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10년씩 흘러갔다. 서른 살은 겁나는 나이였고 마흔 살이 되던 날은 술을 많이 마신 탓에 눈치채지도 못한 채 지나갔다. 50대가 최고였는데 인생이 완전히 달라졌다. 60대가 되자 50대의 행복이 연장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이런저런 암에 걸렸고 아내가 죽었다. 그 후의 여러 해를 돌아보면 마치 다른 우주로 여행을 온 것 같다.”

여든이 넘은 시인은 매일 글을 썼다. 삶과 죽음을 생각했고 젊음을 돌아보고 늙음을 되새겼다. 《죽는 것보다 늙는 게 걱정인》은 미국 시인 도널드 홀의 에세이다. 그는 평생 40권이 넘는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은 89세로 2018년 세상을 떠난 시인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작품이다.

책엔 열네 편의 에세이가 담겨 있다. 원제는 ‘여든 살 이후의 에세이(Essays After Eighty)’다. 한국어판 제목을 보면 이 책의 국내 출간을 준비한 편집자는 ‘내 난제는 죽음이 아니라 늙음이다’란 책 속 문장이 인상 깊었던 듯하다.

저자는 “내가 균형 감각을 잃어가는 것을, 자꾸만 뒤틀리는 무릎을 걱정한다”며 “일어나고 앉는 게 힘들어지는 걸 걱정한다”고 썼다. 시인은 나이가 든다는 것, 노인이 된다는 것에 대해 얘기하면서도 여전히 삶은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내가 서른이었을 때, 난 미래에 살았었다. 왜냐하면 현재가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지난날을 회상하지만 나이가 들어 시인은 현재를 살았다. 글을 쓰고 공상을 하고 편지를 구술하는 것으로 시인의 하루는 빠르게 흘렀다. 그는 매일 다른 것들을 읽고 쓰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지루할 일은 없다”고 했다. 조급하고 불안하게 하루를 보내는 요즘 사람들에게 시인은 있는 그대로의 오늘을 마주하고 매일을 채워가는 방법을 알려준다.

책 번역 작업에 참여한 시인 최희봉은 한 원고를 600번까지 고쳐봤다는 저자의 일화를 들려주며 “완성을 향한 끈질긴 노력에 독자로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한다. 그가 다시 쓰고 거듭 다듬었기에 부담 없이 쉽게 읽히는 문장들을 다시 음미해 보게 된다. (조현욱·최희봉 옮김, 동아시아, 240쪽, 1만5000원)

윤정현 기자 hit@hankyugn.com