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블랙홀'에 빠진 정부, '진짜 중요한 것' 보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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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이상 ‘마스크 대란 정부’로 허둥대느라 경제 붕괴 실상 놓쳐
가히 ‘마스크 대란’이라 할 만하다. ‘국정의 블랙홀’에 빠진 듯 마스크 대란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정부를 바라보기가 딱하다. ‘코로나 전염병 위기’를 넘어 ‘금융·경제위기’가 이미 진행되고, 복합적인 ‘국가사회적 위기’가 오고 있는 데 국정은 코르나19에 빠져있다. 심하게 말하면, 마스크 대란의 블랙홀에 빠져 위기의 상황판단을 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의 사과도 기껏 ‘마스크 공급 부족’에 대한 것이었던 것을 보면 지금 대한민국호가 어떤 처지에 있고, 어떤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는 지 파악이 덜 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충분히 나오게 됐다. 정부 내 경제사령탑 격인 기획재정부 조차 한때 ‘마스크 대책본부’라는 냉소를 받을 정도 아니었나.
‘마스크 대란’을 자초한 것도, ‘마스크 블랙홀’에 빠진 것도 정부 스스로라고 봐야 할 것이다. 1월말 중국발(發) 코로나19 전염병에 대한 경고 수위가 올라갔을 때 마스크 착용을 주요한 안전 대책이라고 강조하고 나선 것은 정부(식약처)였다. 미세 입자의 94%를 걸러낸다는 KF94를 사용해야 하느니, 99%까지 걸러내는 KF99라야 하느니 하는 논란까지 유발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마스크 수급에 대해서 정부는 걱정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도 의사협회나 세계보건기구(WHO) 같은 전문가 집단은 그때도 철저한 손씻기를 더 강조했다.
정부의 마스크 권고는 이후에 전국적 캠페인이 됐다.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바로 감염이라도 될 듯 사회적 압박이 계속 가중됐다. 마스크 수요가 늘 수밖에 없었다. 누구도 얼마나 확보해둬야 할지 자신을 가질 수 없었고 공포심리는 커져만 갔다. 이럴 때는 가수요가 생기고 경우에 따라서는 투기적 수요까지 생길 수밖에 없다. 비상시 마스크에만 나타나는 일이 아니다. 이 와중에 '마스크 중국 지원','수출 방치' 같은 지적과 보도가 계속 이어졌다. 유독 중국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정부다. 주뼛주뼛하는 사이에 적지 않은 국산 마스크가 중국으로 갔을 것이다. ‘대북지원설’까지 나왔으니 국내 마스크 수요는 줄어들 수가 없었다. 물론 일상적으로 꼭 필요한 마스크가 매일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는 것이 마스크 대란의 기본 요인이었다.
수급 불안, 곧 늘어나는 수요에 공급량이 딸리는 상황이 바로 나타났다. 하지만 정부는 다 할 수 있다는, 조기에 원만히 풀겠다는 취지의 메시지를 던졌다. 주목할 것은 이런 와중에도 단순히 권고를 넘어서는 ‘마스크 사용 지침’은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무슨 긴급수급조정 조치인가 하는 것이 발동됐고, 매점매석이 사태에 원인이라도 되는 듯 매점 같은 시장교란 행위에 엄하게 대처하겠다는 발표도 있었다. 전형적인 엄포였다. 부족하면 공급을 늘일 일이다. 그런데도 이 정부는 물량 부족에 대해 수요 관리를 하겠다고 나선다. 부동산 정책도 그랬다. 시장에서 소비자들이 원하는 물량이 없어 가격이 오르는데 공급확대는 외면하거나 아예 못 한 채 수요억제만 해오다 다락 같이 올린 게 서울 일부 지역의 집값이었다. 마스크 대란에서도 같은 행태가 보였다. 수요·공급을 무시한 정책은 어떤 것이라도 성공하기 어렵다.
거의 한달 보름째 이어지고 있는 마스크 대란은 2월초부터 문제가 됐다. 기본적으로 물량 부족이었다. 마스크 생산에 꼭 필요한 필터의 70% 가량이 중국에서 들어오는데 이게 끊긴데다, 정부의 가격 개입까지 있었다. 가격개입은 치명적이다. 태풍 때 고립지역에서 생필품이 끊겼다 치자. ‘폭리 근절’을 외치며 이런 지역의 컵라면과 쌀 가격에 정부가 완력으로 개입하면 해당지역에서는 자칫 굶게 된다. 공무원들이 불어난 강을 건너 무너진 교각을 붙잡고 비상식량을 공급해낼까. ‘컵라면 1개에 3000원’이라는 ‘매력적인 가격’에 자발적 유통업자가 생겨 필수 물량이 신속히 공급되는 것이다. 이럴 때 이윤을 악으로 볼게 아니라 곧 동기부여로 보는게 타당하지 않겠나. 상황이 호전되거나, 위험을 안은 그 수익의 매력에 공급자가 더 늘어나면 가격은 정상화되는 게 수급원리다.
공급 부족에도 주 52시간 근무제를 지켜야 한다고 했던 노조 쪽 주장 같은 것은 논외로 치자. 마스크 대란에 생산중단을 선언한 업체가 왜 나왔는지, 반도체 장비 기업이 어떻게 마스크 생산에 나서게 됐는지, 지금이라도 정부 당국자들은 해당 업체를 찾아가 심층 인터뷰를 하고 ‘솔직한 상황 토로’를 청해 들어볼 필요가 있다. 조달청이 나서 정부가 정한 가격으로 일괄 구매해 사실상 배급에 나선 것을 지금도 잘한 행정이라고 믿는다면 답이 없다. 아무리 비상시국이어도 원가 보전도 안 되는 가격에 마스크를 돌릴 업체는 잘 없다. 사업체나 사업주가 천사들만도 아닐뿐더러, 그럴 권한도 없고, 효과는 단기적일 수밖에 없다. 사업체는 문을 닫거나, 심한 경우 뒷문으로 물건을 내다 팔거나, 이익이 더 많다면 중국 아니라 어디로라도 수출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선악(善惡)이나 당위(當爲) 차원의 어설픈 도덕의 문제가 아니다.
그렇게 헤맨 결과가 이른바 ‘공적 판매’였다. 사방에서 ‘부족하다’고 아우성이고 ‘힘들고 불편해 죽겠다’는 원성만 들린다. 계속 마스크 사용을 강조해온 정부가 이제 와서 “마스크 사용은 예방 효과가 별로다. 손 잘 씻는데 주력하고, 개인 면역력 키우고, 서로 간에 사람 덜 만나자”고 말하기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온 게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생경한 캠페인이었나.
‘공적 판매’는 성공했는가. “마스크 2장을 사려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다 없는 병도 얻게 생겼다”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5부제니, 대리 구매가 되느니 안 되느니 했지만 정부의 대응역량만 속속들이 드러났을 뿐이다.
의미를 찾아보자면 값비싼 대가로 배운 것은 있다. 배급경제가 어떤 것인지, 나아가 생산시설까지 통제하는 국가주도의 계획경제가 어떨지 제대로 실제 케이스로 본 것이다. 배급경제의 교훈조차도 이미 알고 있는 이들은 재확인 했을 뿐이고, 정작 ‘정책으로서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껴야 할 정부 당국자나 여당 같은 데서는 못 봤다면 다 헛일이다.
더 큰 문제는 마스크 대란에 빠져 허둥대느라, 비상시국의 국정이 마스크 수급대책 수준으로 전락하면서, 지금 상황에서 봐야할 것, 큰 것을 못 보고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국제 고립된 한국 외교를 종합적으로 한번 보라. 수요도 죽고 공급망도 무너지면서 내려앉는 국내외의 ‘퍼펙트 스톰’은 또 정부 어디서 대처를 주도하고 있나. 정부가 마스크 블랙홀에 빠질수록 정작 마스크 구입은 더 힘들어 지면서 ‘마스크 난민’이라는 말까지 낯설지 않을 지경이 됐다. 은연중 ‘대구의 오류, 대구의 재난’ 정도로 몰아가고 싶었는지 모르지만, 정부의 성급한 낙관론과 자화자찬 속에 확산의 불길은 인구의 절반이 몰려있는 서울과 수도권으로 옮겨 붙고 있다. 정부는, 온갖 말 앞세워온 서울시는 ‘방역전쟁’과 ‘경제살리기’ 이중의 전쟁에서 이제부터라도 제 역할을 해낼 수 있을까. 나라가 세월호 같다’는 냉소도 결코 과장이라고 하기 어렵게 됐다. 정부가 더 잘해야 한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마스크 대란’을 자초한 것도, ‘마스크 블랙홀’에 빠진 것도 정부 스스로라고 봐야 할 것이다. 1월말 중국발(發) 코로나19 전염병에 대한 경고 수위가 올라갔을 때 마스크 착용을 주요한 안전 대책이라고 강조하고 나선 것은 정부(식약처)였다. 미세 입자의 94%를 걸러낸다는 KF94를 사용해야 하느니, 99%까지 걸러내는 KF99라야 하느니 하는 논란까지 유발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마스크 수급에 대해서 정부는 걱정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도 의사협회나 세계보건기구(WHO) 같은 전문가 집단은 그때도 철저한 손씻기를 더 강조했다.
정부의 마스크 권고는 이후에 전국적 캠페인이 됐다.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바로 감염이라도 될 듯 사회적 압박이 계속 가중됐다. 마스크 수요가 늘 수밖에 없었다. 누구도 얼마나 확보해둬야 할지 자신을 가질 수 없었고 공포심리는 커져만 갔다. 이럴 때는 가수요가 생기고 경우에 따라서는 투기적 수요까지 생길 수밖에 없다. 비상시 마스크에만 나타나는 일이 아니다. 이 와중에 '마스크 중국 지원','수출 방치' 같은 지적과 보도가 계속 이어졌다. 유독 중국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정부다. 주뼛주뼛하는 사이에 적지 않은 국산 마스크가 중국으로 갔을 것이다. ‘대북지원설’까지 나왔으니 국내 마스크 수요는 줄어들 수가 없었다. 물론 일상적으로 꼭 필요한 마스크가 매일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는 것이 마스크 대란의 기본 요인이었다.
수급 불안, 곧 늘어나는 수요에 공급량이 딸리는 상황이 바로 나타났다. 하지만 정부는 다 할 수 있다는, 조기에 원만히 풀겠다는 취지의 메시지를 던졌다. 주목할 것은 이런 와중에도 단순히 권고를 넘어서는 ‘마스크 사용 지침’은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무슨 긴급수급조정 조치인가 하는 것이 발동됐고, 매점매석이 사태에 원인이라도 되는 듯 매점 같은 시장교란 행위에 엄하게 대처하겠다는 발표도 있었다. 전형적인 엄포였다. 부족하면 공급을 늘일 일이다. 그런데도 이 정부는 물량 부족에 대해 수요 관리를 하겠다고 나선다. 부동산 정책도 그랬다. 시장에서 소비자들이 원하는 물량이 없어 가격이 오르는데 공급확대는 외면하거나 아예 못 한 채 수요억제만 해오다 다락 같이 올린 게 서울 일부 지역의 집값이었다. 마스크 대란에서도 같은 행태가 보였다. 수요·공급을 무시한 정책은 어떤 것이라도 성공하기 어렵다.
거의 한달 보름째 이어지고 있는 마스크 대란은 2월초부터 문제가 됐다. 기본적으로 물량 부족이었다. 마스크 생산에 꼭 필요한 필터의 70% 가량이 중국에서 들어오는데 이게 끊긴데다, 정부의 가격 개입까지 있었다. 가격개입은 치명적이다. 태풍 때 고립지역에서 생필품이 끊겼다 치자. ‘폭리 근절’을 외치며 이런 지역의 컵라면과 쌀 가격에 정부가 완력으로 개입하면 해당지역에서는 자칫 굶게 된다. 공무원들이 불어난 강을 건너 무너진 교각을 붙잡고 비상식량을 공급해낼까. ‘컵라면 1개에 3000원’이라는 ‘매력적인 가격’에 자발적 유통업자가 생겨 필수 물량이 신속히 공급되는 것이다. 이럴 때 이윤을 악으로 볼게 아니라 곧 동기부여로 보는게 타당하지 않겠나. 상황이 호전되거나, 위험을 안은 그 수익의 매력에 공급자가 더 늘어나면 가격은 정상화되는 게 수급원리다.
공급 부족에도 주 52시간 근무제를 지켜야 한다고 했던 노조 쪽 주장 같은 것은 논외로 치자. 마스크 대란에 생산중단을 선언한 업체가 왜 나왔는지, 반도체 장비 기업이 어떻게 마스크 생산에 나서게 됐는지, 지금이라도 정부 당국자들은 해당 업체를 찾아가 심층 인터뷰를 하고 ‘솔직한 상황 토로’를 청해 들어볼 필요가 있다. 조달청이 나서 정부가 정한 가격으로 일괄 구매해 사실상 배급에 나선 것을 지금도 잘한 행정이라고 믿는다면 답이 없다. 아무리 비상시국이어도 원가 보전도 안 되는 가격에 마스크를 돌릴 업체는 잘 없다. 사업체나 사업주가 천사들만도 아닐뿐더러, 그럴 권한도 없고, 효과는 단기적일 수밖에 없다. 사업체는 문을 닫거나, 심한 경우 뒷문으로 물건을 내다 팔거나, 이익이 더 많다면 중국 아니라 어디로라도 수출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선악(善惡)이나 당위(當爲) 차원의 어설픈 도덕의 문제가 아니다.
그렇게 헤맨 결과가 이른바 ‘공적 판매’였다. 사방에서 ‘부족하다’고 아우성이고 ‘힘들고 불편해 죽겠다’는 원성만 들린다. 계속 마스크 사용을 강조해온 정부가 이제 와서 “마스크 사용은 예방 효과가 별로다. 손 잘 씻는데 주력하고, 개인 면역력 키우고, 서로 간에 사람 덜 만나자”고 말하기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온 게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생경한 캠페인이었나.
‘공적 판매’는 성공했는가. “마스크 2장을 사려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다 없는 병도 얻게 생겼다”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5부제니, 대리 구매가 되느니 안 되느니 했지만 정부의 대응역량만 속속들이 드러났을 뿐이다.
의미를 찾아보자면 값비싼 대가로 배운 것은 있다. 배급경제가 어떤 것인지, 나아가 생산시설까지 통제하는 국가주도의 계획경제가 어떨지 제대로 실제 케이스로 본 것이다. 배급경제의 교훈조차도 이미 알고 있는 이들은 재확인 했을 뿐이고, 정작 ‘정책으로서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껴야 할 정부 당국자나 여당 같은 데서는 못 봤다면 다 헛일이다.
더 큰 문제는 마스크 대란에 빠져 허둥대느라, 비상시국의 국정이 마스크 수급대책 수준으로 전락하면서, 지금 상황에서 봐야할 것, 큰 것을 못 보고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국제 고립된 한국 외교를 종합적으로 한번 보라. 수요도 죽고 공급망도 무너지면서 내려앉는 국내외의 ‘퍼펙트 스톰’은 또 정부 어디서 대처를 주도하고 있나. 정부가 마스크 블랙홀에 빠질수록 정작 마스크 구입은 더 힘들어 지면서 ‘마스크 난민’이라는 말까지 낯설지 않을 지경이 됐다. 은연중 ‘대구의 오류, 대구의 재난’ 정도로 몰아가고 싶었는지 모르지만, 정부의 성급한 낙관론과 자화자찬 속에 확산의 불길은 인구의 절반이 몰려있는 서울과 수도권으로 옮겨 붙고 있다. 정부는, 온갖 말 앞세워온 서울시는 ‘방역전쟁’과 ‘경제살리기’ 이중의 전쟁에서 이제부터라도 제 역할을 해낼 수 있을까. 나라가 세월호 같다’는 냉소도 결코 과장이라고 하기 어렵게 됐다. 정부가 더 잘해야 한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