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형규 칼럼] 가수요 유발하는 정부
한 달 넘게 국민 스트레스지수를 한껏 끌어올린 ‘마스크 대란’은 문재인 정부의 실력을 드러낸 아킬레스건(腱)이 돼버렸다. 인터넷 댓글 창마다 “스스로 조심합시다. 정부가 지켜주지 않아요”, “시민도 지치고, 약사도 지치고, 생산업체도 지쳤다” 같은 국민의 탄식이 넘쳐난다.

대안이라고 내놓은 ‘마스크 5부제’는 장사진(長蛇陣)의 꼬리를 다소 줄였을 뿐이다. 지난달 말 문 대통령이 “마스크 물량이 충분하다”던 때나, 지금이나 사기 힘든 건 매한가지다. 오히려 해당 요일에 못 사면 1주일을 기다려야 해 불안심리가 더 커졌다. 홍남기 김상조 등 경제사령탑이 마스크 대책본부장처럼 매달린 결과가 이렇다.

마스크 대란은 생산량과 인구를 비교해 보면 불가피하다. 이는 수학이 아니라 덧셈뺄셈의 산수다. 그럼에도 정부는 수요와 공급을 고정된 상수로 보고, 마스크 5부제와 생산 확대로 해소될 것으로 봤다. 하지만 보건용 마스크를 쓰라던 정부가 ‘안 써도 된다’ ‘면 마스크도 괜찮다’며 말을 바꿨다. 게다가 코로나 사태가 3차 확산단계이고, 세계적인 팬데믹(대유행)에다 인구 60~70% 감염 우려까지 제기된 마당이다.

이럴 때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하겠나. 살 수 있는 한 어떻게든 사려고 할 것이다. 정부의 우왕좌왕이 불안심리를 자극해 실제 이상의 가수요를 유발한다. 이런 판국에 마스크 공장에 공무원이 나가 감시하고, 세무조사 엄포를 놓지만 가격통제 아래서는 공급도 차질을 빚게 마련이다. 생산 포기 업체까지 나온 이유다. 마스크 대란은 정부의 수요·공급에 대한 오해와 무지가 더 키웠다.

이런 게 경제학에서 말하는 ‘합리적 기대’다. 사람들이 활용 가능한 모든 정보를 이용해 합리적으로 예측하고 행동한다는 것이다. 정책을 내놓으면 대책을 강구한다. 정책 수용자들의 합리적 기대를 무시할 때 정책 실패와 수급 왜곡을 낳는다. 이른바 ‘정부 실패’다.

집값 급등과 끊임없는 풍선효과도 시장의 합리적 기대를 무시한 대가라고 할 수 있다. 19차례의 부동산대책을 내놨어도 수요자들이 원하는 지역에 공급을 늘리겠다는 ‘신호’를 보낸 적이 없다. ‘투기와의 전쟁’ 식의 경직된 접근으로 가수요까지 만들어 냈다. 수요자 입장에선 집을 사는 게 합리적 선택이 된다. 분양가 상한제가 시행되고, 금리 인하까지 단행되면 코로나 사태 와중에도 집값 잡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더 황당한 것은 사교육비 급증이 가계 소득이 늘어난 때문이라는 교육부 차관의 궤변이다. 지난해 초·중·고생 1인당 사교육비는 월 32만1000원으로, 3년 전보다 20.3%(6만5000원) 늘었다. 보수정권 시절 소득이 늘어도 사교육비가 정체 또는 감소했던 것과 달리, 공교육을 강조하는 이 정부에서 사교육비가 대폭 증가한 것이다. 오락가락한 대입정책과 경쟁력 있는 자사고 외국어고의 폐지 소동을 지켜본 학부모들이 사교육으로 더 기운 것이다. 하향평준화 속에 자식의 변별력을 높이려는 합리적 기대가 작용한 셈이다. 교육부가 이를 몰랐다면 무지한 것이고, 알고도 모른 체했다면 솔직하지 못한 것이다.

정부의 무능은 대개 경제원리에 대한 몰이해와, 정치논리로 밀어붙여 기어코 정책 실패를 유발하는 오만과 고집에서 드러난다. 지난 3년 내내 중력법칙과도 같은 경제원리와 싸워온 이 정부가 마스크의 덫에 걸려 고전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정부 경제팀에는 국내외 명문대 경제학 석·박사들이 즐비하다. 하지만 가슴이 뜨겁고 머리까지 뜨거운 상태로, 경제를 정치공학의 하위수단으로 대해선 매번 이런 식일 수밖에 없다.

가격은 통제 대상이고, 정부가 개입하지 않으면 시장은 정글이 되며, 생산과 배분을 정부가 더 잘할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이 정부 안에 적지 않다. 마스크 대란을 겪는 국민들은, 옛 소련 사람들이 뭐든지 줄이 보이면 일단 뒤에 서고봤던 사실을 떠올리고 있다. 같은 문제가 자꾸 되풀이되면 그건 실수가 아니라 실력이다.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