 대출"…당국 "모범사례"
신한은행은 이 사례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코로나19 소상공인 긴급대출 간소화’ 방안을 전국 영업점으로 확대 추진하기로 했다. 코로나19 여파로 매출이 급감, 어려움에 처한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대출 절차를 줄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 각 지점의 실사 결과 성장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소상공인에겐 신용등급을 3단계 상향 조정한 수준으로 대출금리와 한도도 재조정하도록 했다.

진옥동 신한은행장은 “특수 상황인 만큼 기존 업무 절차에 얽매여선 안 된다”며 “절차를 개선하면서도 안정적으로 대출을 공급할 수 있도록 각 영업점에서 더 많이 뛰어달라”고 강조했다. 제도만 마련해두고 실제 자금 공급은 늦어지는 문제가 발생해선 안 된다는 판단이다. 금융위원회도 신한은행의 이번 대출을 ‘모범 사례’로 선정해 다른 은행을 독려할 방침이다.

1월 29일 개시한 신한은행의 소상공인 대상 코로나19 긴급대출은 지난 9일까지 총 5792건(1802억원)이 실행됐다. 대출 규모는 1월 마지막 주 121억원(379건)으로 시작해 매주 꾸준히 늘고 있다. 신한은행은 ‘제2의 트래버틴 커피점’ 사례를 많이 만드는 게 목표다.

신한은행은 인근 지점끼리 통합 커뮤니티를 마련해 소상공인 대출 접수 현황을 공유, 품앗이하는 체계도 구축했다. 용산전자지점은 인근 용산지점, 원효로지점 등 3개 지점이 함께 대출이 필요한 소상공인 가게를 챙기고 있다.

대출을 받은 이 사장은 요즘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할 새로운 전략을 세울 여유도 생겼다. 트래버틴 2호점은 파니니와 샌드위치도 곁들여 파는 브런치카페로 준비하고 있다. 이 사장은 “코로나19를 계기로 배달 음식이 더 확산될 것이라고 판단해 집까지 커피와 밀키트를 배달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