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WHO)가 9일(현지시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관련해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의 위협이 매우 현실화했다"고 경고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이날 스위스 제네바 WHO 본부에서 열린 언론 브리핑에서 "이제 코로나19가 많은 나라에서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모든 국가는 코로나19를 통제하고 억제하기 위한 종합적인 전략을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까지 113개국 11만4000여명이 코로나19에 감염됐고 4000여명이 숨졌다.



브리핑에 배석한 마이클 라이언 WHO 긴급대응팀장은 코로나19의 팬데믹을 규정하는 정확한 기준은 없다고 했다. 다만 통상 팬데믹은 국가 간 전염이 일어나고 통제를 못 할 때를 일컫는다면서 "싱가포르나 중국 등 코로나19 통제에 성공한 나라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WHO의 관점은 100개국, 10만 명 같은 양이 아니라 방향성"이라고 덧붙였다.

WHO는 2009년 전 세계적으로 유행한 신종플루(돼지 인플루엔자)를 팬데믹으로 규정한 바 있다. 그러나 증상이 예상만큼 심각하진 않았고, 타미플루가 효과를 발휘하면서 팬데믹 선언이 성급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후 WHO는 당시까지 유지해 온 '팬데믹 6단계 기준'을 폐지했다.

태릭 얘서레비치 WHO 대변인도 지난달 25일 언론 브리핑에서 "WHO는 현재 팬데믹 6단계 기준을 현재 쓰고 있지 않으며 팬데믹에 대한 규범적 정의는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반적으로는 팬데믹이 전세계적으로 사람 대 사람 간에 쉽게 퍼지는 새로운 병원균을 의미하는 데 쓰인다"고 덧붙였다.

과거의 WHO 팬데믹 기준을 보면 크게 '팬데믹 발전'. '팬데믹 경고', '팬데믹' 등 세 가지 큰 범주로 구분된다. 팬데믹 발전에는 ①변종 바이러스가 아직 나타나지 않고, 동물로부터의 전염도 없음 ②변종은 아직 없으나 동물에서 인간으로 전염 발생 등 두 단계가 속한다.

팬데믹 경고는 크게 세 단계다. ③변종 바이러스 감염 발생 ④변종 감염에 인간 간 전염 추가 ⑤지역사회 감염 ⑥보다 넓은 지역에서 인간 간 전염 증가 등으로 올라간다. 마지막인 대유행(6단계)은 '대중들 사이에서 지속적 확산 증가'로 정의된다.

WHO는 지난 1월30일 코로나19 전염 상황을 '국제비상사태'라고 선포했다. 진원지인 중국 외 다른 지역에서 발병이 확산하고 있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팬데믹이냐를 놓고서는 '아니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한편 미국 CNN방송은 이날부터 코로나19 발병 상황을 팬데믹으로 부르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CNN은 "오늘부터 현재의 코로나19 발병 상황을 표현하기 위해 팬데믹이란 용어를 쓰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며 "그게 두렵게 들린다는 걸 알지만 그게 패닉(공황)을 일으켜선 안 된다"고 보도했다.

CNN은 WHO나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모두 아직 코로나19 발병을 팬데믹이라 부르지 않았다면서도 "그러나 많은 전염병 학자들과 공중보건 전문가들은 세계가 이미 팬데믹을 겪고 있다고 주장한다"고 강조했다.

CNN도 팬데믹의 구체적 요건이 규정돼 있지는 않다고 했다. △질환이나 사망을 유발할 수 있는 바이러스 △이 바이러스의 지속적인 사람 간 전염 △(이 바이러스의) 전 세계적 확산의 증거 등이 팬데믹의 세 가지 일반적 기준이라고 설명했다.

CDC 산하 국립면역호흡기질환센터 낸시 메소니에 국장은 지난달 말 "코로나19가 질병과 사망을 유발하고 지속적인 사람 간 전파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우려스럽다"며 "이들 요소는 팬데믹의 두 가지 요건을 충족한다"고 말한 바 있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