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완의 21세기 양자혁명] 아인슈타인의 양자(量子)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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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사람들을 표현할 때 ‘남녀노소’라고 한다. 성별로는 남 또는 여, 나이로는 노 또는 소로 양분법 구분이 된다. 어떤 사람이 길을 가는데, 검문소 둘을 차례로 통과해야 한다고 하자. 첫 번째 검문소는 ‘남자 통과 금지(여자만 통과)’, 두 번째 검문소는 ‘여자 통과 금지(남자만 통과)’라고 하면 두 검문소를 모두 통과하는 사람이 있을까? 당연히 없다.
이 두 검문소 사이에 ‘소인 통과 금지(노인만 통과)’ 검문소를 하나 더 설치하면 이 세 검문소를 통과하는 사람이 있을까? 당연히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양자물리학적인 논리로는 가능하다. 첫 번째 검문소를 통과한 사람은 여자다. 이제 이 여자는 노인일 수도 있고 소인일 수도 있다. 그래서 두 번째 검문소를 노인으로 통과한다. 이제 이 노인이 세 번째 검문소 ‘여자 통과 금지’를 만났을 때, 노인은 남자일 수도 있고 여자일 수도 있으므로 남자로서 통과하면 된다.
물론 이런 논리는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양자물리학의 측정을 비유한 것이다. 여기서 ‘소인 통과 금지’ 검문소를 맨 먼저나 마지막에 놨다면 어떻게 될까? 이 경우를 따져 보면 양자물리학적 논리로도 아무도 통과할 수 없다. 검문소의 순서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확률로만 표현되는 불확정성 원리
방금 든 예는 폴라로이드 선글라스 또는 편광안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색소를 넣어 빛의 양을 줄이는 단순한 선글라스와 달리 편광안경은 수직 편광만 통과시키도록 편광판을 배열해 수평 편광을 차단함으로써 눈에 들어오는 빛의 양을 줄인다. 태양 빛은 수평과 수직 편광이 섞여 있다. 수직 편광의 상당 부분은 도로와 물에 흡수돼 사라지고 수평 편광은 대부분 남은 상태로 우리 눈을 향해 오는데, 수직 편광판이 이 수평 편광을 차단해 얼마 남지 않은 수직 편광만 우리 눈으로 들어오게 한다.
이제 이들 편광판을 배열하는데 첫 번째 수직 편광판(남자 통과 금지), 두 번째 수평 편광판(여자 통과 금지)을 놓으면 빛이 완전히 차단된다. 여기에 45도로 기울인 편광판(소인 통과 금지)을 둘 사이에 끼워 넣으면 세 편광판을 모두 통과하는 빛이 남게 된다. 첫 번째를 통과한 수직 편광은 45도와 마이너스 45도 편광의 중첩이어서, 이 가운데 45도 편광 성분이 통과한다. 한편 45도 편광은 수평과 수직의 중첩이어서 이 중 수평 성분이 마지막 수평 편광판을 통과하게 된다.
편광을 수평·수직으로 구분하는 것을 ㄱ-방식이라고 하고, 45도·-45도로 구분하는 것을 ㅅ-방식이라고 하자. 남·여나 노·소 구분처럼 광자 하나에 대한 편광 측정도 ㄱ-방식은 수평·수직, ㅅ-방식은 45도·-45도의 양분법이다. ㄱ-방식 측정을 통해 수평 편광으로 측정된 광자는 ㅅ-방식 측정에 대해 45도인지 -45도인지 완전히 불확정하게 된다. 이것이 가장 간단한 형태의 양자불확정성 원리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1905년 광전효과를 설명해 양자물리학의 기초를 세우고 그 공로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았지만, 1927년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가 발표되면서 성립된 양자물리학의 현대적 해석에 대한 불만을 1955년 사망할 때까지 안고 갔다.
제2 양자혁명 부른 아인슈타인의 의문
에너지와 같은 물리량이 연속적이지 않고 띄엄띄엄 떨어져 덩어리져 있다는 뜻을 담은 말이 ‘양자(量子)’이고, 여기까지를 구식 양자이론이라고 한다. 현대 양자이론에 따르면 입자의 위치를 먼저 측정하면 속도가 불확정하게 되고, 속도를 먼저 측정하면 위치가 불확정하게 된다.
두 숫자의 곱은 순서를 바꿔도 결과가 같다. 그에 비해 행렬식 두 개를 곱할 때 순서를 바꾸면 곱이 달라진다. 그래서 현대 양자물리학은 물리량들이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행렬식으로 된 방정식으로 표현된다. 45도 편광 광자를 ㅅ-방식으로 측정하면 100% 45도 편광으로 측정되지만, ㄱ-방식으로 측정하면 그 결과는 수평 또는 수직 편광으로 반씩 나온다. 그렇지만 그 측정 결과가 왜 수평 또는 수직으로 나왔는지 현대 양자물리학에선 결정론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오로지 확률이 반반이라는 예측만 할 수 있다.
아이작 뉴턴으로부터 이어져온 고전물리학에서 측정은 이미 결정돼 있는 물리량을 읽어낼 따름이지만 현대 양자물리학에서 측정의 결과는 확률론적으로 정해진다. 아인슈타인은 현대 양자물리학 측정의 비결정론적이고 확률론적인 측면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 “신은 주사위놀음을 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유감을 나타냈다. 대부분의 물리학자가 비슷한 불만을 안고 있었지만, “입 닥치고 그냥 계산만 해”라는 태도를 취했고, 양자물리학을 응용한 트랜지스터, 레이저 등의 발명부터 나노기술에 이르는 양자혁명을 일으켰다. 그에 더해 아인슈타인의 솔직하고 집요한 의문 제기는 양자컴퓨터, 양자암호, 양자텔레포테이션 등과 같은 제2의 양자혁명을 불러오는 데 크게 기여했다.
김재완 < 고등과학원 계산과학부 교수 >
이 두 검문소 사이에 ‘소인 통과 금지(노인만 통과)’ 검문소를 하나 더 설치하면 이 세 검문소를 통과하는 사람이 있을까? 당연히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양자물리학적인 논리로는 가능하다. 첫 번째 검문소를 통과한 사람은 여자다. 이제 이 여자는 노인일 수도 있고 소인일 수도 있다. 그래서 두 번째 검문소를 노인으로 통과한다. 이제 이 노인이 세 번째 검문소 ‘여자 통과 금지’를 만났을 때, 노인은 남자일 수도 있고 여자일 수도 있으므로 남자로서 통과하면 된다.
물론 이런 논리는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양자물리학의 측정을 비유한 것이다. 여기서 ‘소인 통과 금지’ 검문소를 맨 먼저나 마지막에 놨다면 어떻게 될까? 이 경우를 따져 보면 양자물리학적 논리로도 아무도 통과할 수 없다. 검문소의 순서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확률로만 표현되는 불확정성 원리
방금 든 예는 폴라로이드 선글라스 또는 편광안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색소를 넣어 빛의 양을 줄이는 단순한 선글라스와 달리 편광안경은 수직 편광만 통과시키도록 편광판을 배열해 수평 편광을 차단함으로써 눈에 들어오는 빛의 양을 줄인다. 태양 빛은 수평과 수직 편광이 섞여 있다. 수직 편광의 상당 부분은 도로와 물에 흡수돼 사라지고 수평 편광은 대부분 남은 상태로 우리 눈을 향해 오는데, 수직 편광판이 이 수평 편광을 차단해 얼마 남지 않은 수직 편광만 우리 눈으로 들어오게 한다.
이제 이들 편광판을 배열하는데 첫 번째 수직 편광판(남자 통과 금지), 두 번째 수평 편광판(여자 통과 금지)을 놓으면 빛이 완전히 차단된다. 여기에 45도로 기울인 편광판(소인 통과 금지)을 둘 사이에 끼워 넣으면 세 편광판을 모두 통과하는 빛이 남게 된다. 첫 번째를 통과한 수직 편광은 45도와 마이너스 45도 편광의 중첩이어서, 이 가운데 45도 편광 성분이 통과한다. 한편 45도 편광은 수평과 수직의 중첩이어서 이 중 수평 성분이 마지막 수평 편광판을 통과하게 된다.
편광을 수평·수직으로 구분하는 것을 ㄱ-방식이라고 하고, 45도·-45도로 구분하는 것을 ㅅ-방식이라고 하자. 남·여나 노·소 구분처럼 광자 하나에 대한 편광 측정도 ㄱ-방식은 수평·수직, ㅅ-방식은 45도·-45도의 양분법이다. ㄱ-방식 측정을 통해 수평 편광으로 측정된 광자는 ㅅ-방식 측정에 대해 45도인지 -45도인지 완전히 불확정하게 된다. 이것이 가장 간단한 형태의 양자불확정성 원리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1905년 광전효과를 설명해 양자물리학의 기초를 세우고 그 공로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았지만, 1927년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가 발표되면서 성립된 양자물리학의 현대적 해석에 대한 불만을 1955년 사망할 때까지 안고 갔다.
제2 양자혁명 부른 아인슈타인의 의문
에너지와 같은 물리량이 연속적이지 않고 띄엄띄엄 떨어져 덩어리져 있다는 뜻을 담은 말이 ‘양자(量子)’이고, 여기까지를 구식 양자이론이라고 한다. 현대 양자이론에 따르면 입자의 위치를 먼저 측정하면 속도가 불확정하게 되고, 속도를 먼저 측정하면 위치가 불확정하게 된다.
두 숫자의 곱은 순서를 바꿔도 결과가 같다. 그에 비해 행렬식 두 개를 곱할 때 순서를 바꾸면 곱이 달라진다. 그래서 현대 양자물리학은 물리량들이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행렬식으로 된 방정식으로 표현된다. 45도 편광 광자를 ㅅ-방식으로 측정하면 100% 45도 편광으로 측정되지만, ㄱ-방식으로 측정하면 그 결과는 수평 또는 수직 편광으로 반씩 나온다. 그렇지만 그 측정 결과가 왜 수평 또는 수직으로 나왔는지 현대 양자물리학에선 결정론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오로지 확률이 반반이라는 예측만 할 수 있다.
아이작 뉴턴으로부터 이어져온 고전물리학에서 측정은 이미 결정돼 있는 물리량을 읽어낼 따름이지만 현대 양자물리학에서 측정의 결과는 확률론적으로 정해진다. 아인슈타인은 현대 양자물리학 측정의 비결정론적이고 확률론적인 측면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 “신은 주사위놀음을 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유감을 나타냈다. 대부분의 물리학자가 비슷한 불만을 안고 있었지만, “입 닥치고 그냥 계산만 해”라는 태도를 취했고, 양자물리학을 응용한 트랜지스터, 레이저 등의 발명부터 나노기술에 이르는 양자혁명을 일으켰다. 그에 더해 아인슈타인의 솔직하고 집요한 의문 제기는 양자컴퓨터, 양자암호, 양자텔레포테이션 등과 같은 제2의 양자혁명을 불러오는 데 크게 기여했다.
김재완 < 고등과학원 계산과학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