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 어린이 마스크 품귀…전문가 "학교 비축분 풀 때"
“학교에 비축된 마스크는 비상시를 대비한 겁니다.” “지금이 비상 상황인데요?” “아무튼 학교 교육활동 때 써야 할 마스크입니다.”

최근 기자가 교육부 공무원과 나눈 대화의 일부다. 배경을 설명하자면 이렇다. 전국 초·중·고교엔 현재 마스크 1270만 장이 비축돼 있다.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이후 비상시를 대비해 학교마다 일정량 이상 마스크를 비축하도록 한 규정을 따른 것이다. 이 가운데 160만 장은 지난달 29일 정부가 일반 시민에게 제공하겠다며 걷어 갔다가 “아이들 마스크를 왜 일반인에게 주냐”는 비판을 받고 환원 중이다. 여기에 지난 2일 예산 202억원을 투입해 학교용 마스크 2000만 장을 추가 지원했다.

그런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여파로 개학이 이달 23일까지 연기된 상태다. 당장 쓸 마스크는 적은데 3000만 장 넘는 마스크가 놀고 있는 셈이다. 이런 와중에 약국에서는 어린이 마스크가 품귀 상태다. 정부가 공적 마스크의 성인용·어린이용 생산 비율을 따로 정하지 않다 보니 성인용 중심으로 물량이 풀렸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참에 학교 비축 물량을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초·중·고교 학생이 530만 명 정도이니 현재 비축량이면 1인당 약 6장씩 줄 수 있다. 정부의 공적 마스크 판매 기준 ‘1주일 2장’을 따르면 3주를 버틸 수 있다. 일전에 비축량을 걷어간 것은 일반인에게 주겠다는 것이어서 문제였지만 아이들에게 주겠다면 비판받을 일도 없다. 하지만 교육부는 여전히 “불가하다”는 방침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학교에 안 나가는데 지금 마스크 쓸 일이 뭐 있냐”고도 했다. 초등학생 2명을 키우는 학부모 신모씨(42)는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며 “아이들을 최대한 밖에 안 내보내려 하지만 학원도 가야 하고 가끔 친구들과 만나기도 하는데, 마스크가 부족해 불안하다”고 말했다. 학원은 정부의 휴원 권고에도 불구하고 휴원율이 50%가 안 된다.

비축 마스크는 개학하면 쓸 물량이라지만 개학은 더 연기될 가능성도 있다. 이윤경 참교육학부모회 서울지부장은 “23일이 돼도 코로나19 추이가 지금과 비슷하다면 개학을 더 미뤄야 한다”며 “바이러스 활동력이 왕성할 때 아이들이 교실에 바글바글 모여 있으면 마스크를 쓴들 소용없다”고 했다. 개학은 코로나19 사태가 어느 정도 잠잠해지면 해야 하는데 그때는 마스크가 별로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 이 지부장은 “규정만 보고 제도를 경직되게 운용할 게 아니라 마스크가 가장 시급한 지금 학생들에게 비축량을 배분해 주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3일 ‘마스크 대란’과 관련해 정부 부처에 ‘감수성 있는 정책’을 주문했다. 정책에는 감수성뿐 아니라 융통성과 실효성도 필요하다.

moran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